제1화
1.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가 자기표현을 솔직하게 할 때 상담자들이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됩니다.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왜 이게 고마운 일일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감사한 순간을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배려나 호의를 받았을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내담자 분들의 솔직함을 상담자들은 호의나 배려로 받아들이는 걸까요?
2. 내담자분들이 살아오면서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상담에서 드러내는 순간, 상담자는 감동이나 신뢰받는 느낌을 경험하며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때의 감사는 내담자의 말 자체보다 “당신이 나를 믿고 관계를 열어주었다는 게 나에게 의미 있다”는 상담자 개인의 정서적 반응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관계적 메시지로 작동해 내담자가 “이럴 때 상담자가 기뻐한다”는 것을 학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내담자는 이후 상담에서 솔직한 표현이 아니라 상담자를 기쁘게 할 말을 더 선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상담자가 인정받는 장면으로 상담이 기울 위험도 있습니다. 진짜 신뢰 관계라면 굳이 말로 “고맙다”를 표현하지 않아도 침묵이나 안정된 태도, 일관성으로도 충분히 경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내담자가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상담자에게 베푸는 특별한 ‘호의’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상담자가 감사로 반응하면 솔직함이 보상 구조 속에 들어가고, 내담자의 자발성은 위축될 수 있습니다.
4. 그래서 위니컷(소아정신과 의사)은 내담자가 상담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상담자가 감사나 칭찬으로 반응하면 그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며, 상담자는 “당신이 나를 시험해도 괜찮다, 내가 견딜 수 있다”라는 비언어적 생존으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내담자가 상담자를 시험하듯 화를 내거나 거리를 두더라도 상담자가 이를 받아내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5. 코헛(자기 심리학 창시자) 역시 내담자가 자기 이야기를 꺼낼 때 상담자가 느끼는 ‘감사’가 상담자의 자기 확인 욕구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상담자는 무의식적으로 신뢰받는 기쁨을 느끼며, 이를 ‘고맙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담자는 이런 반응을 보면서 “상담자가 나에게 만족감을 느끼는구나”라고 학습할 수 있고, 그 결과 솔직한 표현이 상담자를 기쁘게 하기 위한 행동으로 바뀔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좋은 상담자’로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잠시 내려놓고, 그저 내담자의 경험을 함께 감당하며 이해하는 사람으로 머무는 것이 중요합니다.
6. 또한 비온(정신분석가)의 관점에서 보면, 내담자가 힘든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때 상담자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소화’하고 의미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담자가 “고맙다”라고 반응하면 내담자가 “내 이야기가 상담자를 기쁘게 했다”라고 느끼며 자기표현을 외부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비온은 상담자가 감정을 받아들이고 소화한 뒤, 내담자의 내적 경험을 반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상담자가 내담자의 거친 감정을 그대로 반응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가라앉혀 의미를 만들어 돌려주는 과정입니다.
7. 모든 “고맙다”가 부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신뢰가 쌓이는 과정에서 상담자가 인간적으로 느끼는 감사는 관계를 따뜻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감사’ 대신 예를 들어 “그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라고 묻는 것은 상담자 중심이 아닌 내담자 중심의 반응이 됩니다.
또한 상담자는 “감사”를 말하기 전에 “내가 왜 이렇게 고마움을 느끼는지, 혹시 내가 신뢰받는 대상이 되고 싶은 욕구 때문은 아닌지, 이런 말을 하면 내담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지”를 먼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8. 더운 날, 벤치에 앉아 뜨거운 바람을 잠시 느끼고 있는데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갑니다. 차들이 길을 터주자 경찰차는 사이렌을 잠시 멈추고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합니다. 이런 것이 감사할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상담에서의 감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내담자가 솔직해진 것은 상담자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상담자는 ‘감사’로 반응하기보다, 내담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곁에서 이해하며 함께 걸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글을 쓰다 보니 저는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 더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느끼게 됩니다. 완벽할 순 없어도, 잘 이해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