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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룬드 Nov 23. 2021

제가 20년 뒤에 위암에 걸린다고요?

좋은 의료정보에 대해

필자는 한국일보를 구독한다. 아침에 일어나 뻣뻣한 허리를 부여잡고 현관문을 열어 신문지를 들고 온 후 짧게나마 훑어보고 출근하는 게 일상이다. 


호불호라는 게 있는 것이 인간이니 당연히 신문에서도 좋아하는 꼭지들과 싫어하는 꼭지들이 있다. 좋아하는 꼭지는 오은영의 화해, 이용재의 세심한 맛, 도서 추천 등의 꼭지들이고, 싫어하는 꼭지들도 그에 비례하여 있겠다. 싫다고 하긴 어렵겠지만, 부담스러운 꼭지도 있는데 매주 화요일의 의학 관련 2페이지 꼭지이다. 대학병원을 나온 지 5년 째이니, 업데이트되어 있는데 내가 모르는 지식들도 많은 상황이고, 아예 문외한인 정보들도 있으니 그런 상황에서는 아침부터 전문가랍시고 갖고 있는 면허증에 대한 부끄러움이 일기도 한다. 


다만, 불만인 부분은 따로 있다. 화요일인 오늘, 아침에 이런 기사를 읽었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12008120000973

제목도 부제도 참으로 충격적이다.


위염 걸리면 몇 년 뒤에 위암으로 악화할까?

단순 위염, 15~20년 지나면 위암으로 진행


일부를 발췌해 본다.


소화불량이나 속 쓰림을 호소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위장약이나 소화제를 먹어 해결하거나 방치하지만 단순 위염 등 가벼운 위장병이 자칫 위궤양ㆍ위암으로 악화할 수 있다.

단순 위염에서 위암으로 진행되는 단계는 크게 5단계다. ‘단순 위염(표재성 위염)-만성 위염(표층성, 위축성 위염)-장상피화생(腸上皮化生)-이형성증-위암’으로 악화한다.

단순 위염이 위암으로 되는 데에는 15~20년 걸린다.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이 위암으로 악화할 위험이 각각 6배, 20배가량 높다. 따라서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30대가 넘으면 1~2년에 한 번씩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위암 예방과 조기 발견의 지름길이다.


뭐랄까, 좀 식겁했다. 이것도 설마 내가 모르는 지식인가? 불과 4년 전만 해도 매일같이 수십 명의 검진자들 대상으로 내시경 검사를 해왔지만, 위염 진단을 붙이면서 암까지 연관시켜서 설명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필자가 알기로는 위암 검진은 40세 이상부터 2년에 한 번이 기준이다. 그런데 30세부터라니.


학창 시절부터 존경해 마지않았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준행 교수님의 블로그(endotoday.com)를 들어가 본다. 필자가 학생이던 2000년대 중반에도 수업 중 운영을 홍보하셨던 그 블로그는 이미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내시경 임상정보 관련해서는 비할 곳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지식창고가 되어 있는 곳이다. 주변 의사분들도 어느새 많이들 들어가고 있는 곳. 혹시나 놓친 정보가 있나 싶어 관련 문서들을 읽어 보았지만, 필자가 내시경 다루던 시절 이후로 크게 바뀐 것은 제균 치료의 불법성 여부 및 심평원이 정한 보험 기준 이외에는 없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 전달할 수는 없으니 윗 기사에 실린 중간 고리인 위축성 위염에 대한 요약만 인용한다.(화생성 위염/장상피화생에 대한 요약도 동일하다.) 밑줄은 필자 임의로 그었다.


위축성 위염은 매우 흔합니다. 위암의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는데, 위암 발생률 세계 1위인 우리나라에서는 그 의미가 불명확합니다. (1) 위축성 위염이 없더라도 위암은 얼마든지 발생하고 있으며, (2) 이미 전 국민 위암 검진 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된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의사들의 보편적인 입장은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내시경 검사에서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위염이 아니고 궤양, 암, 선종 등 보다 의미가 명확한 질환입니다. 위염에 대한 내시경적 평가는 일관성이 낮아서 치료 방침 결정의 근거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약은 필요 없고 -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 이외에 효과가 있다고 입증된 약이 없습니다 - 상식에 준한 건강한 식생활과 1년 후 내시경 검사를 권합니다. (연고지)



다시 기사로 돌아가 보자. 제목과 부제는 대체 누가 달아 놓은 건지 모를 정도로 저열하고, 기사의 내용은 일부 정설을 포함하고 있지만 실은 과장된 이야기이다. 이유만 해도 여러 가지이다. 


1. 위암 검진은 증상이 없는 사람에서도 이미 시행을 권고하고 있는 국가검진 사업이다. 굳이 증상이 있는 사람의 걱정을 부추길 이유가 있을까. 아래에도 보겠지만 이들 대부분은 위염 진단을 받을 것이다.

2. 한국에서의 내시경 후 위염 진단은 최소 절반 이상에서 내려진다. (필자는 보통 90% 이상에서 받는 진단이라고 설명한다.) 그럼 이들 모두가 위암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것일까. 아래를 보자.

3. 위염, 위축성 위염, 장상피화생, 이형성증, 위암으로 이어지는 단계가 무조건 이어지지 않는다. 2016년 기준 위암 발생률은 인구 1만 명 당 5.97명이다. 내시경 후 위염을 진단받은 환자는 1만 명 기준으로 5000명 이상인데, 그럼 나머지 4994명은 어디로 새는 걸까.

4. 전문가들의 합의 하에 발표된 검진 권고안이 40대 이상, 2년 주기로 맞추어진 상황에서 무증상, 무진단 성인의 검진 기준을 30대로 낮추어 기사를 작성할 이유가 없다.


비단 위의 기사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의학 관련 기사들은 항상 분과 전문의(교수)의 의견에 따라 기술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분들은 당연히 본인이 보는 질환이 가장 중요하고, 해당 질환의 예방과 조기발견에 대해서 굉장히 엄격하다. 가령, 지난 주말 탑승했던 KTX 화면에서는 비뇨기과 교수께서 나와 신장결석에 대해 미리 복부 CT로 검진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작 무증상인 일반 인구에서 신결석을 미리 진단해야 한다는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췌장암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떻게든 발견해내려고 하면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있겠지만, 그렇게 했을 때 얻는 이득과 손해를 비교하는 연구에서 그 효용이 부정되었거나, 혹은 해당 연구 성과들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그런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 기준이 될 수 있는 가이드는 아래 USTSPF 요약을 참조하자.)


우리나라는 분과전문의 중심의 의료체계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검사의 효용에 대한 가이드라인 체계가 잘 잡혀 있지 않고 오히려 각종 무분별한 건강검진이 횡행한다. (필자는 몇십만원씩 내고 건강검진받으러 오시는 분들에게 불편한 증상이 있으면 직접 진료를 받으시라고 설득하는 게 일상이다.) 하지만 주치의제가 잘 도입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당연히 어떤 검사들에 대한 효용을 따질 수밖에 없겠다. 30대부터 신문 기사를 보고 개인 임의로 위내시경을 받아야 하는 국가(물론, 증상도 없는 젊은이에게 간혹 큰 질환이 얻어걸릴 수도 있다. 확률의 문제이지만.)와, 주치의가 언제부터 위내시경을 받으면 되는지 집어주는 국가, 어느 시스템이 더 효율적 일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참고로 보건복지부/국립암센터 간행물에 실린 위암 검진 권고안과 권고등급, 그리고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 https://www.uspreventiveservicestaskforce.org/)의 일반 건강관리에 대한 권고안을 올려본다. 각자 참고하시길.


아래는 USPSTF 등급 A/B 권고안.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 공인되었다 볼 수 있는 중재들이다. 

대충의 권위는 여기에서 확인하자

과잉의료가 일상화된 상황에서는 C/D/근거 빈약을 찾아보는 게 의료인에게는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일반인 대상으로는 A/B 등급을 정리하는 게 더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국내 실정과 다를 수 있으며, 줄임 번역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바람. 



- 복부 대동맥류에 대해 모든 65-75세의 남성들에서 한 번의 복부 초음파를 통한 선별을 권한다. (2019)

- 50-59세의 성인에서 출혈 위험이 없고 심혈관계 질환 발생률이 증가한, 10년 이상의 기대여명을 가진, 자의적으로 복용을 원하는 자에 한해 심혈관계 질환 및 대장암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저용량 아스피린 용법을 권한다. (2016)

- 임신 12주 이후 전자간증의 고위험군 임산부에 대해 저용량 아스피린 용법을 권한다. (2021)

- 임산부의 무증상 세균뇨에 대한 검진을 권한다. (2019)

- 가족력에 의해 BRCA1/2 변이와 연관(간략화함)된 임산부에 대하여 위험 측정 도구 사용을 권한다 (2019)

- 35세 이상의 유방암 위험이 증가한 여성에서는 타목시펜 등의 위험 감소 약물 사용을 권한다. (2019)

- 50-74세 여성에서 격년의 유방촬영을 통한 유방암 검진을 권한다. (2016)

- 출산 전후 모유 수유를 위한 의학적 중재 제공을 권한다. (2016)

- 20-29세 여성에서 자궁경부 세포검사(3년 주기), 30-65세 여성에서 자궁경부 세포검사(3년 주기), hrHPV 바이러스 검사(5년 주기) 등을 권한다. (2018)

- 성적 접촉이 있는 24세 이하나 감염 우려가 있는 25세 이상에서 각각 클라미디아균(여성), 임질균(남성) 검사를 권한다. (2021)

- 45-75세 성인에서 대장암 검사를 권고한다. 연령에 따라 검사는 달리 시행한다. (2021)

- 1-5세의 유치가 난 아이에서 염소 바니쉬 사용을 권고한다. (2014)

- 모든 성인에서 우울증 선별 검사를 권한다. (2016)

- 12-18세의 청소년에서 주요 우울장애 선별검사를 권한다. (2016)

- 65세 이상의 낙상 위험 성인에서 운동치료를 권한다. (2018)

- 임신 계획 중이거나 임신 중인 여성에서 엽산 복용을 권한다. (2017)

- 임신 24주 여성에서 임신성 당뇨병 선별검사를 권한다. (2021)

-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은 성인에 대해 행동 카운슬링 제공이나 의뢰를 권한다. (2020)

- 임신 중인 모든 여성에 대해 적정 체중 관리 및 과체중 방지를 위한 행동 카운슬링을 권한다. (2021)

- 감염 위험이 높은 모든 청소년 및 성인에 대한 B형 간염 바이러스 선별검사를 권한다. (2020)

- 모든 임신 1분기 여성에서 B형 간염 검사를 권한다. (2019)

- 18-79세의 모든 성인에서 C형 간염 검사를 권한다. (2020)

- 15-65세의 모든 성인 및 이외의 감염 위험이 높은 군에서 HIV 선별검사를 권한다. (2019)

- 모든 임산부나 출산 중의 성인에서 HIV 선별검사를 권한다. (2019)

- 18세 이상의 성인에 대해 고혈압 선별검사를 권한다. (2021)

- 가임기의 모든 여성에 대해 임상 현장에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선별검사를 권한다. (2018)

- 고위험군에 대한 잠복결핵 검사를 권한다. (2016)

- 20 갑년 이상의 50-80세 흡연자(혹은 금연 15년 이내)에서 저선량 흉부 CT 검사를 권한다.

- 6세 이상의 소아청소년에서 비만 선별검사를 권한다. (2017)

- 신생아 결막염 예방을 위한 연고 사용을 권한다. (2019)

- 65세 미만의 골다공증 위험이 높은 폐경여성에서 골밀도 검사를 권한다. (2018)

- 65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서 골밀도 검사를 권한다. (2018)

- 산후 우울증 위험이 높은 모든 임산부나 출산 후 여성에 대한 상담 요법을 권한다. (2019)

- 과체중/비만의 35-70세 인구에서 당뇨병 선별검사를 권한다. (2021)

- 모든 임산부에 대하여 혈압 측정을 포함한 전자간증 선별검사를 권한다. (2017)

- HIV 노출 위험이 있는 모든 인구에 대해 예방적 항바이러스 용법을 권한다. (2019)

- 모든 임산부는 첫 방문 시 Rh 혈액형 검사를 권한다. Rh 음성 임산부에 대해 24-28주에 재검사를 권한다 (2004)

- 성병 위험이 높은 청소년 성인 군에 대해 행동 상담을 권고한다. (2020)

- 6달-24세 사이의 특정 피부형을 가진 인구에 대해 자외선 노출을 줄이기 위한 상담을 권한다. (2018)

- 심혈관 질환이 없는 특정 요건을 만족하는 40-75세 군에 대해 저-중용량 스타틴 사용을 권고한다. (2016)

- 감염 위험이 높은 군에 대해 매독 선별검사를 권고한다. (2016)

- 모든 임산부에 대해 매독 선별검사를 권고한다. (2018)

- 모든 성인과 임산부, 학령기 소아청소년에 대해 담배 사용과 금연 권고, 행동 중재 및 승인된 금연 약물 사용을 권고한다. (2021)

- 18세 이상의 모든 성인에 대해 적절하지 않은 알코올과 약물 사용에 대한 선별검사를 권한다. (2017)

- 3-5세의 소아에서 약시 및 그 위험인자에 대한 검사를 권고한다. (2017)

- 체질량지수 30 이상의 성인에서 체중조절을 위한 행동 요법을 권고한다. (2018)



이 내용들을 본인 환자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의사가 진정한 주치의일 것이고,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이 좋은 의료시스템일 것이다. 물론 필자도 그런 주치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많이 모자라고, 우리 국가 의료 시스템도 위 내용 중 검사 관련 내용들을 검진 등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 이외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시나 본인도 모르고 있던 내용에 해당한다면 꼭 관련해서 전문가를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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