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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원 Oct 21. 2024

가족을 잃은 복수심, 원수의 자식에게 풀 것인가?

구룡성채 무법지대를 보고


홍콩이 영국에 반환되기 몇 년 전, 지금도 무법지대로 회자되는 구룡성채를 배경으로 한 영화 <구룡성채 : 무법지대>가 개봉하였다. 갈 곳이 없는 이에게는 어쩌면 보금자리와도 같은 그곳에서 한 편의 드라마를 써내려가는데 영화적인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추천을 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떠오르는 화두는 바로, 복수의 대상이 없다면 누구에게 풀어야 할 것인가, 였다.



무협소설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혹은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설정이 바로 복수와 은원이다. 복수는 때로는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복수의 이야기 속에서는 부모의 복수를 하기 위해 원수를 찾았지만 그럴 가치도 없이 죽어가기도 하며, 복수를 갚기 위해 원수가 이미 죽었을 때 자식에게 분풀이를 하기도 한다.


전자든 후자든 복수를 꿈꾸는 자에게 아직 인간성이 남아있다면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영화 구룡성채에서는 주인공 찬록쿤의 아버지 찬짐은 과거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본인도 죽고 만다. 물론 이는 구룡성채 내부의 싸움으로 대부분 일반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찬짐과 대적하던 추 라는 사람의 아내와 자식은 찬짐에게 무참히 살해당하고 찬짐이 죽었음에도 찬짐의 아들을 찾아 복수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좌 : 사이클론 우 : 추 형님

찬짐을 죽인 사이클론은 추 형님을 대신하여 구룡성채를 관리하고 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가슴이 답답해졌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이클론은 찬짐을 죽인 사내지만 찬짐의 둘도 없는 절친이었고, 그의 아내와 아들을 도망시킨 장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연히 구룡성채에 보금자리를 튼 청년, 찬록쿤이 찬짐의 아들이라는 것을 왠지 모르게 눈치채고 있었기에 더욱 더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은 오래 가지 않는 법, 추 형님은 구룡성채에 찬짐의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사이클론의 부하라는 것에 분노했다. 자신의 손으로 죽인 친구의 아들과 오랫동안 의리를 나눈 형님의 싸움 속에서 사이클론은 그저 그 모습을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



결국 찬록쿤이 이성을 잃고 추 형님을 죽일 기세로 덤벼들자 그제서야 사이클론이 나서 찬록쿤을 제압한다. 하지만 그가 추 형님의 편을 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세대의 은원을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가야겠냐며 추 형님을 설득하지만 눈 앞에서 가족을 잃은 추 형님에겐 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추 라는 사람의 선택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세월이 흐른 만큼 조금 더 아량을 보여 과거의 은원을 묻어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무슨 수를 쓰든 간에 복수를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나의 일이 아닌 경우 전자를 택해야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과연 그것이 쉬운 일일까. 


하지만 전자가 현명한 판단인 것은 영화 속에서 드러난다. 일단은 과거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가 사이클론이니 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의리에 합당했고, 찬록쿤은 비록 찬짐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아버지를 태어나자마자 여의고 외국에서 어머니와 개고생만 하다가 홍콩에 돌아온 청년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복수에 찬동할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주인공 찬록쿤

복수는 개인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명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복수가 아니라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은원은 잊지 않는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서인지(그래놓고 은혜는 잊음) 추 형님은 애꿎은 청년 하나를 죽이기 위해 삼합회를 끌어들이므로써 본인의 몰락을 가져오게 된다. 사이클론과 구룡성채 일원의 노력으로 찬록쿤은 도망치게 되지만 사이클론은 죽고 젊은이들은 다쳤으며 추 형님은 구룡성채의 소유권을 잃는다.


의리로 함께 했던 동생도 죽게 만들고 본인도 삼합회에게 감금당하고, 복수를 꿈꾸던 그의 모습이 처량하기만 하다. 물론 보통 원수의 자식이라면 원수를 닮기 마련이니 보기만 해도 분노가 끓어오를 수도 있다. 그 부분은 이해가 가지만 삼합회의 계략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분명 이성적이지 못했다.(하긴 새파란 젊은 친구에게 싸움에서 졌으니 더 그랬을 수도..)



영화에서 짧게 지나가기 때문에 잊을 수도 있는데 따지고 보면 사이클론은 찬록쿤의 원수이기도 하다. 찬록쿤의 아비인 찬짐을 죽인 이가 사이클론이기 때문이다.

젊을 때의 사이클론(좌)과 찬짐(우)

찬록쿤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란 게 없어보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갈 곳 없는 자신을 받아준 구룡성채와 사이클론이 아버지라고 불릴 만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이클론은 마음 속에 짐이 있었을 것이다. 생사결을 통해 자신이 이겼지만 친구의 자식과 아내를 돌봐준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이클론은 폐병이 악화되어 몸이 정상이 아니었지만 추 형님를 꼬드긴 삼합회로부터 찬록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결국 역부족이라 안타깝게도 장렬히 전사하고 만다.


아버지를 죽였지만 아버지와도 같은 사이클론의 죽음은 찬록쿤에게도 복수의 씨앗을 심었다. 결국 사이클론을 죽인 삼합회 보스와 최후의 결전을 통해 복수에 성공한다.(친구들의 도움도 있었다) 여기서는 복수의 상대가 매우 팔팔한 데다가 계속해서 악행을 해왔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복수에 토를 달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대미에서 찬록쿤은 싸움이 끝나고 좁은 틀에 갇힌 추 형님을 구한다. 그리고 기력이 없었던 형님의 눈 앞에선 찬짐의 모습이 보이다가 다시 찬록쿤으로 바뀐다. 찬록쿤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지만 원한이 없었기에 그를 구해주었고, 그 덕분에 목숨을 구한 추 형님은 마음 속에 남아있던 복수심을 버린다.



복수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혹자는 최고의 복수를 모두 잊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복수란 정말 험난한 길이기 때문에 전자를 택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전국시대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처럼 계속 그 일을 기억해야 하고 복수의 불꽃을 사그러지게 노력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던 기회는 사라지고 본인의 삶은 복수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솔직히 복수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자기 삶보다 복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어렵지 않을까.


사실상 이 영화에서 아버지와 연이 1도 없던 찬록쿤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추 형님은 쉽게 말해 연좌제를 적용한 셈이다. 복수는 연좌제를 적용해도 정당한 것일까? 아니면 정당하지 않은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밤이다.

(나에게 복수는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 그냥 고통을 견디는 수밖에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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