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설을 보고
세상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존재에 대해서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별로 와닿지 않는다.
실제로 가족이나 주위에 장애인이 없는 경우 장애를 매우 크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직장인 시절 우연하게도 장애를 가진 분들과 일을 하게 되었고 장애를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고 어떻게 대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서 조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본 영화 청설, 뜻은 들을 청과 말할 설의 조합이니 듣고 말하다 라는 것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청설의 주인공들은 청각장애인으로 나오니 듣고 말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이야기를 꾸려나가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인권이 있다. 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일반인의 잣대로는 제대로 된 인권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보통 마찰이 일어나는 여기에 있다.
영화 청설에서도 초반부에 잠깐 진상 아줌마가 한 명 나온다. 물론 그녀도 어떤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일 것인데 장애인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황당한 요구를 한다. 예를 들면 장애인은 수영장을 쓰지 마라의 계열이다. 정작 본인은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고 과태료 10만원을 부과받을 예정이지만.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해와 관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건 꼭 장애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금 비약적일 수도 있지만 서울에서 자고 나란 사람이 부산은 시골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진 않다. 결국 자기가 알고 모르는 것의 차이가 크게 작용한다. 경험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물론 지능도 좀 반영될 것 같다)
주인공 용준(홍경)은 철학과를 졸업한 평범한 청년이지만 선배에게 속아 수어를 배웠다. 덕분에 도시락 알바 배달로 갔던 수영장에서 처음 본 또래 여자애 여름(노윤서)과 수어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가 수어를 몰랐다면 이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학 OT때인가 수어로 이름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다. 아직도 나는 내 이름을 수어로 쓰는 법을 대충 기억한다. 이래서 어릴 때 공부해야 하나보다. 물론 그것뿐이라 대화는 할 수 없지만. 청설을 보고 조금 더 관심이 생겼다.
그러나 수어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도 그렇게 쉽게 다가가긴 어렵다. 철학과 출신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노윤서가 너무 예뻐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존경할 만한 부분이다.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누군가랑 사귄다는 결정을 하긴 쉽지 않다.
아무리 이상형이라 해도 말이다. 살다보면 또 다른 이상형을 만날 텐데 굳이? 하지만 용준에게는 장애가 있는 것은 없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고 생각한다. 용준과 여름은 수어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건 같은 말을 하면서도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 일반인들보다 오히려 더 멋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용준의 엄마가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못 듣는다는 말을 남편에게 하자.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멀쩡히 말하는 사람들도 대화가 안 통하고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큰 흠이 아니라고. 사람의 장애가 아닌 사람 그 자체로 보는 인본주의 사상을 지닌 아버님이시다.
반대로 여름 가을 자매의 입장에서는 장애가 없는 보통 사람이 자신들을 얼마나 이해해줄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깔려있지 않을까. 특히 좋아한다고 달려드는 남자야 있겠지만 과연 얼마나 갈지. 그런 걱정이 쉽게 연애를 시작할 수 없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배우 분들과 같은 미모라면 오히려 조심해야 할 것이다)
사실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실적인 문제는 부모님이나 지인들, 그리고 사회적인 시선이다. 특히 장애가 유전되지 않느냐라는 불안감이 크게 작용한다. 생물에 약해서 잘은 모르지만 장애마다 발현성이 다르니 꼭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뭔가가 유전된다는 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장애인의 부모가 되기도 한다.
나는 장애가 아니지만 희귀질환이 있다. 살다보니 갑자기 생겼다. 그런데 장애가 있는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느낀 점은 그냥 사람이라는 점이다. 불편한 게 있을 뿐이지, 그 외에는 혼자서 다 잘한다. 누군가의 짐이 되는 것을 달가워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만 확실히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긴 하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건 사실 평범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누군가는 도움을 받고 또 누군가는 도움을 주며 세상은 돌아간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삶의 기쁨이 된다.
영화에서 용준이 귀마개를 끼고 축제가 한창인 길거리를 걷는 장면이 나온다. 귀마개를 착용하자마자 그 시끄럽던 소리가 뮤트 상태가 되면서 남자들은 익숙할 파이어 인 더 홀 모드와 비슷해진다.
여름과 문제로 인해 용준이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장면이었는데 뒤에서 차가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해 결국 한 여학생이 그의 등을 두드려 알려준다. 아마 운전자는 앞에서 도로 중앙을 걸어가는 용준을 보며 속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해와 아량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용준은 평소 여름이 이런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를 느꼈을까.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진짜 아는 것은 많지 않다. 그래서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의 입장에 빠져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알게 되기도 한다. 그 사람의 생각을.
사실 영화를 본 사람은 내 생각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진실이 나와서 조금 당혹스럽긴 했다.
그 진실이 뭐냐고?
그건 영화로 확인해보자.
(노윤서 배우 때문에 평가를 조금 더 후하게 주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