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교만 : 엄마
교만 : 겸손하지 않고 뽐내고 건방짐. 그리스도교에서 설명하는 최초의, 궁극의 죄악
[엄마 아침밥 먹었어? 뭐해?]
엄마보다 13시간 뒤쳐진 시간을 살고 있는 만큼 몸도 게을렀던 나는 오늘도 눈뜨자마자 전화 대신 메시지를 선택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오전조로 근무하는 룸메이트의 이부자리가 출근을 서두른 흔적들로 어지럽다.
[눈이 많이 와서 자판이 잘 안 눌러져. 교회 가고 있어]
텍사스는 겨울이 되어도 한국만큼 추운 지역이 아니다.
거의 일 년간 눈 구경은 하지 못한 상태여서일까.
새벽 다섯 시에 무릎까지 덮인 눈을 뚫고 40분 남짓한 거리의 교회까지 걸어갔다는 엄마의 간절함이 내가 있는 곳까지 닿지 않는다.
[뭐하러 눈이 오는데도 새벽기도를 갔어, 그냥 오늘은 집에 있지.]
내 핀잔에 속상했는지 한참 동안 답이 없는 엄마를 뒤로하고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거실에 방하나가 딸린 월세 70만 원짜리 이 아파트는 리모델링한 신축 아파트였는데 일터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게토(흑인이 많고 저소득층 인구가 많아 잘 정돈되지 않은 지역)에 위치에 월세가 저렴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막 미국 생활을 시작한 우리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했을 때 회사에선 걱정이 많았다. 집은 무조건 가까운 곳이 장땡이라는 걸 알고 있는 자취 4년 차 동양소녀는 굴하지 않고 단번에 계약을 성사시켰지만.
내가 미국 호텔에서 첫 커리어를 쌓기로 마음먹은 것은 한 미국 여자에게 한눈에 반해 커져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쯤부터였다. 신입생 땐 그 여자가 주인공인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 미쳐있던 게 전부였다가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는 저 여자의 삶을 나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 저지른 일이었다. 무엇보다 정해진 기간에만 주어지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원부서는 내 전공이었던 관광경영학을 토대로 프런트 부서로 정했다. 입사초에 체크인/체크아웃 업무를 맡다가 일의 능률에 따라 매니저의 재량으로 백오피스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었다. 나는 운이 좋아 세 달 만에 부서를 옮겼는데 화장실을 갈 때도 삼세번은 마음먹고 가야 할 정도로 업무량이 넘쳐나는 그곳은 그야말로 빌딩 속의 전쟁터였다.
첫째로,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 우리가 다루는 시스템으로 모든 불만사항 접수/ 룸서비스 예약/ 다른 부서와의 소통이 수시로 업데이트되기 때문이다.
둘째, 전화는 모두 받아 처리한다. 대표전화는 이쪽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부재중 전화란 있을 수없다. (참고로 전화벨이 울리는 간격은 1분에 평균 3-4번으로 한참 바쁠 땐 두 개의 수화기를 동시에 받은 적도 있다)
셋째, 무전기로 호텔 셔틀버스 운전기사에게 공항에 도착한 게스트를 30분 간격으로 디스패치 해야 한다. (기사에겐 게스트의 이름, 생김새, 러기지수 등의 디테일을 알려주고 게스트에겐 몇 번 게이트에서 호텔 버스를 기다리라고 알려주는 업무이다)
8시간 내리 영어로 입씨름을 하고 실수를 만회하러 이곳저곳 발로 뛰어다니며 더 큰 실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면 퇴근할 즈음엔 실제로 근육통이 몰려온다.
“한국인 이신가 봐요?”
퇴근을 몇 분 앞두고 뻣뻣한 어깨를 마사지하고 있던 차에 체크인을 하러 온 델타 승무원이 건네는 인사였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한 그녀는 단번에 내가 한국인인걸 눈치챘다고 한다.
“네. 한국말 잘하시네요!”
‘낸시’라는 명찰을 달고 있던 그녀는 내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게 기내에서 가져온 쿠키 봉지를 건네며 이런저런 질문을 더했다.
“여기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었어요? 저번에 왔을 때는 안 계셨던 것 같은데”
“이제 9개월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아 그래요? 텍사스에서 나고 자라신 거예요?”
“아니요,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왔어요. 세 달 뒤면 다시 돌아가요”
“ 아 정말요?”
미소로 가득했던 그녀의 얼굴이 금방 어두워졌다. (이유는 몰라도 그녀는 내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네..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이 정말 살기 좋은 것 같은데 비자 때문에 어쩔 수 없네요”
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곧 입을 뗐다.
“ 그러면 승무원을 해봐요! 엄청 잘할 것 같은데!”
내가 그녀를 쳐다보며 웃었다.
“ 진짜로!! 시급도 여기보다 두세 배는 받을 것 같은데!”
내 귀를 입에 바짝 대고 속삭이던 그녀에 행동에 잠시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 파리에서 아침 먹고 뉴욕에서 쇼핑하고 싶지 않아요? 잘 생각해봐요! 진짜 재밌으니까! 굿 나잇!”
시간은 빠르게 흘러 퇴사를 하게 되었고 한 달간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뉴욕을 여행했다. 맨해튼에 숙소를 두고 가장 먼저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집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녀의 아지트였던 베이커리에서 마카롱을 먹었다.
[한국에는 언제 들어오는 거야?]
자주 바뀌는 여행 일정으로 엄마에겐 정확한 귀국 날짜를 이야기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뉴욕 여행을 다 끝마쳐 갈 때쯤엔 평소답지 않게 자주 메시지를 했다. 이곳을 떠나면 한동안은 미국 여행을 할 수없다는 생각이 들자 센트럴 파크 앞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던 중에 셀카를 찍기로 했다. 미국에 오면 누구든 한 번쯤 찍는다는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유지 중이었지만, 이 순간은 포착하고 싶었다.
‘내년에 다시 이곳에서 점심을 먹어야지’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는 순간까지 아무 생각도 없다가 저 멀리 희미하게 제주도가 보이기 시작하자 내가 귀국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인파 속에 정신없이 시달리다, 버스에 앉자 모든 세상이 고요해지는 느낌이었다. 달리는 버스 창가 밖으로 바쁜 도심을 바라보면 지난 모든 시간들이 꽉 쥐고 있지 않으면 증발해 버릴 것 같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져 괜스레 서글퍼졌다.
“엄마 나왔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부터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집 안은 내가 집을 비운만큼 냉기가 돌았다.
짐을 풀고 한참 방 정리를 하고 있는데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 얼굴엔 알 수 없는 무게가 역력했다. 내 보내야 할 것을 품고 있다가 몸안에서 터져버린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 같았다.
“아빠는?”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머리가 멍해졌다.
우리 집이 망했단다.
치열한 한국경쟁의 장에서 내 이름을 지우고 바다 건너 피신해 왔을 때, 우리 가족은 무너지고 있었다.
딸이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말을 위안삼아 수화기 넘어 흔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끝내 듣지 못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눈보라를 헤치며 걸었을 그녀의 컴컴한 새벽길을 깊은 신앙심으로 보았고, 아무 말도 할 수없어 내 이름만 가득한 문자 메시지를 딸을 향한 대수롭지 않은 그리움으로 읽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처절하고 절박한 도움 요청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옷을 갈아입던 그녀의 앙상한 허벅지가 눈앞에 드러나자 참을 수 없이 가볍고 알량했던 기억의 조각들이 내 위로 쏟아져 숨이 막혔다. 그녀의 갈라지는 목소리에 수백 수천번을 무너지고 굴복했다. 아이처럼 우는 엄마를 앞에 두고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아 멍하니 있는데 귓속으로 뜬금없이 그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린다.
[ 파리에서 아침 먹고 뉴욕에서 쇼핑하고 싶지 않아요? 잘 생각해봐요! 진짜 재밌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