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래 Apr 07. 2023

인생은 짧고, 세상은 넓어!

영원한 건 없다지만, 분명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선명한 것들이 있다. 나에겐 그중 하나가 ‘맘마미아!’의 여운이다. 2008년 처음 그 영화를 봤을 때부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매년 여름이 다가오는 초입이 되면 언제나 이 작품을 떠올린다. 이미 오피니언에서도 나를 그 여름으로 불러들이는 ‘맘마미아!’에 대한 예찬을 한 적이 있다. 


[Opinion] 나의 여름, 맘마미아! -> 읽어보기! 


‘맘마미아!’는 올해로 24주년을 맞은 대대적인 뮤지컬 작품이다. 그동안 전 세계 450개 도시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맘마미아!’는 그야말로 메가 히트 뮤지컬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맘마미아!’라는 작품을 영화로밖에 접해보지 못했다. 어렸을 적엔 뮤지컬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조금 자라고 나서는 이런저런 스케줄 때문에 뮤지컬을 보지 못했으니 이보다 안타까운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런 내게 다시 한 번의 기회가 돌아왔다. 뮤지컬 <맘마미아!>가 3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것이다!



2023 <맘마미아!>는 2020년 서울 앙코르 공연이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된 이후 3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는 작품이다. 오래 기다려온 만큼, 환상의 하모니를 만들어내기 위해 최고의 배우들이 모였다.


이번 2023 <맘마미아!>는 도나 역의 최정원과 신영숙, 타냐 역의 김영주와 홍지민, 로지 역의 박준면, 샘 역의 김정민, 해리 역의 이현우와 같은 기존 멤버들에 새로운 멤버들이 더해졌다. 새롭게 합류하게 된 소피 역의 김환희와 최태이, 로지 역의 김경선, 샘 역의 장현성과 해리 역의 민영기, 그리고 빌 역의 김진수와 송일국은 2021년부터 시작된 공개 오디션을 통과한 배우들이다.


‘맘마미아!’ 뮤지컬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미 그 자체로도 기대가 되는데, 그 명성을 익히 들어왔던 기존의 멤버들과 새롭게 합류한 멤버들이 어떤 합을 보여줄지도 정말 기대가 됐다. 내가 감상한 회차에서는 최정원, 최태이, 김영주, 김경선, 장현성, 민영기, 송일국을 비롯한 배우들이 감동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다. 정말 쟁쟁한 배우들의 라인업이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최정원 도나에 대한 기대가 가장 큰 채로 공연장에 들어갔다. 


[2019 <맘마미아!> 공연 사진]


2023 <맘마미아!>와 함께한 하루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맘마미아!’를 영화로만 접해보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도 영화와 뮤지컬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뮤지컬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장점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를 바탕으로 비교한 솔직한 감상을 적어보도록 하겠다. 


우선, 피부로 가장 크게 느껴지는 특징은 바로 노래 가사였다. 나는 한 평생 ‘맘마미아!’의 모든 넘버를 영어로 들어왔다. 그런데 뮤지컬에선 배우들이 한국어 가사로 넘버를 소화한다. 이 점이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낯설었다. 자꾸만 속으로 영어 가사를 읊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인지부조화가 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런데 첫 번째 넘버가 지나자 점차 한국어 가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번역한 가사를 듣는 게 생각보다 신선했다. 또한, 한국어 버전으로 들으니까 상황과 가사를 곱씹을 수 있어 더욱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처음엔 이 부분이 몰입을 방해할 줄 알았는데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오히려 극의 몰입을 돕는 장치가 되었다. 그러니 혹여 나처럼 영어 버전에 더욱 익숙한 사람이라면 뮤지컬을 관람하기 전에 한국어 버전 넘버를 미리 들어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한국어 버전을 즐길 수 있게 되면 영어 버전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등장인물들의 심정을 더욱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영화와 뮤지컬은 스토리 진행과 넘버의 순서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면, 넘버 ‘맘마미아’가 등장하는 장면의 진행이 영화와 차이가 있고, 영화에서는 삭제된 넘버인 ‘The Name Of The Game’이 뮤지컬에서는 존재한다. 이야기의 내용을 전부 알고 있음에도 새로운 전개와 새로운 넘버를 만나볼 수 있어서 이 차이가 나에겐 상당히 신선했다. 


특히, 넘버 ‘Our Last Summer’는 영화와 아주 다른 순서와 구성으로 진행되어서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넘버여서 색다른 구성 역시 정말 마음에 들었다. 영화에서는 소피가 샘과 해리, 빌과 노래를 부르는데, 뮤지컬에서는 도나와 해리가 함께 노래를 한다. 가사의 내용이나 이야기의 서사에 있어 뮤지컬 버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해리와 도나의 현재 감정을 확실히 정리해주는 넘버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2019 <맘마미아!> 공연 사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건 바로 현장감이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하면서도 콘텐츠의 특색이 강하게 도드라지는 특징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영화는 현장감이 부족한 영상 콘텐츠인 대신 아름다운 미쟝센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고, 뮤지컬은 배경에 대한 한계가 있는 대신 관객들에게 직접 현장감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2023 <맘마미아!>는 이 부분에서 상당한 아쉬움을 보였다. 


우선, 무대 장치에 대한 아쉬움이다. 2023 <맘마미아!>는 무대 중앙에 설치된 무대 장치를 활용하여 여러 종류의 배경을 만들어낸다. 두 개의 벽으로 구성된 무대 장치는, 때로는 펜션의 내부와 외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방 안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결혼식을 하는 공간을 표현해주기도 한다. 단 두 개의 벽으로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만들어낸 것은 좁은 무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무대 장치로서 훌륭한 역할을 한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벽이 너무나도 특색이 없었다는 점이다. ‘맘마미아!’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리스의 작은 섬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배경이 주는 감동의 여운도 큰 편이다. 뮤지컬이 가지는 배경의 한계에 대해서 분명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서 나온 실제 배경만큼을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흰색 벽과 파란색 창틀로 그리스의 배경을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리스의 작고 아름다운 펜션을 보여주는 특색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더욱 풍성한 무대가 되었을 것 같다. 


현장감에 대해 아쉬웠던 부분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마이크의 음량 문제였다. 뮤지컬의 현장감이라 하면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로 충족되는 것이다. 그런데 2023 <맘마미아!>의 경우, 마이크의 음량이 오케스트라 음악 크기에 비해 작았다. 그래서 배우들의 목소리가 조금 작게 들렸다. 


이 부분이 상당히 아쉬웠다. 배우들의 대사나 노래 소리가 조금만 더 컸으면 더욱 잘 들렸을 것 같은데,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묻히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나마 최정원 배우나 김영주 배우 등은 발성과 성량이 워낙 좋아서 음량이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선명하게 들렸지만, 다른 배우들의 노래 소리가 조금 작게 들려서 아쉬웠다. 음량 조절을 적절하게 한다면 보다 만족스러울 것 같다. 


무대 장치의 활용과 마이크의 음량 탓에 뮤지컬의 독보적인 매력인 현장감이 조금 덜했다. 하지만, 이 부분을 보완한다면 더욱 아름다운 <맘마미아!>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2019 <맘마미아!> 공연 사진]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23 <맘마미아!>를 끝까지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명연기 덕분이었다. 배우들은 최고의 연기와 노래를 보여주었다. ‘맘마미아!’는 작품의 특성상, 다른 작품보다도 앙상블이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만큼 앙상블이 눈에 띄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2023 <맘마미아!>의 앙상블은 활발한 에너지로 극의 유쾌함을 한껏 고양시켰다. 하지만 여기서도 조금 아쉬운 점이 분명 있었다. ‘Money, Money, Money’를 굉장히 기대했는데, 너무 기대를 많이 한 탓인지 이 넘버는 앙상블이 조금 아쉬웠다. 앙상블과 도나가 온전히 어우러지지 못하고 살짝 따로 노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Super Trouper’와 ‘Gimme, Gimme, Gimme’ 넘버에선 앙상블이 정말 돋보였다. 그 결과 완전히 집중한 상태로 1막이 끝나 인터미션 동안 그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극이 끝난 후 커튼콜과 앵콜곡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앙상블의 에너지가 관객석까지 전달되었다.


주연 배우들 중에서는 특히 최정원 배우와 김영주 배우, 그리고 최태이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출처_신시컴퍼니 인스타그램


최태이 배우는 2023 <맘마미아!>로 ‘맘마미아!’에 처음 합류한 배우이다. 최태이 배우의 목소리가 정말 낭랑해서 소피 역으로 완벽하다는 생각을 극을 감상하는 내내 했다. 맑으면서도 단단한 목소리가 발랄하고 긍정적인 소피의 성격과 정말 잘 어울렸다. 그중에서도 도나와 소피가 함께 부르는 ‘Slipping Through My Fingers’ 넘버를 정말 잘 소화해서 감탄했다. 


최태이 배우가 눈에 띄었던 이유는 단순히 노래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최태이 배우는 소피의 불안정함을 누구보다도 잘 연기했다. ‘맘마미아!’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방황하고 있지만, 그중 가장 크게 불안정한 사람은 소피라고 생각한다. 


소피는 20년 동안 자신의 반쪽을 찾고 싶었고, 그 해답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해서 과감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선택이 불러온 파장은 소피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고,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소피는 혼란을 느낀다. 겉으로는 그저 발랄하고 긍정적이며 조금은 충동적으로 보이지만 소피는 분명 많은 고민을 했고, 그 과정 속에서 불안정했다. 


최태이 배우는 소피의 그런 면모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가끔은 흔들리고, 조금은 칭얼대고, 약간 충동적일 수는 있어도 그 속엔 곧은 자신감과 자아가 있고, 끝내는 올바른 선택을 하며 행복을 스스로 찾아내는 소피의 단단함을 말이다.   


출처_신시컴퍼니 인스타그램


김영주 배우는 정말 타냐 그 자체였다. 기존에 <맘마미아!>를 함께 했던 배우인 만큼, 모든 씬에서 눈에 띄었다. 김영주 배우의 연기가 배우들 중 가장 자연스러웠다. 타냐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타냐가 무대에 올라서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연기가 자연스러웠고, 작은 제스처 같은 세심한 포인트에서도 타냐의 매력을 가득 보여주었다.


타냐는 도나의 친구로 등장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등장인물인데, 김영주 배우가 타냐의 매력을 정말 잘 살려주었다. 타냐의 가장 큰 매력인 도도하면서도 당당한 태도와 목소리, 그와 정말 잘 어울리는 코믹한 대사까지 김영주 배우의 모든 것이 타냐 그 자체였다. 


가장 눈에 띄었던 넘버는 아무래도 타냐의 단독 넘버인 ‘Does Your Mother Know’였다. 영화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넘버였는데, 김영주 배우의 탄탄한 발성과 목소리가 이 넘버를 더욱 빛내주었다.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무대 매너와 표정 연기는 덤이었다. 김영주 배우는 그 순간 완벽한 타냐로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출처_신시컴퍼니 인스타그램


가장 기대했고, 그 기대를 충족시켜준 배우는 바로 최정원 배우였다. 최정원 배우가 연기하는 도나를 한 번은 꼭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야 최정원 도나의 명성이 왜 그렇게나 높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최정원 배우의 노래는 정말 완벽했다. 발성과 성량을 기반으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감성이 내게도 전달됐다. 도나의 감정선이 가장 잘 표현되는 넘버는 다름 아닌 ‘The Winner Takes It All’이다. 이 넘버에서 도나는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고, 모든 걸 내려놓은 뒤 샘을 떠난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도나가 지난 날 느꼈을 상실감과 절망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최정원 배우의 연기력이 여기서 폭발했다. 


최정원 배우의 음색은 차분하면서도 강하게 관객들을 집중시켰고, 잔잔하게 시작되는 노랫말이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넘버 후반부에서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최정원 배우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분명히 목소리에는 물기가 어렸는데 신기하게도 발음이 뭉개지거나 음정이 불안정해지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노래하고 있음에도 분명 도나는 흐느끼고 있었다. 


이때 나는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도나는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누구보다 이 섬에 발이 묶인 사람이다. 돌아갈 곳이 없는 도나에게 있을 곳이라곤 미치도록 아름답지만 도망치고 싶은 기억이 가득한 이 섬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도나는 도망칠 수도 없었다. 사랑하는 소피를 위해 도나는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도나는 그걸 훌륭하게 해냈다.


하지만 단단하게 두 발 딛고 섰다고 도나의 상처가 사라지거나 억압된 자유가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도나가 소피를 사랑하는 것과 명백히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도나는 분명히 소피를 사랑했고, 그와 동시에 상처받은 마음을 잘 동여매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랬던 도나가 샘과 해리, 빌을 다시 만나게 되며 혼란을 마주해야 했고, 잘 묻어두었던 기억들 역시 다시 마주해야 했다. 


그 상항에서 샘에게 느끼는 배신감과 아직 남아 있는 사랑은 도나에게 큰 소용돌이였을 것이다. 도나는 그걸 정리해야만 했다. 사랑하는 소피의 결혼식이 코앞이니까. 감정을 몇 번이나 죽이고 죽여 겨우 샘에게 건네는 장면이 바로 ‘The Winner Takes It All’이다. 그러니 도나가 이때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정원 배우는 극 내내 멋지게 도나를 연기했고,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완벽한 도나가 되었다. 


[2019 <맘마미아!> 공연 사진]


오랜 시간 사랑해 온 작품이기에 더욱 진심을 다해 솔직한 리뷰를 작성했다. 2023 <맘마미아!>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극이 진행되는 중 몇 번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만큼 ‘맘마미아!’는 관객들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진 작품이고, 2023 <맘마미아!> 역시 그 명성을 훌륭하게 이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처음으로 감상하는 ‘맘마미아!’ 뮤지컬이었는데, 좋은 추억의 한 조각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2023 <맘마미아!> 속 모든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덕에 ‘맘마미아!’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만나보지 못한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도나와 소피, 로지와 타냐, 샘과 해리, 빌도 만나보고 싶다.


2023 <맘마미아!>는 2023년 6월 25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3년 만에 돌아온 ‘맘마미아!’인 만큼, 이번 기회에 관람해보는 것도 좋겠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4226


작가의 이전글 히게단디즘의 사계절 (1)- Official髭男dis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