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히든 스테이지
지난 주말,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 [Hidden Stage]를 관람했다.
[Hidden Stage]는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판매회사인 한성자동차와 한국메세나협회가 개최한 전시로, 미술영재 장학사업 ‘드림그림’의 일환이다. [Hidden Stage]는 드림그림의 장학생들과 서양화가 배준성의 작품들을 전시하며, 11월 25일부터 12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무료로 만나볼 수 있다.
드림그림 장학사업이란, 한성자동차와 한국메세나협회가 운영하는 미술 영재 장학사업이다. 2012년부터 시작된 이 장학사업은 예술에 꿈이 있는 중, 고등학생 40명을 경제적으로 지원함과 동시에 유명 아티스트와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예술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그 멘토링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지난 4월과 5월에 걸쳐 진행된 배준성 작가와의 멘토링이다. 이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장학생들은 배준성 작가의 작업 방식과 표현 기법을 배우며, 자신만의 꿈과 소망을 담아 ‘Hidden Stage’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후 배준성 작가가 이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콜라보레이션 작품을 두 점 창작했다.
이 두 점의 콜라보레이션 작품이 바로 전시 [Hidden Stage]의 메인 작품이다. 메인 작품과 함께 배준성 작가가 올해 새로이 발표하는 연작 ‘On the Stage’와 배준성 작가의 시그니처 시리즈인 ‘렌티큘러’ 작품이 전시된다.
또한, 지난 2020년 진행되었던 드림그림의 재능기부 프로젝트를 통해 배준성 작가가 용인세브란스 병원에 기증한 대형 렌티큘러 작품이 이번 전시에 등장하면서 더욱 풍성한 전시를 완성해 주었다.
서양학과 배준성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를 졸업하며 2000년 오늘의 젊은 에술가상을 수상했다. 섬세하고 현실적인 묘사로 세상을 표현하는 배준성 작가는 고유의 작품 세계를 확립해 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배준성 작가는 올해 ‘On the Stage’라는 연작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공연 기법인 스포트라이트를 회화 작품에 적용한 것으로, 단순한 배경으로만 여겨지던 꿈이나 일상, 소망 등을 포착하여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작품이다.
드림그림 장학생들은 바로 이 방법으로 각자의 작품을 창작했다.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의 소망을 비추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전시장에 입장하고 바로 장학생들의 작품들을 일부 만날 수 있었는데,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며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바로 경이로움이었다. 작품들 하나하나에 서사와 자아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자유로운 물감의 질감과 다채로운 색깔들 속에서 그들의 세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비치된 태블릿을 통해서 장학생들의 작품 전부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작품을 그린 의도와 담고 싶었던 내용을 설명한 글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나하나 감상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장학생들의 작품이 전부 생각보다 심오하게 주제를 표현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휴식과 자유, 상상 등 상당히 추상적인 주제를 가진 작품들은 각각 학생들의 풍부한 세상을 담아내고 있었다.
학생들의 작품은 하나같이 독창적이었다. 자유롭게 주제를 구현해 낸 능력이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학생들의 그림은 훌륭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이 그동안 예술이라는 분야를 향해 꿈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이 전부 훌륭한 그림이었다. 미술에는 전혀 일가견이 없는 필자에게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그림을 통해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경이로웠다.
학생들이 비춘 스포트라이트에 있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혹은 그들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무언가일 테다. 그렇게 강조된 것들은 틀림없이 그들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일 것이다. 장학생들이 그림을 통해 나눠준 그들의 소중한 세상을 구경하는 건 정말로 행복하고도 고마운 경험이었다.
학생들의 그림에서 독창성이 느껴졌다면, 배준성 작가의 작품에서는 이미 확립된 고유의 개성이 느껴졌다.
배준성 작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그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을 전부 하나의 색으로 채색했다. 그를 통해 스포트라이트 부분이 확연하게 강조되면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명확해졌다. 명도와 채도가 모두 낮은 색으로 칠해진 그림 가운데에서 다채로운 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눈에 확 띄면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또한, 배준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은 연신 감탄을 자아냈다. 잎사귀 하나, 물방울 하나까지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한 그의 표현력은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실감 난 묘사를 보여주었다. 그 표현력은 그림의 스포트라이트를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해주고, 배준성 작가 특유의 색감은 그림을 꿈처럼 아름답게 느껴지게 해주어 작품성을 끌어올렸다.
‘On the Stage’가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 일상의 특별함이었다면, 배준성 작가의 시그니처인 ‘렌티큘러’ 시리즈는 보다 넓은 시각을 일깨워 주었다.
배준성 작가는 보는 각도와 시선에 따라 다른 장면을 볼 수 있는 렌티큘러 방식의 회화 작품을 국내에서 처음 선보였다. 1996년 당시 서양 명화와 모델 사진을 활용해 그 위에 투명한 비닐을 덮어 물감을 칠하는 방식으로 주목받은 그는 지금까지 사진과 회화를 결합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신기하고 색다른 기법이라 이 렌티큘러 시리즈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렌티큘러 시리즈는 어느 쪽에서 보면 하나의 대상만이 보이지만, 또 다른 쪽에서 보면 풍성한 대상이 캔버스를 꽉 채우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감상할 수 있는 대상의 느낌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끼며, 세상을 보는 것도 이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눈앞의 대상이 담고 있는 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 시각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을 따뜻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준 [Hidden Stage]는 정말 문자 그대로 숨겨진 무대 같은 전시였다. 그야말로 필자가 여태 보지 못했던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배준성 작가가 그려낸 ‘On the Stage’ 작품들처럼, 장학생들이 그려낸 ‘Hidden Stage’ 작품들처럼 내 삶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흘려보낸 소중한 일상, 꿈, 희망 또는 소망 등등 내 삶 속에서 내가 그리는 꿈의 무대는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 보게 되었다.
내 인생의 아티스트는 나다. 그걸 그리기 위해서는 배경, 소품, 물감, 붓 등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지만, 어쨌든 인생이라는 그림을 그려내는 건 나다. 그러니 내 인생의 아티스트로서,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 필름을 선명하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드림그림 장학사업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정말 좋은 기회였다. 예술에 재능 있는 청소년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예술적 세계를 넓혀주려는 기업적 사업이 인상 깊었다. 앞으로도 이런 사업이 확장되었으면 좋겠고, 널리 알려져 우리나라 예술 산업의 초석들이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Hidden Stage]는 장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을 프로그램의 연장선인 전시회인 만큼, 관람객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만들어 낸 전시라는 점에 있어 커다란 울림이 있었고, 깊은 메시지가 담긴 높은 수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 자체도 좋은 추억이 되었다. 다음번에도 드림그림 전시회가 개최된다면 또 오고 싶다.
필자는 전시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이틀 차에 방문했는데도 관람객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친구 단위, 연인 단위. 가족 단위 등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들과 함께 전시를 즐겼다. 인상 깊은 작품들이 가득해 보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했다. 전시를 다 본 후에는 SNS 이벤트에 참여해 선물을 받을 수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정말 기분 좋은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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