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 자랑
자랑(pride)은 교만과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대표적인 부덕이죠. 한편 pride는 좋은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라고 느끼는 일종의 자중심(自重心)도 pride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마땅히 이런 종류의 자중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만한 인격적 소양을 갖출 때 그럴 수 있죠.
일반적으로는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 원칙입니다. (자랑하는 자들은 당신 눈앞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 시 5:5)
그런데 자랑하도록 권고받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9장 24절입니다.
“자랑하는 사람은 이런 것을 자랑하여라. 곧 통찰력을 가진 것과 나를 아는 것을,
내가 충성스러운 사랑과 공의와 의를 땅에 나타내는 이인 여호와라는 것을 자랑하여라.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창조주에 대한 앎을 갖는 것은 기본적인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앎을 가지고 있지 않죠.
뭔가에 대해 자랑할 경우 예를 들면 단지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좋은 점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함으로써 그렇게 하죠.
좋은 점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있는데 바로 창조주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앎을 가진 것은 자랑할 만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전에 통찰력을 가진 것을 자랑하라고 하는 것이죠. 통찰력의 기본적인 의미는 감각되는 현상을 낳는 감각되지 않는 원인을 보는 능력을 의미하죠. 예를 들면 물건을 놓으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보이지만 그 원인이 되는 중력은 보이지 않죠. 이를 발견한 물리적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뉴턴인데 그러므로 그러함은 그의 자랑 즉 영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창조주와 그분의 보이지 않는 특성을 보는 것 역시 통찰력이죠. 즉 영적 통찰력이 있어야 창조주에 대한 앎을 가질 수 있죠. 그러므로 통찰력은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통찰력과 같은 지적 기능은 갖기를 원한다고 갖게 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인간이 기도를 통해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통찰력입니다.
통찰력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기도 하죠. (시 32:8)
통찰력이 사용된 몇몇 구절들입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니, 그 눈이 닫혀서 보지 못하고 그 마음에 통찰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사야)
보라! 나의 종은 통찰력을 가지고 행동할 것이다. 그는 높여지고 받들어져 더없이 존귀해질 것이다.(이사야)
그리고 주의 선한 영을 주셔서 그들이 통찰력을 갖게 하셨으며, (느헤미야)
이는 여호와의 손이 이것을 이루었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그것을 창조하였음을 사람들이 보아 알고 유의하며 동시에 통찰력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였고 이해하지도 못하니, 그 눈이 물감으로 칠해져서 보지 못하고 그 마음도 그러하여 통찰력이 없기 때문이다.(이사야)
통찰력을 가진 사람도 없으며 하느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로마 3:11)
사람은 통찰력이 있어야 영적인 것들을 볼 수 있으며 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