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Father of The Bride>(2015)는 동명의 코미디 영화 제목인 <신부와 아버지>(1991)를 가져온 만큼 뱀파이어 위켄드의 프런트맨인 Ezra Koenig이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가 된 심정과 믿음, 세상을 허심탄회하게 바라본 작품이었다. 2014년 그래미 베스트 얼터너티브 앨범상을 수상한 3집 앨범이 뱀파이어 위켄드의 가장 진지하고 평단의 찬사를 받은 앨범이었다"며 "이는 차기작의 재앙을 부르는 레시피"라고 말한 바 있기에, 급변하는 환경과 일종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본능적인 사이드 프로젝트로 간주되었다. 인디 신에서 '엘리트'를 자처한 탕아적인 밴드가 대중음악의 마크 론슨, 하임 등의 밴드와 콜라보를 한 것은 신선한 셈이지만, 십여 년 전의 '모던 뱀파이어'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Only God Was Above Us>는 형식과 구성, 그 어떤 면에 있어서도 밴드의 원류인 <Modern Vampires of the City>(2013)를 계승한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고 본다. 'The Surfer'에서 나오는 뉴욕의 3번 수로 터널이나, 뉴욕에 입성해 갤러리를 열게 된 한 탈세 혐의의 아트 딜러 'Mary Boone'에서의 합창은 "햇빛이 전혀 비추지 않는 LA에 연민을 보여달라"는 'Finger Back'의 가사에 대한 자문자답으로 보인다. 특히 전자는 이전에 밴드를 떠났던 Rostam Batmanglij가 공동 프로듀서로 작업을 보조해 준 유일한 곡으로, 트립 합 스타일의 비트에 변조된 보컬의 Koenig가 읊조린다. "하지만 넌 백열등 아래에서 태어나 /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본 적이 없는 성자야." 커버아트 역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바라본 디스토피아 속 뉴욕의 지하철을 연상케 한다.
그래미 어워드 수상작에 참여를 했던 컬럼비아대 동문의 Ariel Rechtshaid에 주목해 보자. 요란한 신서사이저와 스카의 영향을 받아 지하철의 마찰음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Gen-X Cops'), 색소폰과 일렉의 리프가 만나 일으키는 불협화음은 문자 그대로 '클래식한 재즈 속 펑크 에너지를 뿜어낸다. ('Classical') 아웃트로에서 아다지오로 넘어가며 끝맺을 때까지 Baio의 베이스가 둥둥거리는 일도 경쾌한 진행에 중심을 잡는다. 과거에는 이들을 두고 백인 상류층 프레피 밴드라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탁월한 편곡과 기악 활용은 앨범의 만듦새가 뛰어나다는 걸 증명한다. 가닥을 잡을 수 없는 힙스터스러운 이들은 단순한 코드 진행과 오르간과 바이올린이 더해진 'Prep-School Gangsters'을 통해 자기 지시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 자체로 본다면 걸작이라는 사실을 주지 시키지 않는가?
Credit: Michael Schmelling
위의 트랙에서 "모든 세대는 저마다의 변명을 둘러댄다"며 계급과 세대 간의 충돌을 이야기던 것처럼, 뱀파이어들은 과거와 문화를 첨예하지만 느긋하게 실토한다. 밴드명은 뱀파이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ㅡ당시 Koenig이 만들던 인디 영화의 재목이었다ㅡ'Ice Cream Piano'에서 "우리는 구시대에 피를 빨아먹은 뱀파이어들의 후손들"이라고 강한 어조로 불러댄다. Koenig은 노동자 계급의 유대인 출신, Tomson과 Batmanglij는 아일랜드와 우크라니아 등 다양한 문화적 디아스포라 출신의 혈통이나 이제는 뉴욕이 이방인들의 홈그라운드가 된 바이다.'Pravda'에서 감미로운 아프로 비트와 바탕으로 소비에트 당시 프로파간다 잡지와 잘 쓰이지 않는 발랄라이카를, 자칭 사이키델릭 거슈윈이라 칭한 'Connect'에서는 신스 베이스와 피아노로 에페드린 약물을 언급하며 매몰된 기억을 더듬는다.
사십대로 접어든 Koenig의 시선에는 우원한 이상주가 아닌 갈등에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시야가 포착되는데, 그기 보기에 밀레니얼 세대가 직면한 갈등은 과거 기성세대들의 전철을 밟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1988년 뉴욕 데일리 뉴스 기사에 장식된 알로하 항공 243편 사고 당시 승객의 말이 앨범 타이틀이라는 점을 볼 때, "오직 신만이 있었다"는 명제는 이민과 전쟁을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무심하게 들린다. 'Capricon'의 하모니카와 피아노는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력감과 안도감을 평등하게 안겨준다. "네 생일은 그 해의 염소자리였지 / 그래서 그 해는 빨리 끝났고 / 이듬해도 너의 해가 아니게 되었잖아." 회색조의 불안한 정서를 주무르던 뱀파이어들은 과거에 그랬듯 적당한 희망과 적당한 때가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전쟁의 승리와 패배, 양시론이나 양비론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오산일 테다. 시원찮은 부분을 긁어주는 트랙 'Hope'은 8분에 달하는 앨범의 하이라이트 트랙으로, 사회의 시각이 아니라 한 개인의 입장에서 그저 받아들이길 소망한다는 뜻을 밝힌다. 이따금씩 들리는 글루켄슈필의 청명한 음향은 자그마한 희망으로 들린다. "운명론이 극한으로 치닫은 것이 낙관론이라고 생각한다"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포기하고 수용하는 면이 있다"라고 말했듯이(<가디언>), 상황과 판단의 결과에 체념하되 수용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야심 차거나 기념비적인 조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곡을 듣는 청자들의 생각과 기대가 바뀔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들은 개기일식이 펼쳐진 4월 8일부터 시작해 모던 뱀파이어로서 투어를 시작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