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록 Jun 05. 2022

벌써 기대되는 형제 치과

 



올해 1월에 새로운 치과에 갔다. 국가 건강검진 구강검사에서 충치가 하나 발견되었는데 얼마 전에 다녔던 치과에서는 못 본 것이었다. 안 그래도 평소 인상이 ‘일을 하기 싫어하나?’ 싶었는데 안 되겠다 싶어 아는 분의 소개를 받고 시내 로터리에 있는 형제 치과로 옮겼다.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구강검사 때 놓친 충치를 두 개나 더 찾아냈다. 전 치과에서는 신경 치료를 받으며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어마어마하게 입었는데 형제 치과 의사 선생님은 첫 신경 치료를 단 두번 만에 고통 없이 끝내셨다. 오, 신의 손! 여기 계셨군요!


앞으로의 치료가 전~혀 걱정이 안 되었다. 오히려 바쁜 일상 중간에 누워 쉴 수 있는 휴식 시간으로 여겨졌다. 아침에 배달되었는데 펼치지 못했던 신문도 가방에 넣어가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 편히 읽었고 이름이 호명되자 룰루랄라 신나는 마음으로 뒤로 젖혀지는 의자에 가앉았다.  

   



“으아아아아아악!!!!!!!!”

두 번째 치료부터 예상하지 못 한 고통이 몰려왔다. 나는 의사 선생님이 마취주사를 놓은 다음 얼마 동안 기다렸다가 치료를 시작할 때마다 고통에 휩싸였다.


아프면 들라고   손이 번쩍번쩍 올라갔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다섯 , 주사 바늘로 잇몸을  찔리고   다시 시작되는 치료는 아까보단 확실히 덜 아팠지만  순간이 긴장이었다. 아플 때도  아플 때도 있었지만 아플  눈동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깜짝 놀라게 아팠다.   

    

아팠다... 아팠는데... 아팠지만... 그 가운데에 나를 위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이고... 아휴...”

내 치아를 갈아내고 있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자 달달 떨리고 있던 입술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내 고통에 공감해주는 목소리였다. 해석하자면 “아이고... 얼마나 아파요. 아휴... 조금만 참아요 조금만.”이었다.     


그날 이후로 의사 선생님을 유심히 봤다. 작은 몸집에 목소리도 가늘고 어려 보이는 그는 동네 어르신을 대하든 어린아이를 대하든 자신과 동등하게 대했다. 같이 호흡을 맞춰 일하는 간호사들도 아랫사람이 아닌 동료로 대했다.


과하게 친절하지도 않고 무뚝뚝하지도 않은데 그 바쁜 와중에 설명을 참 천천히 했다. 이 모든 것이 치과의사 선생님이라는 캐릭터에 기대하지 않은 것들이라 참 신기했다.   


제일 신기한 것은 환자에게 주는 공감과 위로였다. 다른 환자들에게 주는 위로는 보지를 못 해서 내 경험에 국한되어 말하는 것이지만 아마 수많은 환자에게 이렇게 공감과 위로를 전해오시지 않았을까 싶다.


첫날의

“아이고... 아휴...”

에 이어서 다음 치료에서는 아픈 치료를 마치고 얼굴이 벌게져있는 나의 어깨를 잠깐 잡아주고 가셨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여운이 대단했다.


“고생 많았어요 정말.”

이라고 해석되는 그 제스처에 나는 40분 동안 벌벌 떨며 받았던 모든 고통을 잊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성실하게 벌린 입술이 건조하게 메말라있는 날에는 치료 전에 잊지 않고 간호사에게 바셀린을 발라주라고 말했다. 바셀린을 발라주는 치과라니...              




그는 어떻게 이런 치과 의사가 되었을까? 환자가 많아서 치료 의자에 환자가 꽉 차있고 한 사람 치료가 끝나면 바로 이어서 다른 사람의 입 속으로 머리를 드 밀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편안하고 넓은 마음을 가질 수가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여유 있게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의 제스처를 할 수가 있지?  

   

그를 키운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 바로 옆에 형제 한의원이 있는데 그 한의원 원장님이 이 치과의사 선생님의 형이나 동생이라면 그분도 비슷한 성정을 가지셨을까?      


치과를 다니는 3개월 내내 의사 선생님의 공감의 말과 위로의 제스처에 번뜩번뜩 놀랐다. 감각이 없어 반쪽이 사라진 것 같은 입을 달고 치과에서 나올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 준 따뜻한 말 한마디와 손길을 꼭 붙들고 웃으며 걸었다. 치료 중에 받았던 고통은 아까 아까 잊고서.


겨울에서 봄이 되고 치료가 다 끝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의사 선생님의 대단한 위로도 좋지만 위로의 전제 조건인 고통이 사라져 시원했다.


손을 대지 못 하고 끝난 치아가 하나 있는데 그 치아는 쓸 때까지 쓰고 아파지면 오라고 했다. 그때가 되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주저 없이 형제 치과의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이다.     


또 아프겠지만 또 위로를 받겠지. 아파서 흘리는 눈물보다 감동해서 흘리는 눈물이 더 많겠지. 벌써 기대가 된다.


형제 치과, 포에버!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하고자 고이 모셔놓은 처방전. 약은 일전에 받아놓은 것이 있어서 필요가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각을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