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취직해서 만난 세계
10년 만이다.
이름도 있고 건물도 있고 월급도 주고 심지어 4대 보험까지 대주는 회사에 취직한 것이.
32세에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미쳤다가 안 미쳤다가를 반복하며 살다가 42세가 되었다. 알레르기가 있는 두 아이의 건강을 관리하는데 10년 중에 5년을 썼고 나머지 5년은 내가 아파서 빌빌거리는데 썼다.
그런 와중에 책 두 권을 쓰고 표현예술치료사 공부를 끝내고 워크숍을 열고 바다 수영을 1년에 몇 달씩 2년을 했다. 나를 요동치게 만드는 책, 영화, 그림도 많이 봤다.
고요하고 즐겁고 자유로운 그러나 힘들고 답답하고 화나기도 하는 10년이었다.
42세의 나는 취직을 하면서 완전히 다른 판으로 들어갔다. 내 위에 나를 까는 사람이 있고 내 옆에도 나를 까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함께 하면 참으로 자유롭고 즐거운 고객들이 있다.
호텔. 젊은이들의 호텔. 거기서 고객 참여형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는 일을 한다. 이름하여 액티비티 PD. Play Director. 놀이 감독이다. 나를 까는 사람들이 없는 내 프로그램을 하는 곳에서 나는 고객들과 행복하다.
'을'들의 결집력이랄까? 우정이랄까? 연민이랄까? 우리는 휴가 받아서 나온 직장인 '을'로서 어깨동무하고 룰루랄라 같이 놀다가 '잘 버텨! 다음에 또 보자!' 하며 애틋하게 헤어진다.
균형이 맞는 직장인 것도 같다.내부에서 찔리고 밖에서 치료하고. 괴롭다. 솔직히 내부에서도 안 찔리고 싶다.
게다가 우리 호텔이 최근에 인수합병을 했기 때문에 우리를 인수한 큰 조직(집)에 가서 일주일에 두 번 일을 하는데 어제가 그 첫날이었고 나는 지옥을 맛보았다.
3시간 동안 정신없이 일이 돌아갔다. 앉아서 쉴 작은 의자 하나 없이. 의자가 있어도 앉을 시간이 없었을 테지만.
호텔 광장 소파에 엄청난 크기와 양의 방석과 쿠션을 깔고 대형 파라솔을 돌려 펼치는 일부터 시작한다. 광장에 기분 좋게 틀어줄 음악이 흘러나올 대형 스피커도 끌고 가 놓고 전원을 연결한 후 태블릿 블루투스로 연결해 음악을 내보낸다.
호텔 로비 카페에서 앞뒤좌우 고객의 물음에 응대하며 음료와 베이커리와 음식 주문을 받고 내놓고 셀프 사진관 신청 확인과 사진 인화 서비스를 하고 중간중간 주방에 가서 주문서 전달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씻은 식기와 컵을 마른행주로 닦아 다시 넣어놓는다.
포스 계산도 여러 종류. 직원 할인, 테이크 아웃 할인, 객실 주문, 수영장 주문. 패키지 할인.
아직 모르는 일이 많아 우왕좌왕했지만 조금이라도 쓸모 있게 존재하려고 무진 애썼다. 10년 간의 경력이 있는 설거지만큼은 놓치지 않고 하려고 했고 나에게 일을 가르쳐 주는 분의 동선을 하나하나 파악하며 눈과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애써서 더 힘들었다.
오후에 다시 원래 내 일터인 작은 집으로 돌아가 업무를 보는데 힘이 하나도 없었다.
오후에 예전에 나와 투어를 함께 했던 반가운 고객님이 와서 같이 투어를 나갔는데 다리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마음도 다리처럼 무거워 가벼운 농담이 잘 안 나왔다.
투어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말했다.
'노동이 너무 지나치니까 존엄을 잃는 기분이 들어요. 누가 뭐라고 한마디도 안 했는데 내가 되게 작아지고 밟히는 기분이 들어요.'
반가운 고객과 고객의 친구가 대답했다.
'우리가 여행 와서 이틀 밤 동안 나눈 얘기가 그거예요. 이렇게까지 일하면서 살아야 돼? 눈물 주룩. 일 안 하면 어쩔 거야? 뭐 먹고 살 거야? 주담대는 어떻게 갚고? 눈물 주룩.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눈물 주룩.'
우리 셋은 또다시 징글징글한 '을'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헤어졌다.
을의 세계. 나는 어마어마한 을의 세계에 진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