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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등학생 한달 식비

by 칼과나

"엄마, 저녁 먹게 밥 값 좀 보내주세요."


"얼마?"


"사랑하는 만큼."


슈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평일 주 2회는 중계동 학원에 갔다가 집에 오고 또 다른 주 2회는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오느라 밥값을 거의 매일 보내야 했다.


1512442.jpg?type=w966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요즘 식당 밥값을 알고 있기도 하고 학교도 낯설고, 학원도 낯선데 밥이라도 편하게 먹으라고 달라는 대로 보내주었더니 한 달을 결산해보니 밥값으로만 27만원이 들었더라. 학원비 내기도 빡센데 식비까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슈와 쇼부를 봤다.


사실 식비도 식비인데 아끼려는 생각이 없다는 게 더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슈야, 한 달 200- 300 버는 직장인들도 점심식사 1만원씩 넘어가는 거 부담스러워서 편의점에서 떼우거나 간단하게 허기만 떼우고 집에 가서 먹으려고 궁리를 하는데 너 이렇게 친구들이랑 몰려다니면서 만원 넘는 식사하는 걸 다 대줄 수는 없을 것 같아. 엄마가 지금은 재택근무니까 한 달에 한 번 회사 가면 회사 사람들이랑 어울릴 겸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하지만 매일 회사 다닐 때는 도시락 싸다니고 편의점에서 적절히 조합해서 먹었어."


"아니, 엄마 요즘 밥값이 얼마나 드는지 아세요? 편의점에서 먹어도 저는 많이 먹어서 돈 비슷하게 들어요."


"요즘 밥값이 비싼 거 아니까 그러는 거야. 그리고 회사에서 너 월급 줄 때 '너는 밥 많이 먹으니까 월급 더 줄게' 하지 않아."


"그럼 어쩌라고요. 친구들 다 그정도 먹어요."


"중계동에서 먹어야 하는 때도 있지만 집 근처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할 때는 집에 와서 먹어도 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1도 없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야. 엄마한테 전화만 하면 밥값이 나오는데 왜 밥값을 아끼려는 궁리를 하겠어? 그래서 좀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같은 고등학교 친구라는 카테고리로 보면 다 비슷한 거 같아도 집집마다 형편 다 달라. 그러니까 친구들이 뭘 먹으니까 뭘 사니까 나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용돈과는 별개로 한 달 식비로 20만원을 줄게. 그걸로 한 달을 살아봐. 어떤 날은 친구랑 같이 먹는 날도 있겠지. 그래도 학원 마치는 날이 그리 늦지 않은 날엔 간단히 허기만 면하는 정도로 먹고 집에 와서 밥을 먹어도 되고, 삶은 달걀 같은 걸 들고 다녀도 되고. 아무튼 궁리를 해봐. 20만원으로 잘 분배해서 쓸 궁리. 몇 달 아껴서 옷을 사입어도 되고."


딱히 수긍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공부하러 나가는 아이에게 5월 한달치 식비를 현금으로 들려 보냈다. 이런 얘기를 하고나서 조금은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너무 한건가? 내가 여유가 없는 게 문제지 애가 밥 먹는 게 무슨 잘못이라고 괜히 애를 잡는 건 아닐까?


잠시 후 슈에게서 문자가 왔다. 다행히 엄마의 말을 나쁘게만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요즘 엄마한테 돈 달라는 걸로만 전화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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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을 1주일 단위로 받는 아이인지라 한 달 단위로 돈관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식비를 2주 단위로 줄까? 물어봤더니 이번에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2주 단위로 받겠다고 했다. 음... 그 반대여야 하지 않을까? 1주일 단위로 용돈을 받고 식비는 2주일 단위로 받아보고 잘 관리가 되면 한 달 치를 받는 게? 하지만 이런 걸 굳이 내 뜻대로 밀어붙이는 편은 아니라 한 달치를 주었다. 선택도 니가 하고 책임도 니가 지는 거지

한달치 식비를 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중간 점검을 해보았다.


"너 돈 관리 잘 되고 있어?"


아이는 식비의 반을 내 통장으로 돌려주면서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내 예상은 2주간 써야 할 돈이 10만원이라고 하면 며칠 지나지도 않아 5만원쯤 썼나보다, 그래서 속도조절하려고 나에게 돈을 돌려주나보다 했다. 그런데 자꾸 10만원 중에 2만원만 보내줘요. 5천원만 보내줘요. 이러는 거다. 그러니까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한 달 식비의 반을 써버린 거지. 집에 혼자 있을 때도 후라이드 췩힌 18000원짜리 시켜먹더라니.


"슈야 이러면 니가 엄마한테 돈을 맡긴 의미가 없지. 매번 엄마한테 돈 달라는 걸로 전화하는 게 똑같이 반복되잖아. 남은 돈은 15일 이후에 줄 테니까 그 전까지는 굶든지 집에서 먹을 걸 가지고 다니든지 걸어다니면서 식비를 만들어 보든지 미리 쓴 돈에 대한 책임을 져라."


그런 얘기를 하면서 새로 가게 된 학원의 셔틀버스 타는 장소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근데 이녀석이 자꾸 셔틀버스를 안 타고 싶다는 거다. 셔틀버스를 타면 집에 늦게 온다는 둥 핑계를 대는데 나는 이해가 안 되는 거지. 셔틀이 제공되는데 왜 천원씩 돈을 내고 버스를 타고 다님? 일주일 중에 오며가며 5번만 타도 교통비 5천원이 절약되는데? 설사 셔틀 비용을 낸다고 해도 그 돈은 엄마가 내줄텐데?


"엄마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왜 셔틀을 안 탄다는 건지 설명 좀 해줄래?" 했더니 슈 대답이 놀라웠다.


"아, 학원마다 셔틀 다 똑같아요. 운전하시는 분 계시고 애들 관리하는 아줌마가 있단 말야. 근데 아줌마가 자꾸 말 걸어. 나는 모르는 사람하고 말 안 하고 싶은데."


"헐... 모르는 사람하고 말 하기 싫어서 돈 내고 버스 타고 다닐 정도야? 노선 버스는 구비구비 돌아서 가지만 셔틀버스는 우리집이 학원 가기 전 마지막 역이고 바로 학원으로 직행하는데? 요즘 젊은 세대에게 전화는 무례한 매체라더니 너도 그러니? 전화 통화하는 거 너무 싫어?"


"그건 괜찮은데 모르는 사람하고는 말하기 싫어."


오 마이 갓. MZ들은 그런 거늬? 너흰 정말 다른 인류구나 싶은 한편, 그래도 버스를 타면 밥을 못 먹고 밥을 먹으면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다녀야 하는 극사실주의 발란스 게임 몇 번 해보면 명백해지는 게 있을테지 싶기도 했다.


3시부터 10시까지 학원에 다녀온 슈는 배가 고프니 어서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짜파게티 2개에 밥까지 야무지게 말아 드시고 앞으로 학원 마치고 집에 올 때는 셔틀을 타고 오겠다고 한다. 귀가 셔틀에는 아이들 관리하는 선생님이 안 계시나보다. 어쨌든 좋다. 한 달 동안 나눠써야 할 돈을 미리 다 써버리면 굶으며 버틸 수밖에 없다는 걸 배웠고, 돈을 아끼려면 셔틀을 타야겠다는 선택을 한 거니까.


한 집안을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월급을 받는 사람도 갖고 싶은 거 사려고 점심 때 면식수행(원하는 금액이 모일 때까지 밥 대신 라면 먹고 아낀 돈을 모으는 수행)을 하는데 돈 한푼 안 버는 고등학생이 친구들이랑 몰려다니면서 매일 만원 넘는 밥 먹는 건 모럴 해저드라고 생각하는 엄마의 아들이니 할 수 없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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