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
오늘을 꼭 기록하자.
25년 8월 18일.
자고 있는데 간장이가 나를 깨웠다.
"엄마, 저 너무 일찍 일어나서 밖에 나가서 산책 좀 하고 들어올게요."
"어, 그래..."
비몽사몽 간에 대답을 하고는 계속 잤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날에는 나도 조금은 긴장을 한다. 늦지 않게 일어나 아이들 먹여서(대단한 거 아님 주의) 7시 20분에 자동차 운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태워주는 것 자체가 힘들다기보다는 내 마음이 정리가 안 되어서 그렇다고 설명하는 게 맞겠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내 마음이 정리가 안 되었다고 할까. 학교에 지각 안 하도록 내가 아이와 한 팀이 되어서 움직여야지! 하는 마음 반, 고등학생이 학교 가는 걸 자기가 책임지고 해야지 엄마가 떠먹여줄 일인가? 결국 애를 돕는다면서 망치는 중인 게 아닐까? 하는 마음 반이다. 한편으로는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양상이랄까.
후자의 생각(학교는 애가 알아서 가야지)은 원래 나의 방식이다. 그런데 전자의 생각(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은 해주자)이 들어온 건 최근의 일이다.
둘째 슈의 중3 시절, 특성화고등학교를 가면 어떨까 아이에게 제안을 하고 한동안 이 학교 저 학교 설명회를 들으러 다녔다. 중학교 성적 올 A를 받은 첫째가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내신성적을 따기가 힘든 걸 보고 공부를 안 하는 둘째는 이러다가 어떤 내신을 받을지 너무 뻔히 보여서 그랬던 것이다.
특성화 고등학교도 취업으로 바로 직결되는 학교들은 공부를 잘 해야 한다. 그러니 공부를 안 하는 우리 둘째는 명함을 내밀 수 없다. 성적 안 보고 오로지 출결 하나만 보는 특성화고도 물론 많은데 그중 일본어를 주로 연마하게 된다는 점에서 호감을 가진 학교가 있었다.
중학교에서 특성화고로 원서를 낼 때는 합격이 된다는 것을 확인받고 원서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특성화고 선생님들이 중학교를 돌면서 학교 설명회를 하고 관심있어 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적어가고 설명회에 참석할 때도 이름과 소속학교를 남기게 하고 계속 챙긴다.
슈가 가고 싶어했던 특성화고의 설명회에 참가해서 물어봤을 때는 슈가 미인정 지각이 3개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출결로 인해 감점을 받는 수치는 아니라고 해서 안심하고 왔었다. 슈가 마지막까지 특성화고를 갈까 인문계고를 갈까 마음을 정하지 못해서 아이의 결정만 남은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막상 해당 특성화고측에서 원서를 받아보니 여고에서 공학으로 전환되는 첫해라, 이쪽 특성화고를 가고 싶어하는 남학생들까지 더해져 평소보다 지원자가 많이 왔던 모양이다. 출결에 흠결이 하나도 없는 아이들이 이미 정원을 넘은 상황이라 슈가 지원해도 합격이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 슈는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내가 원했던 일이 이루어진다고 꼭 좋으라는 법이 없고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나쁜 것도 아니라지만 출결 때문에 원하는 학교에 '못' 가게 되는 경험을 하고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제는 슈녀석보다 내가 더 정신이 번쩍 든 것 같다는 것이지만.
아이가 학교 다니는 내내, '지각해서 혼나는 것도 지가 해야지 내가 대신 깨워주고 애랑 감정 상하는, 그런 손해보는 일을 할 필요가 있나? 선생님한테 혼나고 앗 뜨거라 싶으면 지가 잘 일어나겠지' 하고 내버려둔 대가가 막상 눈앞에 나타나니 나라는 엄마의 태만함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다. 미성년 자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주는 것이 정말 나빠? 나 스스로 엄마로서 할 만큼 했다는 명분 삼아 딱 3년만 눈감고 해볼까? 싶었던 거다.
마침 혼자서 학교를 잘 다니던 큰 아이도 우울증이 와서 인구 밀도 높은 버스를 타고 부대끼는 게 힘들다고 해서 큰 고민 않고 두 아이를 태우고 아침 라이드를 시작했다. 큰 아이네 학교는 버스 타면 세 정거장 거리인데 정류장에서 학교도 가까운데다 아이가 워낙 알아서 잘 챙기니 그동안은 태워준 적이 없었다. 다만 그 버스 노선에 고등학교가 5개나 끼어있어서 학교 갈 때마다 엄청 콩나물시루 차를 타야 하는 것이 우울증이 오면서 힘들어졌던 것이다.
슈네 학교는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적어도 10분은 걸어야 하는데다 학교로 가는 버스 배차간격이 15분 이상이라서 누나와 같은 시간에 나가면 지각이 간당간당했다.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시각이 누나네 학교보다 10분이 더 주어져있는데도 그랬다.
그렇게 한 학기를 온전히 두 아이 라이드를 했다. 덕분에 슈녀석도 지각 한 번 없이 고등학교 1학기를 마쳤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다정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물론 아이가 늦잠을 자고 '슈야, 일어나 학교 가야지 소리를 수십번 하고 등짝이며 허벅지를 철썩철썩 때려가며 깨워서 겨우 몰고 나간 날은 '지겨워, 지겨워, 아유 지겨워' 소리가 절로 나고 학교 앞에 내려줄 때까지도 차 뒷자리에서 자고 있으면 못 마땅해서 혀를 쩍쩍 차기도 했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학교 잘 다녀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보내는 날이 더 많았다.
방학이 오니 제일 좋은 게 나였다. 더이상 아침에 '어, 지금 몇 시야?' 하며 불안하게 후다닥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이렇게 애를 태워주는 게 아이에게 좋은 일 맞아? 싶은 찜찜함과 싸울 필요도 없고.
하지만 방학은 영원하지 않지. 그러니까 간장이가 일찍 일어난 김에 아침 산책을 하고 오겠다고 날 깨운 날은 2학기의 첫 월요일이었다. 개학한 슈를 학교에 태워주면서 '고등학생 쯤 됐으면 학교에 가는 것쯤은 알아서 해야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엄마가 계속 태워주는 게 너를 위한 일이 맞는 걸까? 속으로 고민이야.'라는 얘기를 하고 아이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내린 게 저번 주 목요일.
간장이가 깨워서 일어나는데 뭔가 집안 공기가 탁하다. 마치 전날 스테이크라도 구워먹고는 환기를 안 하고 잤나 싶은 그런 공기. 어? 근데 식탁 위에 저 케찹은 뭐지? 간장이에게 물으니 모른단다. 근데 이어지는 말, '슈는 일찍 일어났다고 헬스장 갔다가 학교 간대요.' 알고보니 운동하기 전에 단백질 보충을 위해 계란 세 개를 구워먹고 갔단다.
네? 슈가 학교 가기 전에 헬스장을요? 그럼 저 오늘은 슈를 부르다가 내가 죽을 그 이름이여, 하면서 안 불러도 되는 거예요? 전에 했던 얘기를 듣고 얘가 아침에 혼자 일어난 거예요?
아... 제 누나도 돈오(頓悟)*의 아이콘인데 저 녀석도 그런 건가?
*돈오란 단박에 깨우치는 걸 말하는데 간장이는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한순간에 스스로 고친바 있다.ㅋㅋㅋ
그래서 깨춤을 추며 오늘을 기억해야지! 하며 250818을 새 비번으로 삼아볼까 했으나...
그 아이(=슈)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안방에 에어컨을 켜고 침대에 드러누워 딥슬립을 하셨으며 엄마가 운동하러 나가는 순간까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고, 운동을 하고 돌아왔을 때는 잠깐 일어나 짜파게티 더 블랙을 두 개 낋여 드시고 자기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깊은 잠에 빠진 후였고 이는 닦았느냐는 말에 아빠가 닦으래서 닦았다는 말을 흠냐흠냐 내뱉고는 계속 주무시었다고 한다.
그래 사이클이 바뀌려고 그러나보다 내비두고 나도 얼른 잤는데 다음 날 아침에는 집에서 나가야 할 7시 10분까지 일어나지 못하시어 또 한번 '슈야, 일어나', 귀에 박수, 허벅지 철썩, 등짝 스매싱을 백만번 반복한 후 겨우 깨워서 차로 모셔다 드렸다고 한다.
돈오의 아이콘은 무슨.
새 비번은 무슨.
다시 신생아가 된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