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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산으로 가는 이야기

아이의 글쓰기 재능을 키워주고 싶다면

by 칼과나

검도부 동기들 단톡방이 있다.결혼을 늦게 해서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그 방에 조언을 구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아이의 글쓰기 노트를 10페이지 넘게 찍어서. 첫째가 글쓰기를 잘하는데 자기는 이쪽으로는 잼병이라 아이를 어떻게 이끌어줘야할지 모르겠다며 국문과 친구 두 명이 있는 동기방에 고민을 토로한 것이다.


이 친구는 통계학과 출신으로 수학과외를 끊이지 않고 했었고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친구다. 학교 다닐 때는 문장의 주술호응이 안 되면 머리가 아프고, 전하려는 얘기의 앞뒤가 없으면 표정이 굳어지는 국문과 친구들 사이에서 피곤하다며 '내 인생에는 왤케 국문과들이 많아서 날 괴롭히지?' 했던 친구다.


뼛속까지 이과의 두뇌를 가지고 있는 친구는 자기와 1도 닮지 않아서 수학에 흥미가 없는 아이, 그래서 글쓰기를 잘 하면서도 자기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를 어찌 해야할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것보다 너무 많이 먹어서 어찌 키워야 할지를 모르겠던, 초등고학년의 슈를 키울 때의 나처럼.(눼?)


아마 간장이가 문예창작으로 대학을 가고,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친구도 있으니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을지도 모른다. 언제는 무슨 책을 읽히고, 글쓰기를 어떻게 훈련하고, 논술과 토론은 이렇게 저렇게 하고, 이런 식으로.


하지만! 내가 간장이를 그런 식으로 키워낸 것이 아니라서 내가 해줄 말은 1도 없었다. 다만, 재능이라는 게 공부를 잘하고 그런 것만이 아니라 나는 싫지 않고 재미있기도 하다고 느끼고, 쉽게 하는데 남들은 잘한다고 하는 거, 그런 게 재능이라고, 비대면의 시대에 글은 나보다 멀리 닿고, 나보다 먼저 닿아 어딘가에 나를 들어가게 해주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건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 사느라 바빠서 아이들에게 교육이라는 걸 한 게 하낫도 없는데 그나마 조금 의식을 하고 있는 게 있다면 아이와의 대화다. 또래가 아닌 어른과 이야기하는 기회를 자주(라 쓰고 가끔이라 읽어야겠쥐) 만들어주려고 한 것이다. 아이가 책을 즐겨 읽는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즐겨보는 유튜브 영상에 대해서 엄마에게 얘기해 달라고 한다.



즐겨보는 영상이 어떤 어떤 채널이고, 거기서 어떤 내용을 주로 다루는지, 그런 내용의 어떤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는지, 최근에 본 영상에서 재미있게 본 부분은 뭐였는지를 흥미롭게 들으면서 더 많이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우리 애들은 내가 이 모드를 켰을 때 나랑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이런 것이 아이의 시험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인간이 다른 인간의 눈을 보고 조리있게 말할 수 있는 비인지적 능력이 평생에 걸쳐 한 인간에게 미치는 힘을 믿는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고.



아는 사람들과 대화하다 가끔 부모가 가르친 딱 한 가지가 그 사람의 평생에 걸쳐 엄청나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본다. 예를 들면 너무 싹싹하고 호감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엄마가 어릴 때부터 인사를 잘 하라고 마르고 닳도록 가르쳤다는 거였다. 그리고 정말 그 친구는 인사를 잘 하고 낯선 사람과도 어색하지 않게 시작을 열 수 있는 능력이 탁월했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이쪽저쪽에서 오는 상대에게 인사를 제대로 못한다. 목소리가 너무 작고 제스처에 자신이 없어 상대가 인지를 못하는 정도다.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해야 할 때도 제대로 환대를 못하고 찐따가 되는 인간이라 그 친구의 그런 능력이 너무나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점수를 몇 점 받고 이런 인지적인 학습으로 환산되지 않는 이런 유산을 나도 내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리고 내가 그걸 실천하는 방법 또한 아이와 대화하는 것뿐 거창한 게 전혀 없다.



인생2회차쯤 되는 것 같은 나의 국문과 동기가 어떤 답을 해줄지 무척 기대가 되었는데 그 친구의 답이 정말 좋았다.



아이가 어떤 재능을 보이면 부모입장에서 뭐든 조언을 해주고 싶은 건, 너무 당연한 일인듯해. 근데 나와 다른 찬란한 재능을 그저 멋지다고 감탄하고 응원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잘 자라는 것 같아. 너무 부담 느끼지 말자. ^^



아이가 글쓰기 결과물을 내면, 뭐든 다 모아서 제본을 해주거나,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거나 등등해서 너의 글을 나는 너무 좋아해 라는 신호를 계속 주면 좋을 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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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에게 고민을 토로했던 친구는 뭔가 대단한 로드맵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섣불리 각잡고 매주 한 권 책 읽히고, 독후감 쓰게 하고, 논술학원 보내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하드캐리하면 도리어 애가 질려버릴 수도 있죠?


아이가 가진 씨앗이 어떤 모양의 꽃을 피우는지 애정을 가지고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입시 끝난 딸내미한테 쉬는 동안 책 좀 읽으라는 말은 넣어둬야겠숴.)

나에게는 당연해서 딱히 계발시켜줘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던 영역에 대해 친구가 물으니 예전에 아이 초등학생 때 어떤 강연에서 내가 강연자인 수학교수님한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질문: 부부가 다 수학을 못합니다. 수학 점수만 잘 받았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할 정도로요. 대학 가서 수학을 안하는 게 너무 좋았는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다시 시작이네요. 엄마 아빠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수학 못하는 엄마아빠가 아이들이 수학을 잘 하도록, 싫어하지 않도록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 일단 부모가 수학을 공부해서 깔끔하게 정리해서 넘겨주려고 하면 실패한다.(그러니 부모가 수학을 잘 해서 혹은 미리 공부해서 가르쳐야 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희망이 보였다.) 그리고 수학이 어려운 학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 이렇게 필요한 학문이다. 이걸 알면 세상의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 매해 범람하던 나일강 때문에 땅의 구획을 정확하게 할 필요가 생겨나서 기하학이 생겼고, 무역이 발달했던 지중해 연안에서 물물교환을 위해 계산이 발달했다. 구글이 니가 알고 싶은 정보를 검색결과 최상위에 올려놓는 기술 그 기술로 검색시장을 제패했는데 그건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이루어낸 결과다, 페이스북도, 마이크로 소프트도 다 마찬가지다. 일단 수학을 도대체 왜 공부해야 하냐는 동기부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부분이 납득이 되면 그 다음 공부는 좌충우돌하면서 스스로 해야한다. 물론 어느 수준에 이르면 천재성도 필요하고, 선천적인 유전자의 도움도 있어야겠지만 고등학교 과정까지의 수학은 스스로 어렵지만 공부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면 해 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 엄마아빠가 수학 못한다고 좌절하지 마라.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 아이들 중 아무도 수학을 잘하지 못하지만ㅋㅋㅋㅋㅋ(입살이 보살이 되어버린, 엄마아빠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재능은 언어능력과 운동능력 정도다.)


무튼 수학을 잘하고 글쓰기는 어떻게 북돋아줘야되는지 모르겠는 친구가 하던 고민과 수학을 못해서 어떻게 아이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 결은 비슷하자나요.


일단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동기부여 정도.

나머지는 아이가 좌충우돌하면서 스스로 피워내야 한다는 것.


근데 생각해보니 지금 우리 회사에서 AI 관련해서 기술자들에게 하고 있는 게 딱 이거다.

AI를 쓰면 정말 생산성이 높아지고 일의 효율이 좋아진다는 동기부여.

그리고 deep thinking을 할 수 있는 AI 툴 라이센스를 모든 직원에게 제공하고 맘껏 가지고 놀아라.(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쓰다보니 직원에게서 성과를 창출하는 것도 양육과 비슷하구나 싶은, 오늘도 산으로 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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