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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a Apr 23. 2021

고자질의 복수

사회 조직 관계 소통공동체 뭐 이딴거

그때는 고자질 공격보다는 차라리 핵폭탄을 맞는 게 더 낫다.


동료의 고자질 선빵으로 나는 입지가 좁아졌다. 비록 나이 어린 알바였고 정규직 직장인들과는 사뭇 다른 가벼움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알바라고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너무나 화가 났다. 억울한 감정을 떠나서 고자질이라는 방법으로 공격당한 것이 화가 났다. 고자질은 마치 초등학생으로 돌아가서 초등학생 친구에게 한방 맞은 느낌이 들게 했다. 핵폭탄으로 당했으면 직장 생활의 무거움을 느끼는 초석으로 삼았을 것을, 고자질은 전혀 그런 도전을 주지 못했다. 


복수를 하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었다. 


내가 그 형보다 술을 더 잘 마시고 돈도 더 많아서 알바 담당 대리님을 저녁마다 공궤 하는 방법 외에는 상황을 돌려놓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나는 아무런 대응도 복수도 하지 못했다. 가끔은 기적이 일어난다. 비록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복수 아닌 복수를 하게 될 때도 있다. 그 형의 핍박이 계속되었고 나는 참고 참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형이 힘들다고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알고 보니 그도 자주 술자리에 불려 나가 술상무 역할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스스로 지쳐 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리석은 짓이었다. 알바가 월급 받으면 얼마나 받는다고 술을 사주면서 일을 해야 하나. 그 형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군대식 마인드를 가지고 일을 했다. 복학생의 전형적인 꼰대 마인드가 사회에서 얼마나 허무한 결과를 내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내가 복수한 게 아니라 자기가 포기한 거다. 물론 나한테는 복수 아닌 복수여서 마음은 뿌듯하고 시원했다. 그 이후로 군대 입대할 때까지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군입대를 했고 또 재대를 했다. 


재대한 직후에 학교 복학하기 전까지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그동안 또 알바를 해서 등록금을 벌기로 했다. 다시 이력서를 넣고 강남 어느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출근한 지 며칠밖에 안되었을 때였다. 여느 때와 같이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무리 속에 끼어있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고 출입문 입구 쪽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했다. 나름 노하우가 생겨서 그냥 멍하니 입구 쪽에 있으면 밀려 들어오는 인파에 중앙으로 밀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입구 옆쪽에 있던 안전바를 꼭 붙들고 있었다. 그 자리도 항상 먼저 차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날마다 그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 아닌 전쟁을 해야만 했다. 그러니 얼마나 지치고 피곤하겠는가. 어린 나이지만 강남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에서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경험하고 있었다. 지하철이 이수역을 지날 때 즘이었다. 다음 역에서 내리려고 출입문 앞쪽으로 튀어나온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다. 그리고 금방 누군지 알아챘다. 군대 가기 전에 같이 아르바이트하며 나를 힘들게 했던 그 형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재회하였다. 드디어 복수할 기회가 왔다. 나는 그 형을 계속 노려봤다. 형은 나를 못 본 채 하려고 눈길을 돌렸다. 그 모습이 참 처량해 보였다. 그래서 계속 노려봤다. 그리고 그 사람 많은 곳에서 나는 먼저 이렇게 인사를 했다. 아주 큰 소리로!


"어~~~~~ 그때 그 고자질 전문가였던 형이네"


형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내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속이 좁았다. 그걸 그렇게 복수하나. 으이그 이 밴댕이 소갈딱지야. 복수는 참 어렵다. 복수는 해 놓고도 마음이 불편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시원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좀 더 멋지게 복수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졌다. 물론 그냥 용서하고 사랑해 주면 더 좋겠지만 20대 초반의 불타오르는 내 감정으로는 불가능했다. 하나씩 하자 싶었다. 하나씩 배워가는 거지 뭐...


나의 사회생활과 고자질, 작은 복수와 찜찜한 깨달음은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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