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25년도 한 달이 채 남지 않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퇴사한 지도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나만의 브랜딩을 통해 언젠가 1인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으로 시작한 나의 여정. 그 여정의 첫 2개월을 회고해 본다.
요즘 넷플릭스로 일본 드라마 「조금만 초능력자」를 즐겨 보고 있다.
주인공 ‘분타’는 취업 빙하기 세대이자, 현재는 무직인 상태로 삶의 의지를 많이 잃은 인물로 나온다. 그러던 중 한 회사에 지원해, 면접을 보게 된다.
분타는 면접장에서 자신보다 앞 순서에 있는 젊은 지원자들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다른 이들은 봉사활동, 비즈니스 역량, 성장 의지를 앞세워 스스로를 어필한다. 그 이야기를 듣던 분타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대략 이런 취지의 말을 한다.
회사는 봉사활동하는 곳이 아닙니다.
성장 의지도 좋고, 포부도 좋지만, 회사는 학교가 아니죠.
저는 취업 빙하기 시절, 수십 곳에 원서를 내고 겨우 한 회사에 들어가 악착같이 일하며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끝이 아니죠.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이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 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직장인의 삶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저는 되어 있습니다.
개인에게 회사란 이런 존재일 수 있다.
당장 노동력을 제공하고, 일정한 돈을 벌 수 있는 곳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아 더 나은 회사로 옮기기 위한 발판
내 목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의 장
하지만 현실에서 회사는, 적어도 내 경험상, 드라마 속 분타가 말한 그 세계에 더 가까웠다.
특히 스타트업은 더욱 그러했다.
단순히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잘 수행했다고 해서 그걸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의 성장과 ‘다음 스텝’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스타트업 특성상, 구성원 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자세”였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인지”를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었다. 적어도 내가 다닌 두 곳의 스타트업은 그랬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힘들었던 건, 회사의 기준에 맞춰 내 존재를 끊임없이 입증해야 했다는 점이다. 내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그들을 위한 것도 아닌데,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내가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일당백의 인재를 원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임금을 주는 건 아니었다.
설령 내가 그들에게 충분히 나를 입증했다고 해도, 더 나은 처우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내 자리를 유지시켜 주는 것으로, 이미 나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고, 어느 순간 남은 청춘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하루라도 젊을 때 더 많이 도전해 보는 것이 나에게 남는 선택이라 판단했다.
실패해도 좋고, 돈을 잃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해보지 못한 것들 대신,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돈은 그다음에 따라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적어도 회사를 그만둘 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성공이든 실패든 모두 내가 감수할 테니, 더 이상 남을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나는 야근을 했다. 이전에 진행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일은 출근을 하지 않게 되더라도, 맡은 일에는 끝까지 책임을 지고 싶었다. 함께 고생했던 팀원들과도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으로 헤어지고 싶었다.
퇴사 다음 날, 나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하루를 시작했다.
다만 그날부터는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며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던 수많은 개인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다시 꺼내 보며, 그중에서 사용자와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이제는 서비스 아이디어부터 기획, 디자인, 개발, 마케팅까지 모두 직접 해야 했기 때문에, 그에 필요한 공부도 병행해야 했다.
처음 한 달 동안 나는 “이제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껏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들떠 있었다. 내가 만들면 뭔가 특별할 것 같았고, 시장은 내가 만든 것에 어느 정도는 반응해 줄 거라 믿었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용자는 있어도, 한 번만 쓰고 마는 사용자는 없게 만들고 싶었다.
그때까지의 나는, 내가 만드는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첫 한 달은 공부와 아이디어 정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그러던 중 가장 먼저 떠오른 서비스가, ChatGPT 메모리를 이식·추출하는 크롬 확장 프로그램이었다.
웹 확장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ChatGPT가 옆에 있으니 두려움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렇게 첫 서비스로 웹 확장 프로그램 ‘MemPort’를 만들기 시작했다.
서비스를 만든 후, 론칭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크롬 웹 스토어 등록이 처음이다 보니 개인정보 활용, 권한 설정 등의 문서 작업을 해야 했다. 거기에 구글의 심사까지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전체 과정이 낯설고 만만치 않았다. 몇 번의 탈락 끝에 겨우 심사를 통과했다.
그렇게 약 4주에 걸쳐 첫 서비스를 완성했다. 사업자가 없었기 때문에 당장 유료화는 하지 않았다. 일단은 무료로 쓸 수 있게 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수많은 1인 SaaS 개발자들이 “처음부터 무조건 유료화하라”고 말했지만, 그러면 초기 사용자를 모으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서비스로 남기보단, 단 한 명이라도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선 사용자를 확보하면, 그다음에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 서비스를 개선해 나가는 편이 더 양질의 서비스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전략이라고 보았다.
Why: 유료화를 해야 하는 이유
결과적으로는, 처음부터 유료로 갔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료 사용자는 대부분 피드백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무료 사용자는 지불한 대가가 없기 때문에, 버그나 불편함을 겪더라도 조용히 서비스를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적은 금액이라도 지불한 사용자는 문제를 발견하면 어떻게든 수정을 요청한다.
그래서 지금은 “서비스를 유료화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피드백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이 마냥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태해질 만도 했고, “여기까지만 만들고 접을까”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지탱해 준 한 문장이 있었다.
“단 하나의 서비스라도 끝까지 만들어 론칭해 본 사람만이 진짜 1인 창업가다.”
타인에게 나를 입증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 선택을 나 자신에게 입증하기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단 하나의 서비스라도 제대로 론칭해 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국 나는 서비스를 출시했고, 그때 느낀 성취감은 꽤 컸다.
이제 나는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사업가이자 1인 창업가”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타인의 시선에서 나는 여전히, 수익이 거의 없는 사람일 뿐이다.
수입이 없는 일은 쉽게 ‘취미생활’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는 직업이 될 수 없다는 말처럼.
그렇게, “뭘 해도 좋을 것 같다”라고 믿으며 시작했던 내 결심은
첫 서비스를 론칭한 뒤에야 비로소 현실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아마 다음 글에서 천천히 풀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