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하혈이 잦아졌다. 생리통도 심해지고, 복부에 전해지는 고통도 강해져 병원을 찾았다. 이리저리 검진을 받고, 초음파도 진행해 봤으나 돌아오는 선생님의 답은 간단했다.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또, 최근엔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밥을 먹으면 먹는 대로 속이 더부룩하고, 굶으면 굶는 대로 몸 어딘가가 아팠다. (어딘가가 아팠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가끔 끼니 좀 걸렀다고 온 몸에 식은땀이 나고 다리가 풀려 중력을 무시한 채 혼자 바람에 펄럭거릴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쌍하게도 연차는 내지 못하고, 점심시간을 틈 타 병원에 방문했더니 돌아오는 답은 역시나 간결했다.
"스트레스가 제일 큰 문제예요.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는 말, 아시죠?"
알지. 알다 마다.
근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21세기 한국에서, 그저 그런 중소기업에 다니는 말단 사원이 하루 라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돈 버는 법, 그게 가능하긴 합니까?
| 어림도 없지.
몸 상태가 절정에 다다른 건, 근래다. 근데 이게 몸 상태에 문제가 생긴 건지, 정신 상태에 문제가 생긴 건지 도통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느 날 출근을 하는데, 갑작스레 누군가 달려와 내 뒷목에 칼을 꽂아 넣을 것 같은 공포가 몰려왔다. 당시 서 있던 곳은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골목 사이로 누군가 활을 쏴서 내 눈알을 터트리는 상상까지 믹스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서 있는 곳 옆 건물 옥상에서 누군가 벽돌을 던져 머리가 터지는 결말까지 추가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누군가'의 누군가도 없던 골목에서 어떻게 그런 잔인한 상상들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뭐, 지금이야 정말 INFP 다운 망상이군, 하겠지만 (100번을 검사해도 이 유형만 나온다. 젠장.) 그때는 정말 패닉 상태였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차가운 시멘트 벽에 몸을 기대고서야 서서히 진정을 되찾아갔다.
'내 뒤엔 벽 말곤 아무도 없어. 아무도 칼 들고 달려오지 않아. 괜찮아, 괜찮아.'
천 년 같던 몇 분이 흐르고서야 몸은, 또는 정신은 정상 궤도를 되찾았다. 그때 딱 한 번만 그랬다면 히어로 무비를 좋아하는 내가 쓸데없이 과몰입을 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끔찍한 망상들은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로변에서 예고도 없이 나를 덮쳤다.
뒤 쪽에서 큰 소음이 들려올 때, 사람이 많은 곳을 혼자 거닐 때, 사람이 없는 곳을 혼자 거닐 때 등. 증상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 상태가 대체 어느 수준까지 피폐해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 너, 정신과 좀 가 봐.
문제를 알아차린 건 나의 절친한 친구 덕분이었다. 퇴근 후 터덜 터덜 집으로 돌아가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냐는 안부 겸, 서로 일하는 회사 욕도 좀 할 겸, 친구의 연애 고민도 들어줄 겸. 이 시국 시즌이라 비대면으로 쌓아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막 풀어내던 찰나였다.
근데 나 요즘 좀 예민한 거 같아. 자꾸 누가 날 죽이려고 하는 거 같아, 웃기지 않냐? 묻는 말에 친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다른 증상은 없어? 제법 심각해진 목소리에 그간 겪었던 망상의 일부분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괜히 머쓱해 나 과대망상 같은 게 좀 생겼나 봐. 하며 웃었다.
친구는 여전히 말을 아끼다, 한숨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너, 정신과 좀 가 봐.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 정신과는 가지 못했다. 겨울 내 멈춰있던 생명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봄에는 우울증 환자들이 늘어난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약부터가 험난한 여정이었다. 아직 내 차례가 오려면 한참이나 남았단다. 그 사이 내 망상이 심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친구는 진심이었다. 너 좀 이상한 거 같다고. 흔히 말하는 공황장애나 불안장애가 아니냐고. (아직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해 예상일 뿐이다.)
나는 하하, 그렇게 거창한 병이 나한테 올 리가 없을 텐데? 내가 뭐라고. 내가 하는 일이 뭐라고. 답하고 집으로 돌아와 증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조금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나 진짜로 정신과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바로, 나는 불안증 같기도 했고, 공황 장애 같기도 했고, 번아웃 증세 같기도 했다. 하나같이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여기서 큰 고민에 빠졌다. 내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은 회사이지만, 회사를 그만 두면 나는 뭘 해 먹고살지? 다시 취직이 가능해? 내가? 나이도 나이인데 다시 경제 활동을 못하면 어떡하지? 그렇지만 이러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져 죽는 게 아닐까? 어떡하지? 어떡하지?
(불분명한 지수라지만 언제나, 늘 빨간 불에 가 있는 나의 스트레스 지수. 홍(紅)익인간의 정신을 본받았던가.)
|네 잘못이 아니어도 사과하는 자리, 네가 앉은 그 자리.
친구는 점점 더 우울의 늪으로 가라앉는 내게 말했다. 네가 하는 일이 뭐냐니? 네가 잘못하지도 않고 사과를 하고, 고객에게 빌어야 하는 자리인데. 그게 어떻게 아무것도 아냐?
듣고 보니 그렇다. 나는 회사와 고객의 중간 다리 일 뿐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회사 또는 회사의 개발자들 책임이다. 이벤트에 문제가 있다면 기획이나 영업팀 문제고. 내가 잘못한 건 그 사람들을 대신해 화가 난 고객들과 통화를 해야 한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그 외엔 내 잘못이 생각나지 않았다.
화가 난 고객들은 내가 받은 고통, 또는 피해에 어떻게 보상할 거냐고 나를 다그친다. 그에 대한 답 역시 내가 내릴 수 없다. 직접적인 잘못을 한 이들에게 눈치를 보며 묻고, 또 눈치를 보고 수그리며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 외엔.
쓰고 나니 나, 정말 불쌍한 자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구나.
아무 잘못은 하지 않았으나 양 쪽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던 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타노스가 튕긴 핑거스냅이라면 덜 억울할 텐데. 고작 몇 푼 벌어보겠다고 나는 내 모든 걸 바스라 트리고 있는 거다. (그렇지만 고작 몇 푼이라도 감사합니다. 예, 먹고살아야죠.)
죄송합니다. 다시 알아보고 전화드리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신 내용 깊이 새겨 다시는 이런 불편함 겪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정은 양가 교환의 산물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짝사랑 조차 상대방의 친절에서 시작하는데. 나는 갑자기 쳐들어온 누군가의 화를 받고 굽신거리며 영문도 모른 채 빌고 있었다. 그래. 돈 벌려고 내가 선택한 자리지만, 이런 자리는 왜 생겨난 거야? 잘못한 사람이 전화받아 해결하면 안 되는 거야? 싼 노동 값에 욕받이를 세워둔 건가? 내가 그 욕받이고?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점점 더 능력도 없어 이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혐오하게 되고, 꾸짖고, 미워하게 된다. 밤새 잠을 설치다 출근을 하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가 칼을 들고 쫓아오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왜 구직 사이트에 콜 센터와, 콜 업무 관련 직종은 넘쳐나는지. 왜 공을 들여 헤드 헌터들이 직접 콜 센터 지원자를 찾아다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