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과학 공부ㅡ배대웅 작가
기차를 탔다. 대전역에서 내려 카페 볕으로 갔다. 내 이름처럼 대낮에 대전역에서 배대웅 작가를 만나는구나 생각하며 혼자 싱겁게 웃었다. 작가님이 추천하신 카페는 과연 역에서 가깝고 한산하고 좋은 공간이었다.
작가님의 첫 책 "최소한의 과학 공부"에 사인을 받았다. 379페이지나 되니 책이 꽤 묵직했다. 이 책은 5쇄, 7000부 이상 팔렸다. 그리고 '도서관 사서들이 뽑은 2024년의 책', '문화체육관광부 2024년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 작가의 첫 책인데 말이다.
책의 이력만 보면 신인작가가 맞나 싶다. 자기 이름으로 처음 책을 출간하면서 느낀 기쁨과 어려움의 과정을 기록해 보자는 내 인터뷰 책의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다. 게다가 이 책은 완성된 원고도 없이 계약을 했다. 배대웅 작가가 브런치에 올린 한 편의 글을 보고(아마 다른 글도 봤겠지만) 비슷한 주제로 책을 써달라고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했다는 것이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책을 내고 싶어 할 것이다. 내 스타일대로 글을 쓰며 가만히 있어도 출판사가 먼저 나를 알아봐 주고, 책을 내기만 하면 눈 밝은 독자들이 알아서 책을 사주는 상황. 대체 왜, 이 작가는 이토록 운이 좋을까.
"ghost wrighter"
배대웅 작가가 대화 중에 이 단어를 말했다. 10년 넘게 평범한 회사원이었다가 작가가 되었다는 그의 이력에서, 그가 맡은 회사 업무는 90%가 글쓰기였던 것이다. 정책 기획서, 제안서, 보고서는 물론 글을 좀 잘 써야 하는 일은 그에게 맡겨졌다. 이 글들은 아주 정교하게 잘 써야 하지만 누가 써도 상관없는 글이었다. 작가는 그가 쓴 글에서 이 일을 '높은 분들의 글쓰기 하청업자'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일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날카롭게 표현하니 오히려 읽는 사람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표현이 나오기까지 작가의 마음속에 일었을 소용돌이까지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저는 회사에서 승진이나 입신양명과는 무관하게, 순수하게 이 일을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업무를 잘 해내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보다 바로 앞에 놓인 문장을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자신이 쓰는 글의 완결성을 누구보다 신경 쓰는 작가이다. 워낙 글솜씨가 있으니 그 일을 하겠지 생각하겠지만, 그 자리에서 이름 없이 쓴 수많은 문장이 작가로서의 그의 이름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름이 남지 않는 글, 어디에도 보관되지 않는 휘발성 글. 이런 글에도 작가는 열정을 쏟았으니까.
5년 전 어느 날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 그는 작가명에 실명을 적었다. 많은 브런치 작가가 어떤 멋진 필명을 지을까 고민할 때, 그는 자기 이름 세 글자를 또박또박 적어 넣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본인에게 청탁받은, '자기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이 책 출간으로 이어졌고, 곧 두 번째 책도 나온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계약도 이어졌다. 그에게는 이제 자기 이름으로 써야 할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필력 있는 작가에게는 출간이 쉬웠을까? 계약부터 했으니 쓰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책 한 권 엮어 내자면 누구나 괴로움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퇴근하고 육아까지 마치고 나서 밤 10시부터 새벽 두세 시까지 글을 썼다. 초고 완성까지 1년 3개월이 걸렸다.
"작가가 써 내려간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침윤한 고뇌와 번민과 성찰의 깊이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세상에서 단 한 명 오직 자신만이 알 뿐이다."
그가 쓴 글이다. 내가 그의 고뇌와 번민과 성찰을 다 알 순 없겠지만 한 번 들여다보자 생각했다. 왜 글을 쓰는지. 왜 문장에 대해 고민하는지. 무엇이 그를 계속 글쓰기로 이끄는지.
작가를 만나 이야기하면서 어느 정도 궁금증은 해소된 것 같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그의 '열심'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인터뷰 질문지에 정성껏 답변을 적어 보내고도 '직선만 그어 놓은 것'같다며 고민하는 그의 댓글을 봤다. 그 선들을 이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내 몫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를 만나고 돌아오면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누군가 배대웅 작가처럼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선들을 잇는 법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그가 그어준 선들을 나름대로 잇고 있다. 그래서 어제오늘 머리가 터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