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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쓰자면

인터뷰 6

"당신이 더 귀하다" 백경 작가

by 대낮

어제 낮에 백경 작가님과 1시간 30분 남짓 전화 통화를 했다.

그 전에 약속 시간을 기다리며 '마이금희'에 나온 작가님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백경 작가의 책 "당신이 더 귀하다"에는 소방관으로 구급활동 하면서 겪은 일이 담겨 있다.

마이금희의 인터뷰 영상은 그 '경험담'에 초점을 맞춘 듯했다.

그렇다 보니 내가 읽은 책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겪은 일을 바라보는 작가의 치밀한 사유가 담긴 문장이 빠지고 나니 뭔가 달라져 버렸다.

백경 작가의 글은 행간이 넓다.

아마도 많은 독자가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읽으며 어수선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느라.

책을 읽으면 작가의 깊은 사유와 문장의 행간을 읽는 독자의 마음이 만난다.

이것은 영상으로는 담기 어려운 무엇이다.


작가님께 내가 궁금한 것은 이 인터뷰와는 다른 것이었다.

나는 책 바깥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경험을 글로 적어서 책으로 묶어 내는 과정.

작가에게 이 일이 어떤 의미였는지, 무엇이 남았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고 싶었다.

책 프롤로그에 힌트가 좀 있다.

제목이 "언제 죽을지 몰라서 쓰는 글"이다.

그는 구급 활동 트라우마를 감당할 수 없어 유서를 쓰다가 점차 겪은 일을 쓰기 시작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글은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삶은 때때로 죽음을 목격해야 하고, 수시로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라서 다행이고 감사한 일상에 그것들이 불쑥불쑥 그림자를 드리운다.

책의 초고를 완성한 뒤, 담당 편집자에게 완성된 원고는 노트북에 있으니 내가 구급활동 중 무슨 사고가 나거든 가져가시라고 했단다.


에세이는 대게 작가의 경험을 소재로 한다.

한때 해외여행 에세이가 유행했던 것처럼, 흔하지 않은 경험은 독자의 눈을 책에 잡아둘 수 있다.

그의 에세이도 누구나 쉽게 겪는 일을 적은 게 아니라서 특별하게 읽히는 걸까.

아니다. 이 책은 문장이 깔끔하고 쉽게 읽히는데도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나는 월간지 '좋은생각'의 편집자로 몇 년간 일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곤란하고 비참한 생활에 대해 쓴 글을 많이 읽었다.

찢어질 듯 마음이 아프고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르는 글에 아이러니하게도 이력이 났다는 말이다.

나는 백경 작가의 글을 서늘한 마음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냉정한 시선으로 읽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방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 읽혔기 때문이다.

작가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대신 우리와 같은 평균 체온 섭씨 36.5도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게 내가 비 오는 날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다."


이렇게 작가의 일기장이 털렸다.

"이거를 누가 볼까 하고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이제 많은 사람이 그의 글을 앞으로도 더 읽고 싶어 한다. 그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한다.

그는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하고 강연에도 간다.

일기장이 책이 되고, 평범했던 사람이 필명으로 불리는 작가가 되었다.


"뭔가 많이 바뀌었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게 있구나.

앞으로 일하면서 가정 지키고 평생을 정해진 역할 대로만 살 줄 알았거든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죠.

내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볼 여유는 없었어요."


이렇게 말하는 그에게 나는 짓궂게도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작가님이 글을 참 잘 쓴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신 건가요?"

백경 작가는 내 장난기 있는 목소리 뒤에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편집자님, 근데 저는 잘한다는 생각은,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나는 백경 작가가 출간하기 전부터 그의 글을 읽었다.

'1인칭소방관시점'이라는 필명을 쓸 때 말이다.

브런치 이웃들이 내 예상대로(?!) 출간 소식을 전해올 때면 궁금했다.

백경 작가도 책이 나올 때가 됐는데.... 혹시 작가님이 거절하는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그의 글은 끌리는 데가 있었다.

그의 글쓰기에 대해 직접 들을 수 있게 되어 좋다.

다만 들은 말을 어떻게 정리할지가 너무나 큰 숙제다.

통화를 마치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 정리해서 써보겠습니다. 작가님."

"그냥 쓰세요. 잘 쓰려고 하지 말고요."


... 작가님도 참, 그게 어렵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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