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람비에게

편지

by 대낮

요즘 내가 인터뷰하느라 몇몇 작가들을 만난다고 했더니, 나더러 너를 인터뷰하라고 했지?

그저 농담인 거 알아. 하지만 그 말이 계속 걸리네.

요즘 너의 계절이 '바람비Wind Rain'니까.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 말을 다 묻고, 네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그 눈물 감당할 수 있겠냐.

나는 생각만 해도 몸 안의 물이 출렁거린다.


스물에 널 만났지. 내 이메일 주소를 네가 만들어 줬던가. 그때부터 너는 내게 '해결사'였어. 식당에서 종업원을 부를 때 내가 큰소리를 내지 못해 우물쭈물하면, 너는 어느새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종업원에게 다가가 정확하게 주문을 하는 스타일이잖아. 큰소리도 내지 않고.

처음엔 가까워지기 쉽지 않았어. 갓 졸업하고 대학 때문에 '상경'한 내 눈에 프라다 가방 메고 십장생 로션 바르는 너는 거리감이 있었으니까. 네가 너인 줄도 모르고 그땐 그랬어. 천칠백 원짜리 학생식당 밥을 누구보다 맛있게 먹고, 학교 앞에 있던 저가 브랜드 폐업했다고 오천 원짜리 티 사러 가자 하는 너인데. 마음이 가는 대로, 상황이 되는 대로, 다른 사람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너인데. 그때도 그랬지만, 중년이 되고 보니 이제 너 같은 사람은 만나기가 더 힘들다. 너는 요즘도 한의원 이름 적힌 사은품 가방 메고 회사에 갈 수 있는데 말이야.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젊은 날 낭만의 페이지는 백지가 많을 거야.

네 주머니와 내 주머니를 털어 천 원짜리 몇 장 들고 학교 근처 마트에 갔었지. 사과 한 봉지를 사서 화장실에서 씻고, 그걸 들고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와삭 베어 먹었어. 늘 추억거리로 소환되는 우리의 사과 스토리. 사과 하나 손에 들고 세상 부러울 게 없었지.

네가 갖고 있던 헌책을 온라인에서 팔고 둘이 직접 용산으로 배달 갔잖아. 그렇게 책을 돈으로 바꾸고 그 돈으로 그때 유행하던 패밀리레스토랑에 갔었지. 오늘 한번 여유롭게 먹어 보자 하고.

뉴욕 할머니네 샌드위치가게에서 리필 커피와 샌드위치를 잔뜩 먹은 어느 날 밤에 너무 배가 불러 몇 정거장을 걸어간 일도 우리 추억의 레퍼토리. 그 밤길의 언덕 어디선가 너는 내게 작가가 되라고 말해 주었지. 그땐 정말 무엇이든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는 그날의 꿈처럼 선생님이 되었어. 내가 아이 둘을 끙끙대며 키울 동안 너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멋진 어른이 되는 길을 알려줬지. 시시티브이에 찍힌 애 뒤통수만 봐도 누군지 알겠다는 너니까, 애한테 받은 칸쵸 과자 하나에 일주일은 든든한 너니까, 네 차 해치백에 밴드 동아리 애들 짐이 충분히 들어간다고 기뻐하는 너니까. 네가 분기마다 시험문제 내고, 생기부 쓰느라 괴로워해도 나는 늘 너의 교육과 육아를 응원한다. 아이들이 너를 닮았다면 소식이 뜸하더라도 널 많이 기억하고 있을 거야. 우리가 방학 동안이나, 각자 연애에 취해 있을 때 서로 연락이 뜸했어도 언제든 그냥 편히 연락한 것처럼 말이야.


나이가 들고 보니 기억이 뭉텅뭉텅 잘려나가 과거가 어제처럼 가깝다. 스물일 때는 십 년이나 이십 년 되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몰랐어. 그저 아득하고 멈춘 듯 보였는데 말이야. 어느새 우리는 이런 미래에 와 있다. 예상 못한 미래가 오늘이 되고, 절대 닥치지 않길 바랐던 일도 감당 못할 파도처럼 우리를 덮쳐 오고.

그래도 다행히 너는 여전히 너고, 나는 네 옆에 있다. 사람에게 실망해도 사람을 믿고, 내 잘못이 아니어도 스스로 더욱 반성하고, 끝까지 더 낫고 옳은 길을 찾아 헤매면서. 맞냐고, 이렇게 사는 게 맞냐고 서로 물어보면서.


사실 나는 너를 만날 때마다 너를 인터뷰하고 있어. 네 속을 들여다보려 하고 내가 몰랐던 것을 알려고 해. 늘 너의 오지랖을 놀리면서도 세상을 보는 너의 다정한 시선을 나는 결코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반성한다.

... 바람도 비도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아프지 마라.


>

네가 흔적을 안 남겨도 네가 읽고 있는 걸 알고 있다. 神氣? @@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5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