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만 절절한가
옛날 생각. 잡지사 다니던 때.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를 바구니에 쌓아 놓고 읽었다. 일이었다. 원고가 갈 곳은 두 곳이다. 채택 파일과 미채택 바구니. 미채택이 바구니인 이유는 그게 훨씬 많으니까. 편집자가 뭐라고 글의 운명을 바꾼다. 개인 취향이 반영될 수 있다. 그런데 개중에는 어떤 편집자가 읽어도 고를 수밖에 없는 원고가 있다. 지난달에 뽑힌 독자가 원고를 또 보내왔다. 다른 편집자가 그 글을 뽑았다. 책에 실린 독자 이름을 다 외울 순 없으니까. 이런 일에 대비해 채택자 명단을 리스트업 해놓고 걸렀다. 그래도 글이 너무 좋으면 몇 달 지난 뒤에 실었다. 바로 이어서 실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편집부로 전화가 온다. 누구는 두 달 연속 실어주고 내 글은 왜 안 뽑아 주냐고. 거짓말 같지만 실화다.
에세이 소재야 뻔한데, 어떤 글이 사람 마음을 흔들까. 멈춰 생각하게 할까. 아픈 얘기, 아린 얘기, 기막힌 얘기들이 일단 사람 시선을 끈다. 그래서 아프고 아리고 기막힌 얘기들이 이제 너무나 많이 이야기됐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무뎌졌다. 내 생각에 아픈 건 그냥 아픈 것이다. 회자되는 이야기가 되면 아픔이 희석될 뿐. 독자로서 말하자면 사람 마음 흔들자고 작정한 글은 매력이 없다. 또 인기 많은 글의 소재가 사랑이고 불륜이고 투병기이고 동물 이야기라고 해서 누구나 사랑에 대해 불륜에 대해 투병에 대해 동물에 대해 쓰면 많이 읽히는 건 아닌 것 같다. 시선을 끄는 소재에 고개가 돌아가도 소재 때문에 글을 끝까지 읽는 건 아니니까. 아마도 그냥 사랑, 그냥 불륜, 그냥 동물 이야기가 아니라 인기가 있는 거겠지.
싸이월드 시절에, 그때도 끄적끄적 뭔가 썼다.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내가 읽으려고 썼다. 사랑이 끝났다고 절절하게 썼다. 뜻밖에도 그 글이 반응이 있었다. 퍼가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흔한 사랑 얘기인데 어느 구석에서 공유할 마음이 생겼을까. 퍼가서 뭐 하게.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 봤다. 뻔했다. 그중에 몇 줄만 뻔하지 않은 게 있었다. 키보드를 눌러 미치겠다고 슬프다고 적으면서도 나는 내가 내일 멀쩡히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일하러 나갈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 감정대로 살지 못하는 서러움이 있었을 것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덧씌워진 신비를 벗어던지고 어른이 되면서 느끼는 슬픔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내용의 히트곡 가사가 있다. "사랑이 떠나가도 / 가슴에 멍이 들어도 / 한 순간뿐이더라 / 밥만 잘 먹더라 / 죽는 것도 아니더라" 이 노래가 나왔을 때 나는 내가 쓴 글을 떠올렸다. 아마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그랬던 모양이다. 밥만 잘 먹고 있는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곰곰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흔한 이별 노래인데 인기가 있었다.
히트곡은 나중에 질리지만, 시간이 흐른 뒤 들어도 역시는 역시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이 읽는 에세이도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클릭 수 거품 빼고 진짜 읽는 글).
얼마 전에 옛 동료에게 좋은생각 잡지에 원고가 채택되면 원고료를 준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농담으로 얼른 한 편 써서 보내자고 했고, "포인트 알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포인트를 내가 알던가 하는 생각에 적어 봤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