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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Jun 09. 2017

매티스, 그리나쉬(Mathis, Grenache)

미국 / 소노마밸리 / Grenache / 2009

20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LA로 버스로 넘어오는 여행길. 바싹 마른 덤불이 굴러다닐 것 같은 사막을 지나니 사람을 압도하는 산과 압도하는 숲이 나타났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이었다. 


숲에는 갈색의 두꺼운 껍질로 둘러싸인, 곧고 높은, 유독 굵고 푸른 나무들로 가득했다. 이름도 생소했다. '세콰이어'. 요즘은 국내에도 숲이며 뭐며 조성한다고 볼 수 있지만, 20년 전쯤에는 이름을 아는 이들도 별로 없던 나무였다. 


나무는 유독 키가 컸다. 겉껍질은 두껍고 까슬했다. 살아온 시간만큼 둘레가 두터워진 나무가 가득한 숲길은 대낮임에도 어둡고, 서늘했다. 고개를 뒤로 확 젖히면 잎과 잎 사이에서 태양빛이 바람과 어우러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워낙 오래전 여행이다 보니 단편 단편만이 기억에 남았다. 그중에도 손에 꼽을만한 기억이 바로 이 숲과의 조우였다. 수백 년 간 농축되어 온 나무의 향기는 강렬했다. 나무가 호흡하며 기공을 통해 뿜어내는 향. 나무의 부산물들이 땅에 떨어져 유기물이 되면서 피어오르는 향이 공기를 지배했다. 공기의 78%가 질소로 구성되어있다는 사실에 의심이 들 만큼. 시원하지만 진득한 향. 향기는 어린 시절 기억 깊숙한 곳을 지배했다. 


오래된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와인은 바로 매티스, 그리나쉬(Mathis, Grenache) 2009. 판교의 한 와인숍 사장님이 그곳에서 가진 모임 자리에서 "한 번 드셔보세요"하고 열어주셨다. 그렇게 이 와인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와인을 따르자마자 시원한 향이 피어올랐다. 삼나무향이었다. 가구에서 나는 향인가 해서 와인잔을 들어 다시금 향을 맡았다. 캘리포니아 소노마밸리에서 온 이 와인은 20년 전 여행에서 만난 그 나무였다. '세콰이어'의 다른말은 미국삼나무. 그때 만난 캘리포니아의 숲속 세콰이어 나무의 향을 응축해놓은 것 같았다. 


이제는 희미한 어린 시절의 여행 기억 속에서, 놓치지 않았던 그 향. 까리냥과 쁘띠 쉬라가 서포팅하는 그리나쉬는 그날 나를 둘러싼 삼나무를 닮았다. 추억을 되살리는 삼나무 향, 그리고 묵직한 타닌과 텍스쳐, 진한 그리움같은 맛. 언젠가 다시 한 번 요새미티 국립공원을 방문해 그 나무들 아래에서, 매티스 그리나쉬 한 잔을 마신다면(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할 지도 모르겠다.

Mathis Sonama Valley Grenach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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