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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I Apr 29. 2021

높은 물가에 적응해버린 결과

1파운드와 1유로는 1000원이 아니잖아

  졸업 후 한국의 첫 직장에서 번 월급과 휴가 한번 쓰지 않고 모은 수당을 다 들고 영국으로 떠났다. 비자를 신청하고 받기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했고, 출발도 하기 전에 줄줄이 나가는 초기 비용 때문에 영국에 도착하면 한 달 내에 직장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코로나가 올 줄 알았다면 조금 덜 벌고 여행을 했을지도 모른다!)


비자와 관련된 비용으로 200만 원 가까이 지출했고, 여권 사증 추가, 집을 구할 때까지 지낼 숙소비, 집 보증금, 첫 달 월세, 편도 비행기표 값, 첫 월급을 받을 때까지 필요한 생활비를 넉넉하게 계산해보니 최소 600만 원이 필요했다. 거기에 언제 소매치기당할지 모르는 핸드폰과 가방 때문에 비상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숙소 라운지


 영국이 물가 비싼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지만 1파운드에 2천 원까지 찍었던 적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엔화가 1400원이 넘던 시절에 중학생 신분으로 자유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녀서 물가 비싼 나라에 대한 공포감이 살짝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가서 경제 활동을 하니까 먹고 살만 할 거라고 생각했다.



1. 월세

 스페인 교환학생 때, 내가 살 은 알아서 찾아 계약해야 했는데 덕분에 외국에서 집 찾는 훈련이 미리 돼있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4년 정도 자취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위치에 있는 집을 찾아내겠다는 의욕에 불타올랐다.

기대와는 달리 마땅한 매물이 별로 없었고, 3존으로 가도 월세가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월 40만 원이면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에 있는 깨끗한 원룸에서 풀옵션으로 살 수 있지만, 런던에서 비슷한 컨디션의 집을 구하려면 3존 내에서는 800파운드(당시 환율 120만 원 정도)로도 택도 없다. 결국 주당 140파운드인 비역세권 동네에서 5명과 셰어 하는 플랏에 들어갔다.


코로나 때문에 런던 집값이 일시적으로 떨어졌는데 그래도 한국과 비교하면 너무 비싸다. 아직 영국에 있는 친구가 귀국하면 같이 살 집을 어플로 찾아보는데, 나도 모르게 월세 120만 원 투룸을 보고 저렴하다고 외쳤다. 친구랑 1/n 하면 관리비를 포함하더라도 나쁘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해버렸다.



2. 외식비

 서유럽, 남유럽, 동유럽 지역은 마트 물가에 비해 외식 물가가 훨씬 비싸다. (북유럽은 안 가봐서 뺏다.) 체감상으로는 노브랜드의 200원대 생수와 고속도로 휴게소의 2000원대 생수의 차이다.

월급날이 다가올수록 집에 요리해먹는 날이 많아졌고, 월급이 들어오면 친구들과 센트럴에서 만나 한식당이나 로컬 식당에 갔다. 모처럼 직장인 친구들과 스케줄을 맞춰 만났지만 먹고 싶은 거 다 먹었다간 다음 월급까지 물만 마셔야 하는 물가다.


피자 / 스시


 플랏메이트 중에 마스터 셰프 심사위원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는 분이 계셨는데 인당 300파운드는 생각하고 와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정도 비용을 지불하면서 까지 먹을만한 요리는 아니라고 귀띔도 해주셨다.


또, 영국에서 알게 된 분 중에 셰프 겸 레스토랑 오너인 분이 계셨는데, 주변 레스토랑 셰프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종종 들르면 몇 백 파운드는 순식간이라고 하셨다. 유럽에서 귀한 오마카세는 더욱!


고급 레스토랑은 고사하고, 체인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흔하게 널린 평범한 식당만 가도 큰 지출이 생긴다. 락다운 기간 동안 대부분 집에서 요리해먹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우버이츠나 딜리버루로 배달음식을 먹었는데, 식비가 반으로 줄었다.

배달 어플을 이용할 때 서비스 차지나 배달비가 붙는데 3-5파운드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락다운이 길어지니까 적응해버렸다.


식당의 경우는 그렇고, 카페나 베이커리는 서울이랑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이태원, 송리단길, 망원동,  성수동 카페도 커피 한 잔에 5천 원에서 7천 원 하는데, 런던 카페는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저렴한 수준이다. 대신 18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없다.


사진출처 글쓴이(무단사용 금지)

 요즘 한국에서 외식하면 너무 행복하다. 만원에 이 정도 퀄리티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3. 교통비

 대망의 교통비, 교통비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지금은 한국이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처음 도쿄에 갔을 때나 런던에 갔을 때 눈을 의심했다. 스페인에서는 학교 가는 날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돼서 주로 10회권을 끊었고, 공항과 가까운 곳에 살아서 렌페비도 비싸지 않았다.


 런던은 매년 대중교통비가 오르는 편인데, 도시를 존(zone)으로 나눠 비용을 책정하고 있다. (히드로 공항은 6존에 있다.) 피크타임(평일 출퇴근 시간)인지 오프피크 타임인지에 따라서도 금액이 다르다. *2020년 기준, 1-2존 내에서 이동하면 피크타임에 튜브(전철) 2.7파운드(4100원 정도), 2-3존 내에서는 1.7파운드(2600원)였다. (지금은 더 올랐다고 한다)

버스로 환승하는 제도도 당연히 없다. 다만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 단위로 캡(그 이상 요금이 빠져나가지 않는 상한선)이 있다.


오이스터 카드(교통카드)의 보증금도 5파운드라서 고이 모셔놨다가 귀국 전에 환불받았다.


런던 교통망에 함정이 얼마나 많은지, 2존 역에서 출발해 3존 역에서 하차하더라도 1존을 지나가게 되면 1-3존에 해당하는 요금이 청구된다고 한다. 버스가 저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버스만 이용할 상황을 대비해 마을을 빙글빙글 도는 노선으로 만들어놨다.


 일반인에게는 이렇게나 야박한 요금제이지만, 미성년자와 학생에게는 너그럽다. 학생임을 인증하면 할인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 대학원생이나 만학도들도 해당된다. 만 30세 이하면, 레일 카드와 연동해 오프피크 시간대에 33% 정도를 할인해준다. 그래서 일부러 주말이나 저녁에 약속을 잡기도 했고, 개찰구 앞에서 3분을 기다렸다가 7시에 카드를 찍기도 했다.


  독일도 영국 못지않은 교통비를 자랑하는데 해당 주의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무료로 탑승이 가능하다고 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 다양한 요금제가 있어서 신기했다. 불시에 티켓 검사도 받았는데 티켓이 있어도 긴장됐다. 이와 관련해서는 너무 많은 에피소드가 있어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물가를 잘 반영하는 것 중 하나가 택시비다.

한국에도 최근에 택시 어플이 새로 생기거나 재정비했는데, 영국도 그렇다. 가장 흔한 우버, 볼트, 올라 등 블랙캡 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 플랫폼이 인기다. 그래도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비싸서 주로 공항에서 혹은 공항으로 이동할 때 이용했다.



4. 병원비

 사실 금액적인 면에서 비교하려면 미국의 의료제도와 비교하는 게 더 크게 와 닿겠지만, 유튜브로 간접적으로만 들은 내용이다.


위에서 언급한 비자 관련 비용에서 보건 부담금이 포함되어 있는데 BRP카드라는 재류 카드와 NI(National Insurance) 넘버가 있으면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이용할 수 있다. 의료서비스가 한국과 비교해 더 좋을 때도, 훨씬 엉망진창일 때도 있다. 특히 치과는 무리해서라도 한국에 들어와 치료를 받으려고 하는 친구가 있을 정도다. 동료 중 자주 아프신 분이 계셨는데 응급 전화를 했더니 질문만 수십 가지를 해서 포기했다고 한다.


코로나 시국 때문에 병원과는 최대한 멀리 있으려고 해서 지불한 금액에 비해 서비스를 받지 했다. NHS 프라이빗 병원의 금액은 천지차이 어차피 정말 응급 치료가 필요해도 이용하지 했을 것 같다.


 귀국할 때, 비행기에 탑승하는 날로부터 3일 내에 PCR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확인서를 소지하고 있어야 했다. (비행기 탑승자용 검사가 따로 있다.) 친절한 블로거님들의 후기를 찾아보는데 99파운드에서 200파운드 이상까지 있었다. 검사도 대충 한다면서 종이 한 장에 16만 원이라니... 아깝지만 귀국은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독일과 한국의 검사비를 검색해보니 대체로 영국보다는 저렴하다.



5. 문화생활

 영국에는 무료로 볼 수 있는 전시가 많지만, 특별 전시의 경우에는 유료인 경우가 많다. 지난 V&A 글에서 썼듯이 미술관에 가는 것은 나에게 일상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서울에서 열리는 유료 전시에 자주 갔었다. 한국은 카드사나 포인트 연계 할인 혜택이 다양하고, 문화의 날에는 무료입장이 가능해서 가격적인 면에서는 문턱이 낮다. (대신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문턱이 높지만)


 유럽은 대체로 학생들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에 교통뿐만 아니라 비싼 박물관이나 미술관 입장료가 무료로 제공된다. 스페인 학생 비자를 프리패스 마냥 들고 다니면서 파리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은 무료로, 세비야 대성당과 베를린 역사박물관, 바르샤바 쇼팽 박물관은 할인된 가격으로 입장했다. 소문에 의하면 일부 국가들은 학생 할인 혜택이 미미하다고 한다.


 친구가 영국 박물관에서 열린 특별 전시회에 가자고 했었는데, 일반인 입장료가 18파운드였다. 2차 락다운으로 인해 결국 가지 못했지만 전시 규모에 비해 높은 가격이었다. 빠르게 계산하지 않으면 마치 1만 8천 원처럼 보여서 깨닫지 못할 뻔했는데 2만 7천원 정도다.



 마트에 가면 자연스럽게 한화를 파운드화로 계산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영국 마트와 비교해 터무니없이 비싸면 내려놓기도 한다. 일부 상품은 런던 한인마트에서 샀던 가격보다 비싸다. 이제는 한국 물가에 적응해 이 생활에 맞는 지출 패턴을 세워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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