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건 다 한식이었다.
영국에 살면서 향수병이 온 적도 없었고, 숱한 인종차별을 당하면서도 괴롭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를 정말 괴롭게 만든 것 중 최고는 맛없고 비싼 음식이었다.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겨우 이런 음식을 시켜먹어야 하나 한탄하고 싶을 정도였다.
얼마나 맛이 없냐면 내가 만난 영국인 친구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외국 음식을 말했다. 그중 스시가 1등이었고, 그 누구도 영국 음식을 말하는 자는 없었다.
한국은 편의점에서 파는 빵도 맛있는데 영국 슈퍼는 빵을 덮개 없이 내놓고 파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쩌다 한 번 사 먹으면 놀라울 정도로 맛없었다.
파리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는데...
그래도 그중에 자주 갔던 식당이나 추천할만한 곳이 있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 역시도 모두 외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다. 런던에는 한식당이나 이탈리안 식당이 흔해서 1존 밖에서도 괜찮은 식당을 찾기 쉬웠다.
퇴근 후 피곤해서 바로 쉬고 싶었는데도 불구하고 요리를 했던 이유는 미친 물가도 맞지만 심하게 맛없는 영국 음식 때문이기도 하다.
빵 말고도 예로 들 수 있는 것들이 더 있다. 맥도널드, 버거킹, 파파존스, 도미노피자 등 한국에서는 패스트푸드라는 사실을 떠나 햄버거나 피자가 정말 먹고 싶을 때 찾았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같은 브랜드를 팔아도 어쩜 그렇게 맛이 없는지 부정적인 의미로 감탄했다. 서브웨이는 뭐, 나쁘지 않았다.
어떤 기업이 관리하느냐를 떠나 영국에 있기에 가능한 음식 퀄리티가 아닌가 싶다.
같은 플랏 친구가 월급 들어왔다며 피자를 대접했는데 '내 돈으로 이런 퀄리티 음식을 먹어야 하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떤 친구는 이런 영국 음식 맛에 적응해서 뭘 먹어도 다 맛있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음식 때문에 괴로울 때는 요리왕 친구가 나를 구원해주었고, 밥 대신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며 극복했다. 디저트는 그래도 맛있고, 커피는 정말 맛있다! 최근에 유명 유투버를 통해 인기가 급상승한 FAG* 요거트도 영국에서는 천원대에 먹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이주를 해와서 아주 쫀득하고 깊은 맛이 나는 젤라또를 먹을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는 체질이지만, 카페들의 플랫 화이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또 찾아가고 그랬다. 이런 맛의 커피를 위해서라면 잠 따위는 포기할 수 있었다.
이거는 번외로 영국에 있는 어떤 한식당에서 기본 서비스로 제공된 반찬 사진이다. 스코틀랜드 여행 갔을 때 줄 서서 들어간 식당인데 사진을 다시 보니 너무 웃겨서 올려본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어묵 한 조각은 장난하는거냐며 답장이 와서 한참 웃었다.
만약 내가 주방 사용이 불편한 집에 살았더라면, 요리를 잘하는 친구와 함께 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아마 귀국이 몇 달 당겨졌을 것 같다고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