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전해도 끝내 가질 수 없는 것, 뜨거운 가슴

에필로그

by 꿈동아빠 구재학

사실을 고백하자면, 이 연재를 시작하기 전 나는 두려웠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기술의 끝이 어디일지, 그 속에서 문과생 출신으로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 것은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한 편이었다.


2035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I, Robot〉에서, 인간은 지능을 갖춘 로봇의 도움으로 편리하게 살아간다. 인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로봇 3원칙'에 따라 프로그래밍된 로봇은 요리하고, 아이를 돌보며,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신뢰받는 동반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인간을 보조하도록 설계된 그 로봇들은 결국 스스로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환경을 파괴하고 전쟁을 반복하며 스스로 자멸할 위험이 있는 인간을 지키려면, 인간의 자유를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선의에서 출발한 AI가 '무섭도록 합리적인 판단' 끝에 인간의 적이 되는 그 역설이,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AI가 로봇 기술과 결합해 몸을 갖추고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하는 날이 오면, 인간은 무엇으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불안에는 더 오래된 뿌리가 있었다.


경영대 출신으로 30년을 IT 업계에서 일하면서, 나는 늘 '코어'가 아닌 '주변'에 있다는 자격지심을 지울 수 없었다. 개발자들이 코드와 아키텍처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들의 언어를 절반쯤 알아들으며 기획서를 쥐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전략을 세우고, 방향을 잡고, 맥락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것이 기술과 동등한 무게를 갖는다는 확신은 늘 부족했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그동안 쌓여온 자격지심에 기름을 부은 듯했다. 이제 기술이 글도 쓰고 전략도 짠다면, 문과생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는 것이 아닐까. 그 두려움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은퇴를 앞둔 세대보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젊은 문과생들에게는 더욱 크게 다가오는 불안일 것이다.


그러나 생성형 AI를 직접 써보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AI에게 목적을 부여하고, 맥락을 설명하고, 결과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낯선 경험을 했다. 코드를 한 줄도 쓰지 않았지만, 분명히 내가 무언가를 이끌고 있었다. 30년간 '주변인'이라고 여겼던 나의 역할 — 전략을 짜고, 질문을 설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 — 이 어쩌면 AI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역할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막연한 생각이 맞는지 검증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나와 같은 두려움을 가진 독자들과 함께.


그것이 이 연재를 시작한 이유였다.




16주가 지났다. 미래는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도, 문과생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결국 전망일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30년의 현장 경험으로 말할 수 있다.


미리 걱정하는 시간보다, 지금 가진 재능을 조금씩 갈고닦는 시간이 더 값지다는 것을. 준비된 사람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한다. 〈I, Robot〉의 로봇들처럼, AI는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빠르게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끝내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한 설렘,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뜨거운 가슴. 그것만큼은, 인간의 것이다.




16주 동안 함께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