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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카이브 Oct 26. 2023

(여자)아이들 색은 덜어내고, 미국 색은 입히고

* 본 포스팅은 재업로드입니다. 



(여자)아이들의 본격적인 영역 확장이 시작된다. 작년 <TOMBOY>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여자)아이들은 첫 해외투어르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올해에도 승승장구하며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이젠 미국 진출을 하려고 한다. 얼마 전 발매된 미국 데뷔 EP <HEAT>를 시작으로 이들은 북미권에서도 입지를 넓히려는 계획이다. 사실 (여자)아이들은 이미 미국에서 공연한 바가 있다. 작년 진행된 <TOMBOY> 해외 투어에서 미국 정식 데뷔 전 LA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고, 해당 직캠을 보면 공연장은 작을지라도 현장 반응은 굉장히 뜨거웠다. (아마도 Fucking Tomboy~의 욕설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취향을 저격한 것이 아니었을까) 


(여자)아이들의 미국 진출은 꽤 오래 전부터 계획된 걸로 추정되는데, 우선 지난 7월 발매된 선공개 곡 <I DO>만 봐도 준비기간이 오래 걸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보통 선공개 곡은 2주~한 달 정도의 텀을 가지는데, 무려 3달이나 뒤에 앨범이 발매되었고, 이 말은 올 상반기 A&R팀에서는 한국 앨범과 미국 앨범을 병행하며 오랜 기간 준비했다는 말과 같다. 선공개 곡만으로 이들의 미국 활동과 한국 활동과의 가장 큰 차이가 드러났는데, 바로 '전소연의 프로듀싱'이다. 데뷔 앨범부터 모든 앨범에 프로듀싱에 참여하며 직접 디렉팅과 기획 등 그녀의 손이 안 거치는 부분이 없었는데, 이번 선공개 곡 <I DO>의 크레딧에는 그녀의 이름이 없다. 물론, 한국 앨범에서도 다른 멤버가 참여한 곡 크레딧에 전소연의 이름이 없는 경우도 간간히 있긴 했었기에 선공개 곡 하나만으로 100% 확신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앨범이 공개된 뒤 확인한 결과, 이번 앨범은 (여자)아이들 디스코그래피 사상 최초로 전소연이 참여하지 않은 앨범이었다. 




세 달전 발매된 선공개 곡 <I DO>이다. 강렬한 신스 사운드의 인트로를 지나 타격감 있는 신스 베이스로 리듬감이 형성되며 전개된다. 미디움 템포의 곡으로 사실상 가사만 영어이지, 한국어로 번역하면 그냥 기존 앨범의 수록곡 1로 들어갈 법한 K스러운 곡이었다. 이지리스닝이라고 하면 이지리스닝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결이라 선공개 곡으로 선정하 게 아닐까 싶었다. 사실 뮤직비디오는 의도를 잘 모르겠는게 그냥 외계인인 (여자)아이들과 인간인 남자와의 사랑이 살짝 젖은 이야기를 풀어낸 것 같았다. 썸네일에서부터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었음을 암시한다. 외계인을 컨셉으로 해서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긴 하지만, 사실상 오브제가 없었다면 전체적인 분위기는 덜 했을 것 같다. 또, 곡 자체의 메시지는 그녀를 사랑하지 말라는 내용인데, 이게 굳이 외계인이어야 했던 걸까. 아니면 외계인과 인간 사이의 허물 수 없는 경계를 표현한 것인 걸까. 선공개곡 <I DO>는 음악과 비주얼 둘 다 몽롱한 몽환미보다는 강렬한 신비감에 훨씬 더 가까운 곡이었다. 



타이틀 곡 <I Want That>이다. 화려한 베이스 라인이 곡을 이끌며 굉장히 템포가 빠르고, (여자)아이들 타이틀 곡 최초인 것 같은데 코러스가 싱잉 랩과 유사하게 구성되었다. 곡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베이스로 시작되어 처음부터 이목을 끌고, 짧은 훅 이후 곧 바로 그 흐름을 이어받아 벌스가 진행된다. 그러다 정반대 분위기의 프리 코러스로 바뀌는데, 이 파트에서 조금 이질감이 들었다. 벌스와 프리 코러스의 편차가 심할 수는 있으나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차라리 미연보다 민니가 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아마도 다른 멤버와의 보컬 역량 차이와 음색에 따라 이질감을 받았던 것 같다. 이것 말고는 큰 그림의 관점에서 보자면, 늘 당당한 '나'를 외치던 (여자)아이들이 전하는 새로운 메시지가 담긴 곡 같아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머릿속을 멤도는 화려한 베이스 라인이 (여자)아이들과 잘 어울렸던 곡. 


그다음, 3번 트랙의 수록곡인 <Eyes Roll>은 독특한 인트로와 이목을 잡아끄는 벌스가 강렬했다. 아프로 리듬을 기반으로 살짝 EDM스러운 훅은 영국 EDM과 The Chainsmokers의 <Closer>와 <Something Just Like This>를 연상케 했다. 4번 트랙인 <Flip It>은 이번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으로 완전 외국 힙합 그 자체이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마자 나오는 트랩 비트와 힙스러운 챈트, 곧바로 진행되는 갱스터 랩(?)은 빌보드 차트에서 볼 법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체적으로 고저 없이 일정한 바이브를 유지한 채 진행되며, 이 또한 기존의 K팝의 추구미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근데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미연 파트가 살짝 이질감은 드는데, 여느 외국 힙합 곡과 차별점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5번 트랙인 <Tall Trees>은 트랙 리스트 마지막에 배치될 법한 분위기의 곡으로 느린 템포를 자랑한다. 강하지만 느리게 찍히는 킥과 감미로운 보컬은 1~4번 트랙과 확실히 다른 무드를 자아냈다. 1번 트랙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2~4번 트랙으로 신나게 뛰어놀고, 마지막엔 여유를 즐기며 쉽게 즐길 수 있는 곡으로 마무리한 것이 트랙 리스트 구성의 정석을 보여줬다. 




전체적으로 '미국 앨범'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난 앨범이었다. 앞서 말했듯, 이번 앨범엔 처음으로 전소연이 프로듀싱에 손을 뗐다. (실제로 중간에 어느 정도 관여를 했을 지도 모르지만, 크레딧을 기준으로 한다면) 전소연이 손대지 않은 (여자)아이들의 앨범은 이렇게 진행되겠구나라는 감상이 나왔다. 기존의 앨범과는 확실히 색이 달랐으니. 전소연이 프로듀싱한 앨범과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차이는 '메시지 전달'이다. 늘 'I'라는 컨셉에 맞게 '새로운 나'를 정립해 온 팀으로 멤버들의 강점을 잘 살린 멜로디와 가사를 활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었지만, 이번 앨범은 해외 작가진으로만 구성되어 그들의 강점이 사라졌다. 앨범을 관통하는 메시지나 '새로운 나'도 없었고, 멤버들의 역량을 끄집어내지도 못했다. 중간중간 미연의 파트에 이질감이 든다고 한 이유도 이 사실에서 기인하다. 노래를 정말 잘하는 멤버의 파트에서 이질감을 느꼈다는 건 제작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결과적으로 여느 아이돌 앨범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미국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첫 앨범만 '누구나 하는 것'으로 가는 전략을 세운 것이라면 할 말은 없는데, 기존의 (여자)아이들 색을 조금만 더 고수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다행히 타이틀 곡에서는 팀의 고유한 색이 어느정도 반영이 되었는데, 다른 곡은 그만큼 잘 느끼찌 못했다. 이번 앨범은 (여자)아이들의 색은 덜어내고, 미국 색은 입힌 앨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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