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K’를 찾아서
얼마 전 ‘2023 뮤직뱅크 글로벌 페스티벌(구. 가요대축제)’가 해외에서 진행되며 큰 논란을 빚었다. 사유는 전체 재원의 40%가 국민이 내는 수신료로 채워지는 한국 공영사인 KBS가 공공성과 공익성보다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여겼다는 것. 방송사 연말 공연의 경우 매회 무료로 개최되어 왔지만, 이번 '뮤직뱅크 글로벌 페스티벌'은 최대 약 36만 원에 달하는 가격으로 진행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팬들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도 많은 비난이 일었다.
최근 들어 국내 시상식의 해외 진출이 증가하고 있다. ‘MAMA’, ‘골든디스크’,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에서 하게 된 ‘서울가요대상’까지. ‘MAMA’의 경우 이름에서부터 아시아가 포함되어 있어 늘 해외에서 개최하며 아시아 아티스트를 초청했던지라 그나마 납득하는 분위기지만, 그 외에 다른 시상식의 경우는 해외 개최의 목적이 너무나도 투명하기에 팬들의 분노를 더 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국내가 아닌 해외로 가려는 이유는 한류를 빙자한 수익성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무료 또는 몇천 원 단위의 티켓이 해외만 가면 몇십만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둘 수익성을 좇아 해외를 향했다. 그렇게 한국 가요계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K팝 시상식이지만, 정작 ‘K(Korea)’에서 개최하지 않아 많은 ‘K(Korean)’들은 참석 불가능한 결과를 낳았고, K 없는 K팝 시상식이 되어버렸다.
K팝이 세계화될수록 정작 한국적인 것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늘어난 영어 가사의 비중이다. 오래전부터 곡의 콘셉트 또는 전달력 등 여러 이유로 곡에 영어가 들어있긴 했지만, 최근엔 영어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심지어는 해외 앨범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예 전부 다 영어로 된 가사의 곡을 발매하기도 한다. 얼마 전 발매된 에스파의 ‘Better Things’나 정국의 ‘Standing Next To You’만 봐도 그렇다. 현지 앨범(싱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외 성적을 노리기 위해 영어로 제작했고(일본의 경우 현지 앨범을 따로 제작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들의 지향점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위처럼 영어로 된 노래 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영어 가사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그렇다면 영어로 뒤범벅된 가사로 이루어진 노래를 과연 온전한 K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우선, K팝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Korea Popular Music’을 뜻하는 K팝은 발라드나 힙합, R&B처럼 박자나 악기 등의 명확한 특징이 없다. 비슷한 예로 라틴 지역에서 시작된 라틴팝의 경우 ‘쿵-짝쿵-짝’의 특정 리듬이 있지만, K팝은 그렇지 않기에 한 문장으로 규정하기에는 살짝 애매한 감이 있다. 오직 우리에게 익숙한, 오랫동안 들어온 일면 ‘아이돌스러운 음악’으로 어림잡아 떠올리는 방법뿐. 거기다 이때까지의 K팝 흐름을 보면 우리만의 음악 스타일이 있기보다는 해외에서 먼저 유행한 장르를 가져와 ‘K-스타일’을 가미하여 변형한 것이 현 K팝의 주소에 가깝다. 거기다 지금은 K팝에서 'K'를 떼려는 시도도 몇몇 보이는 중이다.
다시 돌아와, 처음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려보겠다. 그렇다면 해외에서 유행하는 장르를 차용한 아이돌스러운 음악에 영어 가사가 덧붙여진 건 K팝이 맞는 것일까. 이에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K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K팝을 하나의 장르로 인정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미국 시상식에서는 K팝 부문이 신설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아직까지는 가사가 어떻든 간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돌스러운 정서 가득한 음악’이라면 K팝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사람들이 지적하는 ‘영어 가사’ 관련해서는 아직 K팝이 갈 길이 많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라틴팝의 경우 2017년 발매된 Luis Fonsi의 ‘Despacito’의 대흥행 이후 꾸준히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전 세계적인 부흥을 일으켰으나, 라틴팝 아티스트가 미국을 노리기 위해 영어로 구성된 라틴팝 노래를 발매하진 않는다. 그들은 늘 그래왔듯 그들의 언어로 노래하고, 라틴팝이라는 장르를 주류로 만들어 전 세계인이 라틴팝에 자국 언어를 얹은 음악을 만들게끔 했다. 즉, 영어 가사로 인해 잠시 자리를 비운 ‘K’는 그저 K팝의 현 위치가 아직 갈 길이 멀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계속하여 많은 아이돌이 영어 버전을 따로 발매하거나 영어로 된 곡을 무수히 많이 발매할 것으로 추측된다.
'K'를 달고 나온 이상 주요 무대와 음악이 한국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은 당연히 들 수밖에 없으나, 계속해서 입지를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K팝의 현재 위치상으로는 아마 당분간은(몇 년이 될지도 십 년이 될지도 모르지만) 집 나간 'K'를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갈수록 팝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금, 이러한 변화는 K팝이 POP 시장에서 진정한 주류가 되었을 때, 한두 팀이 아닌 대다수의 팀이 전 세계를 누릴 때, 그때까진 유효할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