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입시 제도의 양대산맥에 관한 고찰
정시가 한 방에 좌우되는 나쁜 제도라면, 수시는 한 번도 망쳐서는 안 되는 제도입니다.
한 맘카페에 올라온, 수시와 정시 사이 고민하던 학부모가 남긴 글 아래 달린 댓글 내용이다. 해당 댓글에서는 정시와 수시에 관해 각각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시는 사교육이나 학원빨이 유리한 제도지만 패자부활과 재도전이 있고, 수시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하지만 학교 상황에 따라 격차가 크며 비리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역전과 재수가 힘들다. 요컨대 모두를 만족시킬 전형이란 없다. 그럼에도 여기서 무엇이 옳고 공평하냐 한다면…….
우리는 삶을 사는 내내 '옳은 것'과 '정의'라는 두 주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러하고, 모든 사회적 관계 안에서 그러하니 입시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것이 옳은가, 정의인가를 따질 때에 우리는 자신들이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상기하고 그에 따른 합리적 결과를 도출하려 한다. 우리가 단지 어디에도 속하거나 관련 있지 않은 각 개인으로만 존재한다면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을 '분배'에 관한 문제가 여기서 나온다. 학자들은 이에 대해 다양한 관점의 의견을 내놓는다.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냐, 개인의 자유와 권리냐, 공동체 우선의 미덕이냐. 의견에 따른 분배 결과는 다양하다. 균등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개인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는 등. 그럼 잠시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많은 의견과 결과 속,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지.
나는 이 중 '균등, 공평'을 초점으로 둔 의견에 눈길이 갔다. '사회 정의'에 관해 생각해보자. 개인에게 정당한 몫, 권리, 의무를 부여하고 투명한 사회와 기회 균등을 지향하는 정의론이다. 공평함은 중요하다. 현대의 시장 중심 사회에서 가장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불평등'이 아닌가. 나는 현대 사회의 법이 평등을 강조해오는 것에는 합리적 이유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정의라고 하였을 때 자연히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다만 그것이 익숙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공평에는 옳음이 있다고 여긴다.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 제도는 크게 수능 위주의 정시와 학생부 위주의 수시로 나뉘며 현재 수시 비율이 높고 정시 비율은 낮은 상태다. 수시 확대 정책은 정시가 단 하루의 시험으로 결과를 정하는 잔인한 제도라는 비판 하에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시 확대에 관한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다. 왜일까. 입시 제도의 변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옳음'의 방향이 무엇이기에. 무엇이 더 '정의로운 제도'일까? 정의는 분배의 문제와 크게 연관이 있다고 했다. 입시도 나눔의 결과다. 학생들을 나누어서 각 대학에 배분시킨 결과. 이제 입시제도와 내가 생각하는 정의를 연관지어 생각해보며 던졌던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아보겠다.
수시 제도는 꽤나 이상적으로 보인다. 단 하나의 시험으로 개인의 가치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3년 간의 활동과 성적을 확인한 뒤 결과를 내는 것이므로.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몇 가지 생각해봐야 할 점이 존재한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내내 학생부 종합 전형을 준비하기 위해 온갖 외부 활동, 대회, 컨설팅 비용을 쏟아붓는 경우가 있다. 3년 성적이 내내 좋아야 하며 종합의 경우 생활기록부 내에 면접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스토리가 될 만한 것까지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천문학적 사교육비가 드는 것이다. 그러나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 그 같은 노력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 된다.
정시 역시 이 같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능 하나만을 위한 학원, 과외, 기타 사교육은 넘치니까. 그러나 돈을 아무리 많이 들여도 정시는 결국 수능 하나로 평가하는 제도이기에 되레 이쪽에서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ebs 하나로 수능을 이만큼이나 잘 봤다는 인터뷰가 뜨기도 하는 것을 가끔 보지 않나.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학교마다 다른 시험의 수준, 반마다 다른 선생님의 스타일은 공정한 성적 산출에 어려움을 준다. 같은 학교 내에서도 반에 따라 같은 활동을 해도 적히는 내용이 다른데 전국으로 확대해 살펴보면 차이가 천차만별일 테다. 학교가 가진 정보력의 차이, 선생님 경력의 차이… 수많은 차이들이 모여 3년이 쌓이면 거대한 차이가 될 수 있다.
수시 확대로 학원가가 공포 마케팅을 계속해서 지속하는 것도 꽤나 문제점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정시로는 힘들다, 그런 이야기들이 아직 뛰어놀 나이인 초등학생들 사이에서까지 나온다. 주도적인 학습을 해내거나 학교 생활 자체에 충실하기보다는 교내 및 교외의 모든 활동을 스펙화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3년의 학교 생활을 입시로만 가득 채우게 되는 일이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감상이다.
학생 각자 최선의 공부 방법을 찾는 것만큼 최선의 입시책, 제도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정의 시선에서의 정의로 보면 현 입시제도는 많은 맘카페의 의견처럼 수시와 정시 양측 다 누구도 쉽게 만족하지 못할 정책이며 공정·공평과는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보인다. 이는 교육부가 당면한 문제이며 끊임없이 고민해가야 할 문제라 본다. 그 중 정시 역시 꽤나 큰 문제를 안고 있음은 알고 있지만, 이미 꽤나 확대된 상태이면서도 공정에서 멀어져버린 수시를 제대로 보완하는 일은 필수적인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