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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Apr 09. 2021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13회 광주비엔날레


2021.04.01~2020.05.09 제13회 광주비엔날레 (관람일 21.04.04 12:00~15:00)

주관적, 개인 견해. 기록용.



광주비엔날레전시관 전시장에서 열린 전시를 관람하고 왔다.


도슨트는 없었지만 QPICKER 앱을 이용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난데없이 미로 안에서 작품 찾기 놀이를 해야 했다는 것. 작품 배치 순서와 QPICKER 오디오 재생 순서가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해서 작품 감상에 불편함이 있었다. 또한 1관을 보고 있는데 2관에 전시된 작품 설명이 함께 나와 아리송해지기도. 결국 2관에 가서 똑같은 설명을 또 들었는데, 이해에 문제는 없었으나 짜임을 조금 신경써주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1관의 이 작품과 2관에서 어떤 작품을 함께 생각하며 감상하라는 식의 말만 덧붙였어도 혼란 방지가 되엇을 것. 같은 작가의 같은 주제 작품이라도 똑같은 해설을 복사 붙여넣기한 게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1, 2관은 구성이 혼란스러웠다는 느낌. 3, 4관은 개인적으로 좋았다. 5관은 릴리안 린의 '중력의 춤'을 점검 관계로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나쁘지 않았다. 1관은 사실상 다른 갤러리들의 맛보기, 프리뷰 수준으로 1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 및 감상하기 위해서는 나머지를 모두 감상하는 것이 좋다.





1관. 함께 떠오르기

어떤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학, 가상의 지형, 모임의 다양한 형태들, 보호와 회복을 상징하는 신성한 표상 등의 스펙트럼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각 관마다 가장 눈에 띄는 설치미술 하나씩이 있었다. 1관에서는 오우티 피에스키의 작품. 

<보빗 II – 함께 떠오르기 II〉- 오우티 피에스키
비엔날레 전시장 입구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피에스키의 설치 작업〈보빗 II – 함께 떠오르기 II〉(2020)는 공동체 의복과 모임의 사회적 설정을 암시한다. 협동 제작한 피에스키의 “삼차원 회화”는 손으로 짠 매듭으로 만든 직물 건축물로, 자기결정권과 연대감을 시사하며, 역시 동시대미술과 공예적 과정 사이의 위계를 와해한다. 

1년간 이루어지는 시뮬레이션, 컬러, 무음, 1년의 시간; 유광 알루미늄 정육면체, 500 × 500 × 550 cm, )

옥수수 작업(코리브) - 존 제라드, 옥수수 작업(코리브), 2020

1년간 이루어지는 시뮬레이션, 컬러, 무음, 1년의 시간; 유광 알루미늄 정육면체, 500 × 500 × 550 cm

작가의 최근작인 콘 워크(코리브 강) (2020)는 광택 알루미늄 거울로 주조된 입방체에 투사한 시뮬레이션으로, 켈트 이교도들의 형상인 네 명의 ‘밀짚 소년’을 보여준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젊은이들은 밀짚으로 만든 의상을 입고 결혼식 전에 신부를 방문하는데, 이는 익명의 인물들이 축하 또는 무아경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제의를 상기시킨다. 작가는 16세부터 70세까지 여러 연령대의 현대 무용수들과 협업했는데, 이들은 보리(봄), 귀리(여름), 호밀(가을), 밀(겨울) 등 일 년의 주기를 보여주는 아일랜드의 역사적인 곡물로 만들어진 의상을 입은 인물을 연기했다. 각 무용수들은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교체 형식에 따라 도착하고 떠나며, 인류 초기 태양의 상징인 태양 십자뿐만 아니라 방아의 원운동을 통해 제분 활동을 상기시킨다. 모션매칭과 신경망과 같은 신기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모두 데이터로 포착되고 지속적인 안무가 생산된다. 그 뒤로 보이는 풍경은 이 작품을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로 처음 선보였던 아일랜드 골웨이의 시간 주기, 그리고 기온의 일교차와 연교차에 따른 코리브 강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인간과 풍경의 관계가 지금보다 더 공평하게 온전히 남아 있던 시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퍼포머들의 움직임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생태계 파괴의 우울한 유산을 담고 있으며, 풍경을 "배우고" 풍경에 화답하고 풍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예민한 능력을 지닌 안무의 논리를 따른다. 작가는 그들의 움직임을 "부정, 고통, 고난의 움직임으로 형성된 슬프고 느린 태양의 원형 퍼포먼스, 인구가 번성하고 급증함에 따라 소멸해 가는 비인간 세계를 애통해 하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이외 1관에서 눈에 띈 작품들은 모두 2, 3관 등을 관람하며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김상돈의 작품이라든가, 파시타 아바드의 작품이라든가. 특히 그저 기록 영상으로만 보기엔 아쉬웠던 아나 마리아 밀란의 작품(2020, 비디오게임)도 3관에서 직접 플레이 해볼 수 있는 식.


左 아나 마리아 밀란 <행복한 사람들>, 右 김상돈 <행렬>

말했듯이 구성이 조금 어지럽다. 배치 방식까지 어지럽고 미로같은 편. 여러 주제가 한데 섞여 테마 없이 그야말로 부유한 느낌. 워밍업이고 프리뷰라 여기면 좋다. 갤러리1의 주제는 '함께 떠오르기'가 아닌가. 그야말로 함께 떠오르려는 준비라고 생각하면 싫은 건 아니었다. 열기구를 연상시키는 모양인 오우티 피에스키의 작품과 함께 제13회 광주비엔날레의 세상으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2관. 산, 들, 강과의 동류의식

산과 들, 강에 이르는 생태계는 물론, 한반도에서 스칸디나비아, 오세아니아에 걸쳐 나타나는 실천 양식을 함께 살펴보며 인간계를 넘어선 동류의식을 살펴봅니다.


오디오에는 01번을 파시타 아바드의 작품으로 해두었는데 실제로 전시장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아르피타 싱의 작품이다. 참고: 작품 이름 옆에 오디오 마크와 함께 번호가 적혀 있는데, 해당 번호를 참고하여 설명을 듣도록 하자. 정신을 빼놓았는지... 난 2관 관람 중반쯤에야 그걸 깨달았다. 이게 맞나 하며 찾고 있었는데 작품 옆에 오디오 가이드 번호가 떡하니 있더라...

2관에서 좋았던 것. 페르난도 팔마 로드리게즈-토시후아파팔루친(우리의 존경하는 나비 숙녀), 김상돈-행렬.

52개의 기계 나비로 구성된 <토치후아파팔룻친>(2012)은 왕나비의 군집 지능을 시적이면서도 강하게 적용하여 팔마 로드리게스의 태도를 확장한다. 4세대를 걸쳐 북아메리카에서 멕시코로 놀라운 이주를 완수하는 곤충은 팔마 로드리게스가 말하듯 작업에서 “우리의 마음과 행위가 회복되기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기를, 특히 죽어 가는 곤충, 새, 동물, 우리의 터전, 곧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상징한다.

나비의 군집. 기도하는 손. 키워드가 맘에 들었다.



3관. 욕망 어린 신체, 분과적 경계 너머

마음과 신체의 관계들을 한정시키는 분과적 논리를 넘어, 다양한 신체가 가진 수많은 조건,

기쁨/쾌락과 욕망의 혼종성을 탐구합니다.


작품을 보기 전에 주제전인 만큼 각 갤러리마다의 '주제'를 설명과 함께 읽고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3관은 주제와 어울리는 전시들로 차 있었고 가장 재미있었다. 구성과 배치도 난 좋았다. 3관만을 보러 다시 가도 좋을 듯.


이상호 작가의 작품도 좋았는데 5.18 관련 작품도 있었고... 인상깊었던 건 친일파 인물들을 모아 그려놓고 체포시켜준 그림... 서정주가 친일파 문학가 라인에 빠질 수 없어서 계속 눈에 띄는데 개인적으로 서정주 시인에 대해서는 감상이 깊다. 인물보다 시를 먼저 접한 초등학교 시절 그의 시를 꽤 좋아하다 고학년 쯤 되어 인물의 행보를 알고 나서 뒤통수 맞았던 기억이 너무 써서 그런가.


1관에서 본 아나 마리아 밀란의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난 컨트롤이 어려워서 미션을 못했다...(^^...)


알고리즘 폭력에 대한 이야기. 알고리즘으로 통계낸 기준에 따라 빨간 사각형 안에 갇힌 사람들.

영화 같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단편 영화였다.

빨간 사각형 노이로제 올 듯. 내용은 끄덕거리게 되는 내용이긴 했다. 다만 연출적으로 굉장히 사이비처럼 묘사해뒀던데 보면서 든 생각은 지하철에서 피켓 들고 생체 칩 이야기하던 사람들 같았다는 거.



3관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 미니어쳐 표현이 정말 좋다.

계속 눈길이 가길래 나중에 찾아보니 이번 비엔날레 추천작에 있더라.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퀴어 주제로 넘어간 모양. 벽 가득 붙이고 노트 가득 스크랩해놓은 온갖 성이나 퀴어 관련 기사 따윌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 뭐든 주제삼으면 연구가 되고 예술이 되긴 하겠지만, 아예 다른 세상에 사는 집단을 연구한 것처럼 자료가 많아서. 단순히 보면 그저 취향이 다를 뿐인 것인데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일반의 기준에서 배제당하는 거고. 여튼간에 가장 아...했던 건 홍석천 관련 기사. 아직도 퀴어, 그 중 동성애자라고 하면 대표되는 사람이 홍석천 하나라는 것은 이 사회의 문제가 아닌지. 왜 아직도 다들 숨어 있으려고 하는지, 퀴어 퍼레이드 날에 현장에만 나가봐도 알 수 있겠지.


우리가 서로를 다치게 할 때 그곳은 지옥이 된다 (자콜비 새터화이트, 2020)
-가장 멋진 옷으로 빼입어 그리고 그걸 본보기로 삼아.

영상미가 뛰어나 오래도록 쳐다보게 되던 작품. 조현병을 앓는 어머니의 세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

자콜비 새터화이트의 작품 세계는 가정용 VHS 영상과 3D 프린터로 출력한 조각부터 틴걸 판타지(Teengirl Fantasy)의 멤버 닉 와이스와 협업해서 만든 가상현실 앨범과 더불어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파라다이스의 새〉(2017-2019)에 이른다. 새터화이트는 물질성, 장르, 서구적 구분에 도전하며 포털로서의 신체를 중심에 둔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매혹적이고 심상치 않은 방식으로 그는 기술 자본주의의 작동방식, 즉 항상 존재하는 예속화와 전 지구적 유독성의 코드를 폭로한다. 
새터화이트는 1990년대의 비디오 게임부터 뉴욕의 퀴어 밤 문화, 카라바조의 회화, 그레이스 존스 등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작가의 어머니인 퍼트리샤 새터화이트(Patricia Satterwhite)로, 정신분열증으로 인한 그녀의 파편화된 정신 상태를 통해 예술이 세상에 대한 더욱 깊은 의식을 그릴 수 있는 회복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게 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다양한 허구적인 발명품을 수천 장 그림으로써 나름의 방식으로 사물의 기능성을 조율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홈쇼핑 네트워크에서 성공하고자 했던 욕망을 이룰 수 있었다. 그녀가 모은 드로잉, 노래 가사, 그리고 아카펠라, 포크송, 복음성가의 영향을 받은 카세트테이프가 꾸준히 레퍼런스로 사용됐다. 이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그 실천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보험이나 제대로 된 정신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없을 때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대신했던 카타르시스적인 의식이었다.”
춤추고, 때리고, 빙글빙글 도는 유동적 젠더의 신체가 엉키는 새터화이트의 작업에서 소비의 순환은 리비도적인 분출뿐만 아니라 잔혹한 추출에 개입된다. 3D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인 마야(Maya)로 구현한 떠 있는 듯한 공간에서 작가는 자신과 동료들을 변형되는 풍경 속 혼성의 주인공으로 입력한다. 이곳에서 주인공들은 지배와 복종으로 얽힌 쾌락의 매트릭스를 맞이한다. 〈서로를 해할 때 지옥이 열린다〉(2020)는 퍼포먼스의 무대와 빛나고 획기적인 흑인 컴퓨터 생성 이미지 여성 로봇이 등장하여 작가의 동작을 재연한다. 이로써 근육에 새겨지고 세대를 거쳐 트라우마로 남은 인종차별의 폭력과 고통이 만연한 사회의 진실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트립합과 전자 비트 위에 얹은 퍼트리샤 새터화이트의 목소리는, 고통은 분열을 야기하지만 동시에 공유된 고통을 중심으로 화해하도록 한다는 것을 상기한다. 


차별 문제를 다룬 작품을 보고 있으면 사회의 차별이나 차별 저항적 성격이 작품으로 표현될 때의 효과를 생각하게 된다. 최근 이슈된 아시안 인종차별 증오범죄 문제나 동아제약 면접 성차별, 반동성애로 인한 테러범죄 등은 단일성 문제가 아니다. 차별에 관한 문제는 대상이 누구든간에 어떤 방향, 어떤 타입으로든 많이 이야기되어야 할 문제인 듯. 가시화되지 않으면 해결책도 나오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너무 재미있었던 작품. 들어오는 입구가 삼각형인 것도 좋았다. 저기 있는 건 진짜 빵이다.
'빵으로 만든'.



4관. 돌연변이에 관해

구시대의 아름다움, 인종과 자연에 대한 서구적인 개념을 돌연변이들이 신속하게 대체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신체와 기술, 개념들에서도 발견되는 돌연변이의 모습을 함께 살펴봅니다.

더블바인드 (티산 수, 1989)
플래시를 터뜨려야 그림이 나타난다. 아이들이 앞에 몰려서 사진을 찍던데 아이들이 몰려있는 데에는 몰려있는 이유가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 (티모테우스 앙가완 쿠스노, 2021)

4관에서 가장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작품. 시각적으로 정말 예쁘다. 비엔날레를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보이지 않는 것을 만나기 위해 등불을 띄우는 것,이라고 해설이 언급하던데 등을 띄워 죽음을 추모하거나 신을 맞이하는 여러 문화와 관습을 떠올리게 된다.


빚는 달, 항아리 안의 삶 (문경원 & 전준호, 빚는 달, 항아리 안의 삶, 2016, HD 비디오 설치, 사운드, 11분 14초 )

그 옆에 문경원&전준호의 <빚는 달, 항아리 안의 삶>이라는 비디오 작품이 있는데 사실 4관을 보고 나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그 작품인 듯. 사운드를 들을 수 있도록 헤드셋이 있는데 분위기가 정말 취향이라서 영상을 오래 쳐다보고 있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재해석한 영상이라고. 나레이션 목소리가 너무 좋다. 홀려드는 달항아리의 마법. 



5관. 행동하는 모계문화

한국 전통 신화에서 세계의 역사와 기술에 이르는 영역까지. 여성적 지폐가 축적해 온 모계사회의 문화와 지식을 펼쳐보입니다.


정말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 페미니즘 키워드의 작품이 많더라. 늘 새로운 단어가 있으면 반감부터 갖고 보는 사람들이 많긴 한듯. 십수년을 외친 성평등이 있고, 학교에서도 하는 성평등 글짓기가 당연한 세상에 갑자기 똑같은 의미에 말만 다른 단어가 튀어나왔다고 해서 경계부터 하는 게 강아지가 모르는 장난감을 앞에 두고 그것이 자길 해치지 않는단 걸 이해하지 못해서 날 세우며 짖는 느낌. 어차피 사회가 나눈 성이 있고 그 체계 안에 있으면서 성별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젠더를 바꾸는 이야기든, 젠더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든, 젠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이야기든간에 성별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올 것. 그런 현재에 차별의 역사가 깊은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나 싶은 생각.

어찌되었든 이 시대에 여성적 지혜와 모계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뜻깊은 이야기인 것이다.

영상 중간에 모계사회의 형성 배경이 '여성들끼리 있으면 위협이 덜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끄덕거렸다. 위협으로부터 피하여 만든 집단이 바로 여성들 위주의 새로운 사회였던 것. 

릴리안 린의 작품. 5관에서 가장 좋았다. 산호와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관람 중에 나온 게 무슨 시인지 찾아보고 싶은데 뭔지 모르겠다... 무슨 시인지도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 일본어의 몽환적인 면이 꽤 어울려서 음성을 듣는 건 그 언어면 족하지만 난 해석본을 보고 싶다...




해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 많았는데 작가 의도만이 작품 감상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부담은 없었다. 여성의 시선으로 만들고 이야기하는 작품이 많아서 굉장히 좋았고, 기회 되면 또 한 번 가서 천천히 다시 둘러보고 올 생각. 인상 깊었던 작품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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