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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랖겪처 Nov 30. 2021

대지에 스미는 태양의 색채

인투 더 와일드, 2007

2021년 11월 28일 넷플릭스로 시청


살아가는 데에 있어 강할 필요는 없지만 강인하다고 느끼는 건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래야 한 번은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다.

    숀 펜 감독의 2007년작 <인투 더 와일드>를 보았다. 존 크라카우어 원작의 논픽션 <야생 속으로>으로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책을 추천받은 차에 동명의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보게 되었다.


    광활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 만큼 도입부터 영상은 물론 카메라 워킹, 연출 모두 탁월하여 시각적으로 즐거웠다. 시시각각 변하는 화면의 색들은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또렷한 잔상을 남겼는데, 그 모든 변화의 바탕에는 항상 태양빛이 스며들어있는 것처럼 일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어 장면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이어진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영상이 이러한 색채를 지니게 된 이유를 영화의 종반에 가서는 알 것 같았다. 아마 크리스토퍼가 종국에 하늘을 똑바로 보고 마주하게 된 '신'에 대한 메타포였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그가 줄곧 딛고 누벼온 세상의 틈 사이사이와 결을 따라 스며들어있는 '신의 축복'을 영상의 색채로 담아낸 것이리라.


    영상은 탁월했지만 크리스, 아니 알렉스가 야생을 택한 이유에는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의 원가족에 대한 감정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능했음에도, 너무나 슬프게도 폭력적인 가정사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상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정사는 그의 성정에 불을 지펴주었을 뿐, 알렉산더는 어찌 되었든 간에 야생으로 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영화 중반부터는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가 무척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여동생인 커린의 내레이션으로 알렉스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여름방학을 이용해 미대륙을 횡단한 적이 있다는 경험에 대한 회고를 들려주었을 때, 그제야 그가 야생으로 간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설원, 바다, 사막, 강, 밀밭…. 끝없이 펼쳐진 미대륙의 경이로운 척박함은 한낱 인간이 작정하고 증발하고자 했을 때 무엇보다도 듬직하게 그를 숨겨줄 수 있음을 십 대에 이미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알렉스는 '사회'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내내 누군가를 만나고 진심을 나누는 과정을 반복한다. 심지어 동물들까지도 말이다. 물을 두려워하여 바다에 들어갈 수 없었던 그에게 파도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 준 레이니와 잰, 코펜하겐에서부터 강을 통해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온 매스와 소냐, 호탕한 밀밭 농장주 웨인,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심으로 그를 가족으로 여긴 론, 그리고 수많은 이들. 이중 가장 뇌리에 남는 것은 그가 '마법의 버스'에서 지내는 동안 사냥했던 말코손바닥사슴이다. 크리스가 사슴의 사체를 분해하며 거대한 심장을 꺼내 드는 장면은 한없이 강렬하면서도, 동시에 손 쓸 새도 없이 상해버리고 마는 고기는 살아감에 대한 의미를 관객들에게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가치한 살해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으로 사슴의 사체와 죽음을 애도하는 크리스의 모습은 분명 어떤 영적인 속성과 삶의 본질을 향한 진심의 소통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는 얼마가지 않아 먹을 게 없다며 '사냥감들이 다 어딜 간 것이냐'는 포효를 설원 한가운데에서 외치고 만다.


    이런 경험과 과정들을 통해, 알렉스는 자신을 '올바른 이름'으로 불러주기 위해 다시 '크리스토퍼'로 돌아와 행복은 나눠야 의미가 있다는 결론을 짓는다. 신의 선물, 감사와 용서, 행복…. 아마 이것들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 할 수 있겠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내 안에서 오랜 시간 해소되지 못한 주제를 <인투 더 와일드>를 통해 한 번 더 고민해 볼 기회가 생긴 듯하다. 나는 나대로 열심히 답을 찾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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