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의 체력 절약
추석 연휴 동안 짐 정리를 열심히 해서 키 큰 책장 하나를 버렸다. 호야가 뭐든 타고 오르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을 때부터 없애고 싶었다. (아이가 있는 집에 짐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아이가 있는 집에 너무 많은 짐은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마음먹은 지 오래됐는데, 이제야 없앨 수 있게 되었다. 책장이든 옷장이든 수납가구는 정말로 신중하게 사야 한다고 다시 느꼈다. 집안의 수납공간은, 한번 뚫어놓으면 계속 쓴다는 마통 같은 것이다.
정리하는 김에 드레스룸 정리도 독하게 했다. 의류/잡화를 다섯 포대 정도 추려냈다. 드레스룸이 작은데도 욱여넣으니 많이 들어간 거다. 돌아보면 격년으로 이 정도 규모로 정리를 해왔는데요. 야금야금 잘도 늘었다.(= 야금야금 잘도 샀다) 아이가 생기고 더 이상 입지 않는 옷과 들지 않는 가방이 많이 생겼는데, 나눔도 하고 기부도 하고 유행이 지난 건 리폼 의뢰도 했다. 낡아서 보관하던 건 수선을 보내서 다시 쓰기로 한다. 사용하지 않을 것은 보관만 하는 일은 이제 하지 않기로 한다. 단 한 뼘의 공간도 공회전하게 두지 않을 거야. 사실, 바라는 건 매일 입어도 편하고 관리하기 좋은 옷으로 계절별 교복 시스템을 안착시키고 경조사 등 TPO 맞추는 데 필요한 옷, 기분 내는 옷 일부만 남기는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긴 연휴가 생기면 마음을 다잡고 짐을 줄이곤 하는데, 이렇게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면 쇼핑 좋아해서 집이 금방 정신 사나워 지기 때문이다. 오늘 한창 정리하면서 올여름에 존재를 잊었던 작은 서큘레이터를 발견했다. 그뿐인가. ‘아, 이거 여기 있었네’는 백번쯤 했지. 공간이 부족해서 수납을 여러 겹으로 하면, 안쪽에 보관한 건 빠르게 잊힌다. 여러 겹이 아니라 한 겹으로 보관하더라도 꽉 채워버리면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비우다가 결국에 도달하고 싶은 상태는, 집안의 대부분의 물건이 '파악'되는 상태이다. 물건을 찾아 사용하고 다시 보관하는 것, 소비재는 재고를 파악해서 추가 구입하는 건 사는 동안 멈추기 않고 일어나는 일상의 기초대사이다. 효율이 좋고 나쁨에 따라 소모 체력의 총량이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것이다. 효율 좋아지려면 (공간이 여유 있다면 큰 도움이 되지만) 사실 물건 수가 적어지는 것 밖에 도리가 없다.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내 뇌의 용량이 늘어날 수는 없지, 아마?) 가족이 늘어 세간 수도 당연히 늘 수밖에 없고, 내 역할도 늘어 뇌 용량이 모자라 오류가 나거나 멈춰버리는 일이 일이 잦아지는 상황이라 효율이 더더욱 중요하다. “내 정신 좀 봐!” 하면서 무릎 치는 빈도는 줄일 수 있다.
호텔이 호텔같이 유지되는 건 단위면적당 노동량 투여가 많아서가 아니라, 단위면적당 세간 수가 현저히 적어서라고 생각한다. 집에 물건이 많으면 노동량을 많이 투여해도 쾌적할 수 없다. 체력 비축을 위해 비용을 들여 가사 아웃소싱을 하더라도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기억하자. 내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은, 블루투스로? 내 체력을 24시간 조금씩 흡수한다!
늘 이렇게 비장하게 비우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흐려져 지갑을 또 여는 나인지라, 몇 개월 뒤의 내게 보내는 편지 같은 맘으로 기록으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