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럴 줄 몰랐다

갑자기 시작하는 「해장합시다」

by 김혜민

네가 마음대로 만든 기대치를 나를 재단하는 데 사용하고 있구나. 네가 만들었으면 너한테나 들이대렴. '네가 그럴 줄 몰랐다'는 대사는 듣는 사람에게 죄책감을 줄 목적으로 던지는 폭탄이란다. 내가 '그럴 줄'을 네가 모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니. 이 말에는 마치 '네가 더 나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라는 생략된 뒷부분이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아니란다. 너는 그냥 내 생각이 너와 달라서 기분이 안 좋은 것뿐이란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마치 네가 나를 크게 신뢰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데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네가 실망한 것처럼 포장하는 말이란다. 너의 편협함을 감추려고 교묘한 화법을 사용해 나에게로 화살을 돌렸구나.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미안해하며 자책할 줄 알았나 보구나.

저런, 그건 네 생각일 뿐이란다.


sticker sticker

거울 보고 연습할 거예요, 이 몸짓과 표정. (될까요...)




어제 흔들리는 버스에 앉아 노트에 들쑥날쑥 적은 글이에요. (사실 초안은 더 사나웠는데 다시 적으면서 순화했어요.) 적고 나니까 속이 좀 풀리더라고요. 하루 종일 마음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 정도로 감정이 시끄러운 적은 오랜만이었어요. 누가 빨대를 꽂아 빨아낸 것처럼 안팎으로 기운이 쪽 빠지더라고요. 이런 기분으로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친구 '순대'가 생각났어요. 하지만 그녀는 여덟 시간의 시차 너머 서울에 있네요. 그나마 몇 문장 적어서 덜어낸 덕분에 터지지는 않은 채 근근이 하루를 마쳤어요.


늘 생각하던 게 있어요. 만약에 인간으로 한 번 더 살 수 있게 된다면 예의 있고 차분하게 할 말 다 하는 고품격 사이다형 인간으로 꼭 살아 보고 싶다고요. 벌써 한국인 기대수명의 절반을 살았는데 갑자기 나머지 절반을 사이다형 인간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환생은 믿지 않으니, 천국에 가서나 한 번 시도해 볼까 했거든요. 어제 이 메모를 적으면서 천국 갈 때까지 기다릴 게 뭐 있나 싶은 생각이 번쩍 들더라고요. 실전과 면전에는 약하지만 뒷북과 지면에서는 그나마 낫거든요.


왜 즉시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왜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했을까. 왜 그냥 듣고 넘겼을까. 지나고 나서야 해야 했던 말이 생각나서 한탄스러웠던 적이 셀 수가 없어요. 누군가의 무례와 무지에 야무지게 대응할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분하고 답답해서 남은 찌꺼기들이 온통 흩어져 있는데 제대로 쓸어 담을 생각을 못 하고 살았어요. 너무 많네요. 더 쌓이면 건강을 크게 해칠 것 같아요. 청소를 시작하려고요. 브런치에 보니까 저쪽에 청소도구함이 있더라고요. 안에 빗자루랑 쓰레받기도 있네요. 아마 이럴 때 쓰라고 마련해 두셨나 봐요. (잘 쓰겠습니다, 꾸벅)


예정에 없던 짧은 글 모음이 될 것 같은데, 어떤 모습으로 빚어질지는 하다 보면 알게 될 것 같아요. 아무 계획 없이, 속풀이 해장국 들이키는 심정으로 빈 뚝배기를 하나둘 쌓아가볼게요. (돼지국밥, 콩나물해장국, 복국, 선지해장국, 도가니탕들아...) 단, 육두문자는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은 예의 있고 차분하게 할 말 다 하는 고품격 사이다형 인간이니까요.


혹시라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독자가 계시다면 댓글로 함께 해장하시죠. 술은 각자 마셨어도 해장을 함께 하면 더 큰 용기(?)가 생긴답니다. (옛날옛날에 신촌에 있는 '신계치'라는 라면집이 밤새 영업을 했었더랬죠. 그래서 해장의 성지였더랬죠. 새벽에 하나둘 홀린 듯이 라면집으로 들어가던 숙취인들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부대끼는 어제를 보낸 저에게 스포츠센터 카페테리아의 샐러드 한 접시를 응원과 위로의 상으로 쐈어요. 역시 남이 만들어 준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이만 총총 (냠냠) 계속 먹을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