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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Apr 22. 2021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엄마

보너스 같은 하루, 엄마와 함께한 봄나들이

현재의 직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부터 매년 찾아오는 보너스 같은 ‘하루’가 있다. 학교의 개교기념일이다. 개교기념일에는 모든 강좌가 휴강하고, 교직원들도 출근하지 않는다. 20여 년 동안 개교기념일이 평일일 경우, 식구들에게 말하지 않고 온전히 나를 위해 하루를 사용했다.      


출근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고 퇴근 시간에 귀가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주로 친정집에 가서 낮잠을 잤다. 당시에는 항상 잠이 부족해 여건만 되면 잠을 자던 때다. 운전하다 정지 신호등에도 순간 잠이 들어, 뒤 차의 클랙슨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지만 그래도 몸이 개운해졌다. 아이들이 조금 크고 친정엄마가 나이 들면서는 대부분 엄마가 부탁하는 일들을 해결해주는 날이 되었다. 차로 이동하는 먼 시장을 간다거나, 친척 집을 방문한다거나 그런 일들이었다. 나름 365일 중 단 하루, 친정엄마에게 할애되는 날이었다.     


퇴직을 앞두고 마지막 보내는 개교기념일도 친정엄마와 꽃구경하는 날로 정했다. 몇 년 전부터 매해 적어도 한 번씩은 형제들이 엄마와 여행했다. 그 시기는 형제들이 암묵적으로 엄마가 연로했음을 깨달은 즈음으로, 미국에 사는 오빠가 정기적인 방문을 하던 때부터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로 인해 근 2년 동안 오빠가 한국으로 올 수 없었고, 국내 분위기도 노인을 동행한 여행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말하자면 엄마는 2년 동안 제대로 된 나들이를 하지 못하고 집에만 묶여있었다.      

꽃구경하고 맛있는 점심도 먹을 수 있는 곳을 며칠 동안 궁리했지만 허사였다.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워 놀아보지 못한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당일에 김밥을 사서 무작정 엄마네 갔다. 김밥은 아침 식사 대용이다. 당일치기 나들이지만 엄마를 하루 온전히 부엌에서 해방하기 위한 것이다.     


현관문을 들어서니, 소파에 앉아 손거울을 보며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계셨다. 로션은 엄마의 자존심인 듯한 ‘랑콤’ 영양크림이다. 엄마는 젊은 시절 나들이를 가거나 공식 모임에 갈 때는 파운데이션과 루주로 곱게 화장했다. 나이 들고부터는 파운데이션은 바르지 않았지만 루주는 꼭 발랐다. 여든 살 즈음부터는 루주도 바르지 않았다. 단지 새로 세수하고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단정히 빗는 거로 외출 준비를 마쳤다.     


‘쉬는 날 좀 쉬어야지, 꽃구경은 무슨 꽃구경이냐’고 꾸짖듯 말씀하시지만, 얼굴은 환하셨다. 요 며칠 동안은 꽃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의 화창한 날씨였는데 오늘은 비가 올 듯 날이 꾸물거렸다. 하지만 나들이를 단행하기로 했다. 결국 꽃구경할 곳을 정하지 못하고 바다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에 맞춰 안성 대부도로 향했다.     


같은 값이면 꽃구경하기 좋은 길을 선택하여 가면 좋으련만 동행한 동생이나 나나 길치니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차를 몰았다. 다행히 고운 연둣빛의 낮은 산등성이도 보이고, 연분홍의 벚꽃이 군데군데 수놓고 있는 산등성이도 보였다. 엄마는 흥미로운 얼굴로 차창 밖에 눈을 떼지 않았다. ‘집에서 편하게 텔레비전을 보는 게 제일 좋다’ 던 엄마였기에 그런 엄마의 모습이 생경했다. 내가 구경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엄마의 이야기가 진심인 줄 알고 지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대부도 탄도항에서 바라보는 바다 모습은 너무나 아쉬웠다. 확 트인 바다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배들이 정박한 멋진 항구의 모습도 아니었다. 불구하고 바닷가에 온 기분을 내기 위해 횟집에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에 월요일, 흐린 날인데도 손님이 제법 많았다. 우리처럼 벼르고 별러 정한 날이라 연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싶어 동병상련의 마음마저 들었다.     

 

멍게, 가라 비, 소라 등의 조개가 나오고 주문한 광어와 우럭 회가 한 접시 나왔다. 엄마는 우럭회를 한 점 맛보고는 우럭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종업원이 서더리 탕을 가지고 오자, 엄마는 ‘우린 그냥 먹겠지만 이렇게 장사하면 안 되지’라고 단호하지만 점잖게 타일렀다. 종업원은 노인을 예우하듯 웃으며 부인했다. 상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얼른 웃는 낯으로 엄마가 귀가 안 들린다고 알려주며 적당히 무마했다. 나는 평생을 생선과 고기 좋아하는 식구들의 밥상 준비가 업이었던 엄마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비록 청력을 거의 잃고 아랫니도 2개뿐이며, 걸음도 지팡이와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제대로 걸을 수 없지만, 기억력과 사물 식별력은 육십이 된 나보다 낫다는 것을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귀가하는 길에 안성 미리내성지 근처에 있는 유명 탤런트가 운영하는 카페에 들렀다. 희미한 바람으로 생겨난 잔잔한 물살을 품고 있는 너른 저수지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연초록 빛깔의 낮은 산등성이는 산수화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하다. 저수지와 카페 사이의 너른 공간에 자갈을 깔고 그 위에 항아리와 꽃 화분들로 조경을 한 뒤 손님들이 야외 경치를 즐길 수 있게 곳곳에 철재 탁자와 의자들을 놓아두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말끔히 꾸며진 곳이었다.      


TV에 자주 소개되는 곳이라 텔레비전을 자주 보는 엄마를 위해 정한 곳이다. 차를 카페 입구에 가까이 대고 내리자 하니, 엄마는 본인은 차에 있겠다며 둘이 가서 커피 마시고 오란다. 너무 늙은 사람이 들어가면 젊은 사람들이 흉을 본단다. 동생의 강권에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매무새를 바로 잡더니 차에서 내린다. 카페 안에서도 본인의 모습이 그곳의 분위기와 맞지 않을까 연신 머리 모양을 가다듬는다. 


여든 중반을 넘어서면서 살이 빠지고 허리도 굽고 이도 빠져 예전에 고왔던 모습이 많이 망가져 버렸다. 하지지만 내 눈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흔의 나이까지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자식들의 큰 도움 없이 생활하고 있는 엄마가 언제 어디서도 자랑스러운데 엄마는 그것을 모르는 눈치다.(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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