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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 Apr 09. 2023

3, 2, 1... 출발!

신체화와 정신병. 나약한 체육학도.

오랜 시간 대입을 준비하면서 수능을 보는 횟수만큼 세 배로 늘어난 것은 바로 실기였습니다. 정시로 체대를 지망하다 보니 매번 수능이 끝나도 멈춤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연달아 총 네 번의 실기를 준비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래 한다고 무조건적으로 결과가 나아지진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쌓이고 쌓인 공부와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겠죠. 하지만 우울과 불안에 압도되어 있던 저에겐 신체화 증상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근육이 이완되지 않아 잔뜩 수축된 다리로 슬로모션처럼 뛴다거나, 과호흡이 오거나, 옛날 화병과 비슷하다는 가슴통증, 반사신경이 둔해져 출발이 늦어지거나 하는 식으로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가장 우선인 컨디션 관리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지금에야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저에게 이 경험들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매일같이 노력해 본 마인드컨트롤도 이미 압도된 감정상태로는, 마음에 병이 난 상태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나는 행복하다, 내 몸은 아주 가볍다, 오늘 최고의 기록이 나왔다, 나는 아주 편안하다, 할 수 있다, 해냈다. 온갖 긍정적인 말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순간 내내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간절한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정말 제 멘탈이 약해서였을까요? 왜 번번이 마인드컨트롤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입시체육은 학교마다 시험 보는 종목들(제자리 멀리 뛰기, 10m/25m 왕복 달리기, 좌전굴, 체전굴, 메디신 멀리 던지기 등등)이 달라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종목을 잘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수능성적을 바탕으로 학교 후보군을 추려야 합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수능 성적으로 학교를 정하고 실기 성적으로 합불여부를 가른다고. 이 말은 제 뇌리 속에 깊게 박혀 각종 출발선 혹은 준비선 앞에 섰을 때 그 어떤 생각들로 막아보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절박함만이 남게 만드는 말이었습니다. 특히 다들 한다는 재수를 지나 세 번째 시험부터는 이번에는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모든 긍정을 허들 뛰어넘듯 풀쩍 뛰어넘어 제 몸을 지배해 버렸습니다.


현역, 첫 실기 때 25m 왕복 달리기를 하기 전 줄 서서 대기하고 있을 때 다른 조의 학생이 출발선 앞에서 깁스를 풀고 비명을 지르며 달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인데도 그 비명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기분입니다. 처음엔 존경스러웠고 그다음엔 자책했습니다. 그만큼 노력하지 않는 저를 채찍질해 댔습니다. 물론 지금에는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대입에 대한 반감도 들고 그렇게까지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요... 지금도 종종 그 비명소리를 떠올리며 더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제 자신에게 혐오감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대입의 성공은 여러 가지 기준을 둘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평생 꿈꾼 대학에 붙는 것, 수시로 대학에 가는 것, 정시 1 지망 대학에 붙는 것, 어떻게든 대학에 붙는 것 등등. 저에게는 매 수능마다 첫 번째가 아니면 용서되지 않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압박도, 스스로가 가하는 압박도 매 순간 제 안에 물러설 틈 없이 빽빽하게 존재했습니다. 그 스트레스가 결국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신체화의 늪 속으로 끌고 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어려운 신체화 증상들은 또다시 돌고 돌아 제 마음의 짐이 되어 묵직하게 온몸을 무겁게 만들곤 합니다. 약한 마음이 나쁜 건 아닐 텐데 왜 엑스레이처럼 훤히 보고 납득할 방법이 없는 걸까요. 마음이 힘든 모든 입시생들을 매년 겨울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아픈 마음으로 염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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