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브가 만든 명작 게임들의 개발 배경과 조직 문화가 궁금하신 분
게임을 만들 때 언제, 어떻게 테스트 해야 하는지 알고 싶으신 분
영국의 게임 저널리스트 마크 브라운이 운영하는 GMTK (Game Maker's Toolkit) 채널에서는 게임 디자인의 원리나 게임 제작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중 최근 공개한 ‘밸브의 비밀 무기(Valve’s “Secret Weapon”)’라는 영상에서 게임 플랫폼 스팀(Steam)과 '하프라이프 시리즈', '포탈 시리즈', '팀포트리스 시리즈' 등 많은 명작 게임을 개발한 게임사 밸브(Valve)의 플레이테스트 문화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게임 테스트가 줄 수 있는 긍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소개 드립니다.
원본 영상 보러가기(링크)
마크 브라운이 소개하는 밸브의 특징은 플레이테스트를 매우 중시한다는 점입니다.
많은 게임 회사들이 게임 제작 과정에서 테스트를 진행하지만, 밸브는 플레이테스트에 거의 종교적으로 집착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초반 단계부터 잦은 플레이테스트를 통해 게임이 기획 의도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한다는 의미인데요.
3D 퍼즐 어드벤처 게임 ‘포탈’의 개발 중 진행한 플레이테스트에서 테스터들은 게임이 재미있어서, 완성된 게임을 플레이할 날이 기대된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게임은 완성된 상태였는데요. 밸브는 피드백을 통해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 유저에게 몰입감을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 급하게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태어난 캐릭터가 바로 게임의 주요 빌런인 글라도스입니다. 글라도스는 뛰어난 대본과 연기 덕분에 게임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악역 캐릭터이지만, 이것이 태어난 계기는 게임 제작 초반의 피드백을 통해 게임에 악역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생겼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밸브의 게임개발 프로세스는 가설을 실험하고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실험을 반복하는 과정과 같다고 합니다.
영상에서 소개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목표를 설정한다: 포탈의 경우, 명확하고 풀었을 때 만족스러운 퍼즐을 만든다
2. 디자인한다: 위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 구간을 만든다
3. 플레이테스트: 플레이테스트를 진행해 만든 구간이 목표를 만족하는지 확인한다
4. 반복: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경우, 반복을 통해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다시 만들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영상에선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여기서 소개하는 과정을 개발자의 목소리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드가 있습니다. 포탈과 포탈2를 클리어하면 열리는 ‘코멘터리 모드’인데요. 마치 완성된 영화를 감독과 배우가 함께 보며 일화를 소개하는 코멘터리 영상처럼,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며 개발자의 코멘트를 들을 수 있는 모드입니다. 이 모드에서도 테스트를 통해 플레이어가 퍼즐 요소를 학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부분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스테이지를 변경하거나 추가 스테이지를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는 코멘트를 게임의 여기저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스크린샷에서는 ‘포탈1’을 시작하면 나오는 라디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요. 테스트 과정에서 사람들이 포탈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완전히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추가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포탈은 퍼즐게임이다 보니 더 많은 테스트를 거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밸브는 다른 게임에서도 이와 같은 테스트를 통해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들어왔습니다.
1998년 출시된 슈팅 게임 '하프라이프'를 개발했을 때, 개발팀은 출시 두 달 전에서야 게임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게임을 갈아엎어야 할 상황에서 팀을 세분화하고 잦은 플레이테스트를 시작했고, 결국은 역사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게임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밸브가 플레이테스트를 중시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경험이 없는 새로운 영역, VR 게임을 만들 때도 플레이테스트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20년 출시된 VR 게임 '하프라이프:엘릭스'를 개발할 때 밸브는 플레이테스트를 통해 많은 피드백을 수집했으며, 이를 통해 게임의 전반적인 속도 등 개발 방향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효과적인 플레이테스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밸브는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1. 일찍 테스트한다
2. 자주 테스트한다
3. 조용히 관찰한다
4. 기획자가 직접 진행한다
게임 테스트를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UX 분석가의 입장에서도 위의 원칙들에 크게 공감이 가는데,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일찍 테스트한다 / 2. 자주 테스트한다
밸브는 빠르면 프로토타이핑 단계, 레벨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 테스트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아트 리소스가 완성되지 않은 오렌지박스 형태일 때도 많다고 하는데요. 사실 게임을 평가받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보니, 개발팀의 입장에선 더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게임 초반에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또한 테스트에는 테스터를 모집하고 보상을 지급하는 등,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주 진행하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찍 그리고 자주 테스트를 하면 궁극적으로 게임 개발의 비용을 줄이는 있다는 것이 UX 전문가들의 일관적인 생각입니다. 빨리, 그리고 자주 테스트를 하면 의도대로 게임이 작동하는지 빨리 확인할 수 있고, 게임이 완성된 후 수정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조용히 관찰한다
직접 테스트 현장에서 관찰하다 보면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게임을 개발한 입장에서는 게임을 더 즐겁게 플레이하는 것을 보고 싶기도 하고, 왜 특정 구간에서 막히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에 대한 조언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현실적인 게임 경험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플레이 그대로를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게임UX분석팀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는 경우, 게임 개발에 관련된 구성원들은 현장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서 테스트를 관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4. 기획자가 직접 진행한다
영상에서 이 내용은 기획자가 직접 플레이테스트를 진행하고, 테스터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어떤 부분이 의도와 다른 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과 같이 전문화된 환경에서는 기획자가 직접 테스트를 진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게임UX분석팀과 같이 전문적인 조직이 있는 경우, 개발자가 관찰한다는 부담 없이 플레이에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테스트를 맡기고 보고서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테스트에서 플레이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직접 관찰하고 거기에서 개선점을 찾는 것입니다. 개발 팀은 해당 게임을 직접 제작한 만큼 게임을 더 잘 파악하고 있고, 어떤 개발 의도가 게임에 들어가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관찰에서 얻는 인사이트가 풍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개 드린 것처럼, 밸브의 명작 게임이 나오는 데에는 플레이테스트에 집착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밸브의 개발 철학은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목표에 맞게 게임을 만든 후, 의도에 맞게 작동하는지 테스트를 통해 확인한 후, 의도에 맞지 않는 경우, 앞의 과정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게임을 다시 만들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최적의 경험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플레이테스트는 빨리, 자주 하는 것이 좋으며, 플레이에 개입하지 않고 직접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게임UX분석팀에서도 넥슨 게임의 게임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리서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사례들도 소개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관심있는 분들께 던전앤파이터, 크레이지아케이드, 듀랑고의 초반 경험을 개선한 NDC 발표 자료를 공유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DC리플레이: 그것이 알고싶다: 초반진입경험(FTUE)이 게임의 재미에 미치는 영향 편
유튜브: [NDC] 그것이 알고싶다: 초반진입경험(FTUE)이 게임의 재미에 미치는 영향 편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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