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어떻게 기억하는지 궁금하신 분
게임 속 기억 유지 장치 사례가 궁금하신 분
게임 속 인지심리학 요소가 알고 싶으신 분
인간에게 '기억'이란 무엇일까요? 살다 보면 때로는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 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뇌리에 강력히 박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해서 30번은 넘게 봤을 영화 <이터널선샤인>의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 실험적인 치료를 통해 연인에 대한 기억을 지웁니다. 치료를 통해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을 지우고, 그 과정에서 기억의 소중함을 느끼고 뒤늦게 후회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끊임 없이 어떠한 정보를 습득했을 때, 기억하고 망각하기를 반복하는데요. 이런 경험은 게임에서도 흔히 겪을 수 있는데요. 오랜만에 돌아온 게임인데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기억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학습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어떠한 과정에 의해 정보를 습득하고 기억하고, 그것을 망각할까요? 오늘은 인간의 기억과 망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가실까요?
여러분은 혹시 오랜만에 복귀한 게임이 낯설지만 않았던 경험 있으신가요? 몇 년 만에 복귀했는데 뭔가 내용은 많이 바뀌었지만 몸이 기억한 그런 경험이요. 최근 제 지인은 저의 권유로 5년 전에 관둔 MOBA 장르 A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됐는데요. 조작 방식이 어렵지 않은 게임인 것도 있지만 별도의 재학습 단계 없이 바로 왼손은 Q, W, E, R키에, 오른손은 마우스가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됐다고 합니다. 제 지인이 특별히 재학습 단계를 거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작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장기 기억의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과 멘탈 모델(Mental Model)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이란, 반복을 통해 몸이 기억하는 기억입니다. 이는 무의식적인 기술과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한 기억이며, 그 방법을 형언 및 설명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다고 해도 별도의 복습이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탈 수 있죠. 사실 이런 장기 기억들에 개인적인 이해와 믿음이 견고해지면서 멘탈 모델(Mental Model)이 형성되기도 하는데요. 멘탈 모델(Mental Model)이란 사람들이 자기 자신, 다른 사람, 환경, 자신이 상호 작용하는 사물들에 대해 갖는 모형으로, 특정한 주제에 대한 사용자의 행동 친화도라고 도널드 노먼(Donal A. Norman)은 정의합니다. 즉,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경험함을 통해 비슷한 시스템에 대해 '이러할 것이다'하고 예상하고 기대하는 것이죠. (출처:『디자인과 인간 심리』, 도널드노먼, 학지사, 2016)
지인의 경험으로 다시 돌아와 얘기해보면, 절차 기억 덕분에 오랜만에 돌아왔지만 해당 게임을 조작 방식이 어떠하다고 기억해내기도 전에 몸이 자연스럽게 기억했죠. 하지만 그와 반대로, 기존에 외워뒀던 챔피언의 스탯이나 스킬에 관련한 정보들은 업데이트에 따라 바뀌기도 했고 기억이 희석돼서 까먹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이런 정보들은 선언적 기억(Declarative Memory)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언적 기억(Declarative Memory)이란, 사건과 사실의 기억이며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으로 넘어갈 때 형성됩니다. 이는 책이나 글자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지식이나 경험과 특정 사건에 대한 맥락에 대한 기억입니다. 선언적 기억은 내가 기억하기도 전에 몸이 기억하는 절차 기억과는 다른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내가 기억하던 정보와 다를 때'는 다시금 학습과 반복을 통해 기억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앞서 다루었던 절차 기억과 선언적 기억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인간은 어떠한 정보를 습득해 기억하게 되는 과정은 감각 기억 - 단기 기억 - 장기 기억 이렇게 3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감각 기억(Sensory Memory)은 다양한 감각으로부터 들어온 정보를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정확하게 기억하는 저장 체계입니다. 단기 기억(Short-term Memory)의 경우,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기억이며, 단기 기억 내에는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라고 불리는 요소가 있습니다.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란 다른 감각 기관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머리 속에 잠시 잡아뒀다가 기억하는 것인데요. 심리학적으로 작업 기억은 경험한 것을 수 초 동안만 머릿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즉, 단기 기억은 단순히 짧은 기간 동안 남아 있는 기억이며, 작업 기억은 습득된 지식을 유지하고 사용하는 것까지 의미하는 것이죠. 이 단기 기억이 뇌의 해마에서 기억력이 강화될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 전환되는 기억이 바로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입니다.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은 일생 동안 저장되고 보존되어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인출할 수 있는 기억이죠. 장기 기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며, 그 두 가지가 앞서 예시에서 언급했던 선언적 기억(Declarative Memory)과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입니다.
게임 속 유저가 학습한 것을 망각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억 유지 장치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는 '던전앤파이터'의 <헌터&비질란테 고속 성장 개시!> UI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최근 던전앤파이터에서는 신규 직업 헌터와 비질란테를 출시하면서 유저가 게임 시스템을 잘 학습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스펙업 미션을 제공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게임 속에서 중요한 콘텐츠나 정보는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재학습'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인상적인데요. 보통 튜토리얼을 진행하면 1회성으로 제공하거나 별도로 제공한 가이드를 따로 찾아가 봐야 하는데, 해당 UI는 일일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매일 볼 수 있는 접근성 높은 UI여서 더더욱 정보 획득의 진입 장벽이 낮은 편입니다. 유저의 일상적인 플로우 내에 필요 시 언제든 재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은 중요한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데에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각인된 시스템에 대한 정보는 유저가 언제 돌아와도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게 해서, 게임에 빠르게 몰입하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저는 던전앤파이터 사례를 보고 '왜 유저가 매일 마주치는 UI에 재학습 시스템을 넣어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고, 그 해답의 힌트를 '망각'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학습한 후에 조금 있으면 쉽게 까먹고 마는데, 이 내용을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의 '망각 곡선(Forgetting Curv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이론은 망각 곡선 실험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이 실험은 TOV, XUY와 같은 무의미한 단어를 암기한 다음 다른 시간 간격으로 그것들을 기억하는 능력을 측정했고, 학습 직후에 망각이 가장 빠르며 처음 몇 시간 또는 며칠 내에 기억력이 크게 감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위 이미지와 함께 실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에빙하우스는 이 실험을 통해 인간 기억의 망각 패턴을 밝혀냅니다. 만약 100개의 단어를 외웠다면 처음 20분 동안 약 40%의 기억이 유실되고, 1시간동안 약 50%, 하루가 지나면 20%만 남게 되죠. 여기서 에빙하우스는 같은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해서 외우고 그것을 점으로 찍어 복습 곡선을 그려보는데요. 그는 반복해서 외우면 망각하는 것이 점점 적어진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이를 통해 그는 4~5회 정도 반복해 외우게 되면 100%에 가깝게 암기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출처:『재능을 만드는 뇌신경 연결의 비밀』, 신동선, 더메이커, 2022 p.141)
오늘은 게임 플레이 경험에서 마주칠 수 있는 기억과 망각의 사례와 이론에 대해서 얘기해 봤는데요. 많이들 공감하셨으려나요?ㅎㅎ 저의 아티클을 보신 실장님께서 아래와 같은 코멘트를 남겨주셨는데, 생각해볼 거리가 많아서 여러분께도 공유드립니다.
게임 이용에서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저는 복귀 경험뿐 아니라 새로운 게임을 접할 때에도 기억의 영향력이 작용할 것 같아요. 특히 처음 플레이 하는 게임들에 대한 어떤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드는 비용(감각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올리는데 드는 비용)이 생각보다 클 수 있는데.. 과거 유사한 게임 경험을 해 보았고 그 기억이 새로운 게임에도 적용된다면, 익숙해 지기 위한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순히 게임 플레이에 대한 방식이나 시스템 뿐만 아니라 BM(강화, 배틀패스 등)도 해당하고, 물리적인 버튼들(ASDW, R 재장전 등) 역시도 그에 해당되고요 ㅎㅎ
저는 다음에도 재미있는 게임 속 심리학, 행동경제학 사례를 가지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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