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간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다자이 오사무(1909~1948)의 『인간 실격(1948)』입니다. 오래 전에 일본에서 쓰였으며,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결코 유쾌하고 밝은 내용의 작품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21세기에 바다 건너 대한민국에서 청년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의 유명한 도입부입니다. 주인공인 '요조'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소설 곳곳에서 요조의 잘생긴 외모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부를 잘해서' 온 학교의 존경을 받을 뻔했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꽤나 명석한 학생인 듯 합니다. 이처럼 겉으로 바라본 요조는 모든 것을 갖춘 화려한 '엄친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조는 화려함 속에 누구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감춰놓고 있습니다. 인간 관계에 대해 항상 불안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온갖 행운을 타고난 요조의 고민 따위는 당장에 배고픔을 느끼거나, 현실의 고통에 짓눌리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시덥잖은 배부른 걱정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조는 타인에게 철저히 자신의 진심을 감추는데 누구보다 익숙합니다.
요조는 지역 유지인 아버지의 연설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뒤돌아서면 마구 폄하하는 아버지의 지인들의 모습을 목격합니다. 평소에는 본성을 숨기고 있다가 노여움이 드러날 때 나타나는 인간의 표정에서 요조는 큰 공포를 느낍니다. 이처럼 요조는 인간 사회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찬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을 품습니다. 남들은 별로 할 것 같지 않은 이러한 고민을 하는 자신의 속내마저 남들에게 '별난' 사람으로 비춰질까봐 두려움을 느낍니다. 결국 요조는 타인과 진심을 나누고 관계를 쌓아가는 데 더욱더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요조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관계
요조는 자신의 꿈인 화가가 되기 위해 도쿄로 상경합니다. 도쿄에서 '호리키 마사오'라는 친구와 어울리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요조는 작중 호리키와 유일하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지만, 결코 호리키를 '교우'로 여기지 않습니다. 실제로 요조와 호리키는 같이 어울리고 놀 때만 가깝게 지낼 뿐, 서로 감정적인 교류가 드러나는 장면은 없습니다. 요조의 유쾌하지만 건조한 인간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요조는 호리키에게 술, 담배, 창녀, 좌익 사상을 배웁니다. 이 네 가지는 요조가 숨막히는 '익살꾼'의 가면을 잠시나마 벗을 수 있는 쉼터들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요조는 좌익 사상 자체에 흥미가 있다기 보다는, 좌익 사상이 음지에서 불법으로 전파되는 사상이기 때문에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요조는 양지에서 꽉 짜여진 질서 속에서 큰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요조에게 음지에서의 '익살'은 가면이 아닌 진실된 익살이었습니다. 요조는 단숨에 좌익 단체 사이에서 인기 인물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함께하는 직장 상사나 학교 선배와의 술자리보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더 홀가분한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꼭 누군가와 깊고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때 사람은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고는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배경에 누구보다 쾌활한 익살꾼이지만 요조가 가진 본연의 고독감과 소외감을 완벽히 감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조의 이런한 면들이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하여 요조는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작 중 요조와 관련이 있는 많은 여성들 중 요조가 실제로 사랑을 느낀 여성은 두 명 입니다. 첫사랑인 쓰네코는 사기범으로 수감 중인 남편이 있는 유부녀입니다. 호색한인 호리키마저 '궁상맞은 분위기의 여성'으로 묘사했을 정도로 왠지모를 어두운 분위기의 여성입니다. 요조가 이 여성에게 사랑을 느낀 이유는 두 사람이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어둡고 음침한 본연의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주어도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요조는 쓰네코와 함께 자살을 기도하지만 불행히도 쓰네코만 죽게되고 요조는 불안한 생을 이어가게 됩니다.
영화 『인간 실격』, 제목과는 다르게 다자이 오사무의 전기영화. 소설속 쓰네코의 모티브가 된 여성인듯 합니다.
요조가 사랑한 두 번째 여성은 마지막 사랑인 요시코입니다. 첫사랑인 쓰네코는 요조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었던 것과는 달리, 요시코는 요조의 정 반대 성향의 사람입니다. 요조는 요시코를 '신뢰의 천재'라고 말할 정도로 남을 절대 믿지 못하는 요조에 비해 요시코는 일단 다른 사람을 믿는 순진무구한 여성이었습니다. 요조는 요시코를 만나며 그 동안의 방황을 마치고 결혼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요시코의 타인에 대한 '믿음'은 결국 비극으로 귀결됩니다. 집에 자주 드나들어 경계심이 없던 상인에 의해 요시코가 강간당하는 현장을 요조가 목격합니다. 요조는 배우자가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보다, 평소 타인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해봤기 때문에 강간 현장을 보고도 아무것도 못한 본인에 대한 혐오, 그리고 상인에게 일말의 경계심도 없이 무구한 신뢰심을 가진 여성의 결말이 결국 강간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혐오가 더욱 강력해집니다. 그렇게 요조는 홀로 두 번째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합니다. 이후 알콜, 마약 중독에 빠지며 결국 가족에 의해 정신 병원 생활을 하게된 요조는 자신의 인생을 '인간 실격'으로 규정합니다. 앞으로 자신의 삶엔 더 이상의 행복도, 불행도 없을 것이며 그저 지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백합니다. 겨우 스물일곱살이지만 이미 요조의 외모는 백발의 마흔살 이상으로 변했다고 자조하며 요조의 수기는 끝이 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 지나치게 예민하고 음산한 요조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한 제아무리 좌절의 순간이어도 강인하게 이겨나가지 못한 요조의 나약함에 큰 동정심이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캐릭터인데, 다자이의 자살을 두고 미시마 유키오라는 작가는 '냉수마찰이나 기계체조만 꾸준히 했어도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디스를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요조는 최근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들의 감성과 분명 닮은 면이 있으며 그러한 점이 『인간 실격』이 꾸준히 사랑을 받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MZ세대는 ‘혼술’, ‘혼밥’이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일상 생활이 되었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친해질 수 회식이나 대학 인맥을 만들 수 있는 OT, MT 등이 코로나로 인해 사장되는 것에 대해 딱히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꽉 짜여진 질서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 보다는 자발적인 개인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그 어느 세대보다 '공정함'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기성 세대와 대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MBTI 놀이가 유행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캐릭터화 하는 것을 즐기며 이것으로 인해 지나친 자아도취 혹은 반대로 자기혐오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인간 실격』은 청년들에게 음산하고 어두워 우울한 감정을 주기도 하지만, 나만 유독 예민하고 세상과 어긋나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깊은 공감대를 주는 양면성을 갖춘 신기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 분량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이 혼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한 번 즈음은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