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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화위복 Jun 22. 2022

[NBA] 이 시대가 원하는 리더

한국시각 6월 17일,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보스턴 셀틱스의 NBA 2021/2022 시즌 파이널 6차전에서 경기 종료 약 10여초를 남기고 우승을 직감한 골든 스테이트의 에이스 스테픈 커리가 경기장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커리어 통산 네 번이나 차지한 우승이었지만, 이번 우승 만큼은 커리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첫 번째 우승은 젊은 혈기로 무장한 센세이셔널한 깜짝 우승이었습니다. 케빈 듀란트라는 최고의 팀메이트와 함께한 두 번째, 세 번째 우승은 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그야말로 '하고 싶은 거 다 해본' 압도적인 우승 이었습니다. 하지만 케빈 듀란트가 떠나고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겹쳐 팀이 암흑기를 겪는 동안 커리의 시대에 골든 스테이트에겐 더 이상 우승은 없을 것이라는 조롱과 혹평 속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리더라는 팀 내 위치가 주는 중압감과 농구 내적으로는 팀의 공격력에서 커리가 짊어진 짐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즌이었기 때문에 이번 우승이 커리에게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우승을 직감한 순간 눈물을 흘리는 스테픈 커리(출처 : SPOTV 중계화면 캡쳐)





파이널 6차전이 끝난 후, 골든 스테이트의 스티브 커 감독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Stephen Curry reminds me of Tim Duncan. From a humanity standpoint, from a talent standpoint, humility, confidence, it's a wonderful combination that makes everyone want to win for him. Without him, none of this happens. To me, this is his crowning achievement."


"커리는 저에게 팀 던컨을 생각나게 해요. 인간적인 면, 재능적인 면, 겸손함, 자신감 등에서요. 이것은 모든 사람이 커리를 위해 이기고 싶게 만드는 훌륭한 조합입니다. 커리가 없으면 이번 우승은 이뤄질 수 없어요. 제가 봤을 때 이번 우승은 커리의 최고의 업적입니다"


- 2021/2022 파이널 우승 직후 스티브 커 감독의 인터뷰




'모든 사람이 커리를 위해 이기고 싶게 만든다' 라는 말이 무엇보다 인상적입니다. 골든 스테이트가 우승을 하는데 커리의 공헌이 지배적이었지만, 시즌 내내 골든 스테이트는 하나의 팀으로 승리해 왔습니다. 커리의 영혼의 파트너인 클레이 탐슨과 드레이먼드 그린은 중간에 부침이 있었어도 시즌 전체로 봤을 때는 여전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케본 루니의 단단한 스크린과 보드 장악력, 침착한 골밑 마무리는 끌려가던 경기들에서 수 차례 기세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했습니다. 축복받은 신체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마인드로 커리어 내내 비판을 받아온 앤드류 위긴스는 드디어 껍질을 깨고 자신의 신체를 120% 활용할 줄 아는 터프가이이자 완벽한 가자미로 변신하였습니다. 커리가 부진했던 파이널 5차전은 실질적으로 위긴스가 캐리한 경기입니다.




벤치 멤버들의 공헌도 작지 않았습니다. 올 시즌 전만 해도 낮은 야투율에도 무리한 슛을 남발하여, 최대로 성장해봤자 전형적인 '하위팀 에이스' 정도일 것으로 분류되었던 조던 풀은 완벽하게 각성하여 커리, 탐슨과 함께 '스플래쉬 트리오'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부상 이력으로 다른 팀들의 관심을 잃었던 오토 포터 주니어는 스티브 커 감독의 세심한 관리를 바탕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리바운드와 외곽 화력 지원의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더 좋은 계약을 마다하고 오로지 '골든 스테이트에서 뛰고 싶어서' 팀에 합류한 네마냐 비엘리차는 벤치 구간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했으며 특히 파이널에서 상대 에이스 테이텀과의 미스 매치를 견뎌내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비엘리차는 한 때 로테이션에서 제외된 적이 있었지만, 다시 합류하였을 때 스티브 커 감독은 '비엘리차를 기용하지 않은 것은 나의 실수'라고 인정하였습니다. NBA에서 자리잡지 못해 은퇴를 고려했던 개리 페이튼 2세는 팀의 마지막 선수로 합류하여 우승팀의 주요 로테이션 멤버가 된다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한 해를 보냈습니다. 선수 생활 황혼기를 친정팀에서 보내기 위해 복귀한 안드레 이궈달라는 잦은 부상과 기량 저하로 코트 위에서 공헌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벤치에서 젊은 선수들을 코칭하는 멘토의 역할을 자처합니다. 파이널 3차전에서 이궈달라의 조언을 들은 후 위긴스의 각성은 두고두고 회자가 될 것입니다.




파이널 3차전에서 화제가 되었던 위긴스에게 조언하는 이궈달라(출처 : NBA 중계화면 캡쳐)






이처럼 각자 팀에 합류하게 된 계기도, 사연도 다른 선수들이 우승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한 팀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에는 커리의 리더쉽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이 스티브 커가 커리가 없었으면 이번 우승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스티브 커가 언급한 커리의 리더쉽 항목 중 '겸손함'은 그 동안 농구 팬들에겐 익히 알려져온 커리의 리더쉽의 핵심입니다.




커리는 팀 내에서 가장 많은 훈련을 소화하지만 팀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경기가 풀리지 않거나 팀원이 실수 했을때도 좀처럼 짜증내지 않으며, 항상 격려와 조언을 해줍니다. 이번 시즌 드레이먼드 그린, 클레이 탐슨, 조던 풀 등 팀원들의 부진을 묻는 질문에 항상 '언젠가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그의 활약 없이 우승할 수 없다'라고 답했었습니다. 경기 중 좋은 팀플레이에 의해 득점이 나왔을 경우, 커리는 팀 내 그 누구보다 환호하며 경기장의 분위기를 이끕니다. 과거 드마커스 커즌스는 골든 스테이트에서 뛰던 시절 커리에게 '너는 왜 리그 최고의 선수이면서도 왜 짜증내지 않아?' 라고 묻자 커리는 웃으면서 '나는 그저 한 명의 선수일 뿐이야'라고 대답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리그에서 최고 연봉을 수령하는,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의 입에서 나온 발언으로는 믿기 힘듭니다.




탐슨이 돌아올 경우 그가 과거의 '전설적인' 활약을 보여줄 것이라 말한 커리(출처 : The42.ie)




흔히 수비는 절대적으로 '노력'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많은 슈퍼스타들이 커리어 후반부로 갈수록 수비를 등한시 하는 경우가 많았고, NBA에서는 어느새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리그 13년차에 접어들은 올 시즌에 그 어느 시즌보다 향상된 수비를 보여준 커리는 그 비결을 '항상 수비에 신경쓰고 노력해왔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리그 13년차에 이미 우승 3회를 기록한 선수의 수비에서의 헌신은 그야말로 다른 동료들로 하여금 '저 선수를 위해 우승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하기 충분합니다.




이번 플레이오프 1라운드 덴버와의 시리즈에서 부상에서 갓 복귀한 커리는 컨디션 조절차 벤치 출전을 결정합니다. NBA에서 선수들에게 선발 출장이 가지는 의미는 팬들의 생각보다 큽니다. 한 번 벤치 선수로 이미지가 박히면, 좀처럼 선발로 복귀가 힘들다는 통념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기량이 떨어진 커리어의 황혼기에도 슈퍼스타들은 항상 선발 출전을 고수하며 감독들 또한 그렇게 배려를 해줍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출전 시간의 조절은 있을 수 있지만 선발 출전이라는 타이틀은 보전해 줍니다. 카멜로 앤써니는 과거 벤치 출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코웃음을 쳣었습니다. 러셀 웨스트브룩은 올 시즌 부진한 활약으로 벤치 전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노 코멘트로 일관 했습니다. 심지어 슈퍼스타급 선수가 아닌 샬럿의 켈리 우브레 주니어는 골든 스테이트 시절 스티브 커 감독의 벤치 전향 제의를 거절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스테픈 커리는 벤치 출전하여 변함없는 득점력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어냅니다. NBA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자 팀 내 최고의 선수도 벤치 출전을 쿨하게 받아들인 마당에 과연 앞으로 어떠한 선수가 감독의 지시를 거절할 수 있을까요?




파이널 6차전에서 경기 종료 3분여를 남기로 커리는 점수를 15점차로 벌리는 삼점 슛을 성공 시킨 뒤 특유의 'Night, Night' 세레모니를 합니다. 현 NBA 트렌드상 3분 동안 15점차는 충분히 따라잡힐 수 있는 스코어이기에 승리를 뜻하는 'Night, Night(집에가서 잠이나 자라)' 세레모니가 다소 이른 감이 있었습니다. 당시 드레이먼드 그린은 커리에게 '스테프, 박스 아웃해야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드레이먼드 그린은 커리어 내내 스테픈 커리에게 픽앤 롤 플레이 때나 수비시에 잔소리를 해왔습니다. 막강한 슈퍼스타들의 리그인 현 NBA에서 팀 내 에이스가 한창 자신의 '뽕'에 취해 있을 때도 옳은 잔소리를 건넬 수 있는 문화.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커리만이 보여주는 리더쉽의 한 장면입니다.




항상 그린의 잔소리도 쿨하게 받아들이는 커리(출처 : Sports Illustrated)




겸손한 태도를 바탕으로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팀원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커리의 리더쉽은 커리가 가진 여러가지 능력 중 가장 과소평가된 능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골든 스테이트의 우승은 팀에 커리의 리더쉽이 계속 존재하는 이상, 좋은 선수들의 지속적인 합류와 선수들이 한 팀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팀 승리에 기여하는 팀 문화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임을 직감하게 해주는 우승이었습니다. 이 선순환이 지속되는 이상 골든 스테이트는 커리의 시대 만큼은 계속해서 쉽게 지지않는 강팀으로 자리할 것입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진정한 이 시대의 리더로서 커리가 앞으로도 어떠한 역사적인 순간들을 만들어 낼 지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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