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r's block
길을 잃은 나침반은 더 이상 북쪽을 가리키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방향을 찾으려 애쓰지만, 이미 궤도에서 벗어난 채 끝없는 방황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경계, 그 안에는 두려움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잠긴 문 뒤에서 우리는 가림막을 걷어내지 못한 채, 그 두려움을 모른 척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새로운 땅을 갈망하지만, 그 땅은 항상 어둠 속에 잠겨 있다. 외면할 수 없는 고요 속에서 나만을 위한 왕국을 지어놓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오래전에 스스로 닫아버린 문이 모든 길을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생각들은 잡초처럼 자라나며, 그 뿌리는 깊숙이 파고들어 꿈을 악몽으로 변질시킨다. 한밤중 고독에게 속삭이면 방 안은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채워진다. 그 연기는 우리 폐를 가득 메우고, 우리는 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숨을 쉰다. 어둠에 가라앉지 않으려 작은 배를 띄워보지만, 그 배는 언제나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다.
마음속에 쌓인 불안은 넘쳐흐르고, 그 끝엔 늘 불쾌한 잔향만 남는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시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리지만, 그 바람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멈춘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게 그 흐름 속에 갇혀버린다.
TV, 뉴스, 매거진, 전광판, 현수막. 이 세상에 만연한 거짓말들.
우리는 그 속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결국 그 허상에 묶여버린다.
결국 우리는 그 가려움에 지쳐 숨을 멈추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쉼표 하나 찍을 수 없다.
살아가기 위해 이 작은 점 하나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암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눈을 감지 않고, 이 세상의 냉혹한 진실을 차갑게 바라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