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작품의 공통점은 탄탄한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블 유니버스와 해리포터 시리즈가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특이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평행 세계’ 세계관을 들 수 있는데, 작년 초에 방영했던 더킹과 엘리스 정도가 그러하다. 재작년에 방영된 아스달 연대기도 상당히 독특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위에서 짧게 언급했던 마블, 해리포터 세계관 못지않게 독특하고도 방대한 세계관으로 꽤나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러한 세계관은 크게 사랑받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세계관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더 킹의 경우 평행 세계라는 소재의 어려움 때문인지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지 않게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채 막을 내렸고, 아스달 연대기의 경우에도 난해하다는 혹평을 여럿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무척이나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바로 인기의 초절정을 달리고 있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이다. 이 작품에 무슨 세계관이 있냐,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듯하다. 확실히 위에서 언급한 드라마들과는 달리 판타지스러운 소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한 회만 봐도, 무슨 이런 세상이 다 있냐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곤 한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밥 먹기보다 쉽고, 그렇게 죽은 사람은 태연스럽게 다음 화에 살아서 등장하곤 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성공, 혹은 복수를 위한 달콤한 거짓말 정도로 치환되고 윤리의식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다. 판타지도 이런 판타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세계에 전 국민이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그 비결에는 막장 같으면서도 손에 땀을 쥐고 보게 하는 쫄깃한 스토리라인이 가장 큰 역할을 하겠지만, 세계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스러운 펜하 세계관은 어떻게 유교국 안방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그 비결은 ‘공감’에 있다. 세상 놀라운 세계관을 구축하면서도, 여전히 시청자로부터 공감의 요소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요소가 바로 ‘권선징악’이다. 빌런으로 등장하는 주단태와 천서진, 그리고 그들의 악행에 맞서는 오윤희 (물론 드라마를 보면 알겠지만, 악에 맞서는 오윤희를 ‘선’으로 볼 수는 없을 듯하다)의 복수 스토리를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악행에 분노하고 절대악의 몰락에 쾌감을 느낀다. 이를 보며 많은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며, 악이 무너지는 ‘사이다’의 순간을 위해 드라마에 더욱 몰두한다. 이처럼 펜트하우스에서 절대악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상상치 못할 악행을 저지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악당’으로 묘사되며 복수를 당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반면, 펜트하우스 못지않은 빨간 맛 드라마로 유명해진 드라마 ‘결혼 작사 이혼 작곡’에서는 상당히 다른 전개가 펼쳐진다. 불륜을 하는 세 명의 남자 주인공들은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으며, 심지어 그들의 사랑은 불륜이 아닌 설렘 가득한 ‘로맨스’로 묘사된다. 부부의 세계, 펜트하우스 등 불륜 소재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된 서사를 배제한 채, 그들의 불륜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오묘하고 비밀스러운 각도에서 의뭉스러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불륜 장면이 그려지는 것과 매우 대조된다. 비슷한 소재, 비슷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결혼 작사 이혼 작곡’이 그만한 인기를 얻지 못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용인되는 드라마 세상이라고 하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세계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나, 그 결말로서 선은 승리하고 악은 패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륜을 행한 이들의 패망을 기대하는 시청자의 바람과 달리, 그들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선과 악의 명확한 구도를 만들고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펜트하우스는 전형적이라고 할지라도, 매우 높은 확률로 시청자를 공략하는 데 성공한다.
배신이 만연한 세상. 신뢰,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펜하 세계관에서 또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바로 ‘모성애’와 ‘부성애’이다. 딸 민설아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심수련은 복수를 계획하고, 오윤희는 딸 배로나를 청아 예고에 입학시키기 위해 민설아를 죽이기까지 한다. 강마리는 제니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자 눈을 까뒤집고는 펜트하우스를 뒤집어 놓는다 천서진은 하은별이 살인죄로 잡혀갈 위기에 처하자 주단태와의 원하지 않는 결혼까지도 강행한다. 사랑, 우정, 모든 관계가 깨지는 펜트하우스에서도 모성애는 유효한 것이다. 이러한 모성애는 막장 전개와 등장인물의 예상할 수 없는 행동에 설명력을 부여해주며, 시청자의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나치게 판타지스러운 이 작품에서 여전히 ‘인간다운’ 면모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펜하 세계관이 이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이다. 펜트하우스 꼭대기 층에 사는 그들의 이야기도,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