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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며 중요한 건 무엇일까?

자연 / 반려종의 시선 2장. 아픔과 돌봄에 대하여

   33살이 된 1월 1일 그에게 ‘결혼을 한다면 언젠가 하겠지만, 지금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혼기가 가득 찬 남녀 둘의 만남이 2년이 넘어가면, 주변 어른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결혼이야기를 꺼낸다. 비혼주의도 아니었는데 결혼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통장에 돈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직장만 4번 옮겼다.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울고 불고 난리 칠 때마다, 그는 묵묵히 옆을 지켜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은근히 결혼 이야기를 꺼내던 순간, 1년만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물었다. 헤어질 용기도 다음 단계로 갈 용기도 없었다.


   친구를 만날 때마다 자꾸 주제가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흘러간 걸 보면, 타인의 시선에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대화의 끝에 항상 같은 말이 나왔다.


   “지금이 딱 좋아. 처음으로 혼자 살 수 있게 되었고, 방황도 이제야 조금 잠잠해졌어. 나 지금 이대로 딱 좋은데 결혼하면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도대체 뭐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과 반려견 마일로가 있다. 일적으로는 회사를 다니지 않지만, 프리랜서로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관계적으로는 수많은 갈등을 겪으며 찾은 접점 덕분에 가족과도 친구와도 좋았다. 더 나아가 연인과의 관계도 지금이 딱 좋았다. 머리를 수백 번 굴리며 결혼에 대한 장단점을 아무리 적어보아도, 단점이 항상 3~4배 더 많았다.


   결혼이라는 이슈를 뒤로 미루고 집에 돌아온 그날, 새해 달력 위에 크게 적었다. 내 삶에 불필요한 것 정리하자. 나를 무겁고 힘겹게 하는 것들로부터 가벼워지고 싶었다. 인생이 평안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25살 대학교 졸업 후 8년이라는 기간을 방황했다. 공부를 하고 있어도, 일을 하고 있어도, 놀고 있어도, 누구와 함께 있어도,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과 불안감이 몰려왔었다. 나 자신을 데리고 사는 게 너무 버겁고 무거웠다.


   이 집을 거쳐간 룸메이트들이 놓고 간 옷, 그릇, 가구, 운동기구 등 수많은 짐을 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오래된 책장을 열고 보물처럼 정리해 둔 자소서와 레퍼런스과 같은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했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지만, 혼자 사는 집이 아니었기에 할 수 없던 일을 시작했다. 보기 싫었지만 익숙해져서 포기했던 벽지를 뜯고 페인트 칠을 하고, 갖고 싶었던 커튼과 소파를 사고 집을 꾸민 뒤 내 공간에 친구들을 편안하게 초대해서 함께 집밥을 해서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타인의 속도에 뒤쳐질까 두려워하고, 부족한 걸 들킬까 겁먹고, 나와 맞지 않은 곳에서 어울리고자 애쓰면서도,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었다. 이런 마음 때문에 포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놓아줘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차올랐다.


   현실은 차오른 마음과 별개로 안정적인 수입도, 그럴듯한 커리어도 없었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너털웃음이 나왔다. 이런 복잡한 내 속도 모르고 그저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를 나에게 들이미는 마일로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하나 있구만?’ 부끄럽지만 내가 선택한 뒤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은 건 마일로를 입양하기로 한 것 하나였다.


   “마일로, 그래도 평온하다는 게 이런 거냐? 나쁘지 않네~ 누나가 그동안 너 잘 못 챙겼었잖아. 이제 제대로 잘 챙겨줄게 우리 둘이 재미있게 지내보자!”


   평온한 하루라는 작은 씨앗이 마음에 자리를 잡아 싹을 틔우나 했는데, 그 시기는 얼마가지 않았다. 갑자기 마일로가 왼쪽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침대를 뛰어내리다가 삔 거라고 생각했는데, 엑스레이를 찍어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조금 더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하면 알겠지 라며, 큰 걱정 없이 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정밀검사 전이니 100% 확신할 수 없지만, 전립선암이 전이되어 왼쪽 골반뼈가 녹아 다리를 절뚝 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놀라면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는 걸 그날 처음 경험했다.


   놀란 마음을 다독일 시간도 없이, 치료가능 여부를 알고 싶어서 전문암병원을 찾았다. “치료를 해도 3개월, 그런데 하지 않으면 1개월도 버티기 힘든 상태네요. 전립선암이 워낙 빨리 퍼지고 예후도 안 좋은 병이라서요. 근데 마일로는 전이가 이미 3곳이나 된 상태네요. 항암하고 1년 이상 살 가망이 적으면 치료를 추천 안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눈물을 닦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치료비는 얼마 정도 나올까요?” 그 자리에서 바로 예상치료비를 계산해 보고 핸드폰을 켜서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회사를 다니며 온갖 스트레스에 급성장염과 위경련으로 응급실과 약을 달고 다녔고, 친구들에게 짠순이라고 한소리 들으며 아등바등 모은 돈을 써야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쉽게 결정해 버렸다.


   병원에 신나게 돈을 쓰는 사람의 마음과 다르게 마일로에게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아주 빠르게 늘어났다. 처음에는 왼쪽 뒷다리만 절뚝거렸는데, 아예 다리를 펴지 못하더니, 반대편 다리까지. 결국 양다리를 잃었다. 혼자서 대소변을 가릴 수 없어서 기저귀를 차야 했으며, 나중에는 대소변을 빼주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압박배뇨를 해줘야 했다. 혼자 앉아 있을 수도, 걸을 수도, 대소변을 눌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먹은 음식을 약 없이는 소화시키는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없는 게 많아지는 마일로 덕분에 나는 줄 수 있는 게 참 많아졌다. 밥과 간식, 물을 직접 입에 손수 먹여주고, 약도 주고, 압박배뇨 해주고, 기저귀도 채우고 갈고, 욕창 걸리지 않게 자세를 변경해 주고, 안고 다녀주고, 유모차로 산책을 시켜주고 병원 가서 주사를 놓아주었다. 질리지도 않고 매번 원하던 산책과 쓰다듬어주기를 거부할 때까지 해주었다.


   나는 더 이상 마일로에게 ‘집에 오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것’은 물론이요, ‘배변패드에 대소변을 잘 맞춰 누는 것, 빵야 하면 배를 까는 것, 공을 던지면 가지고 오는 것, 앉아 하며 간식을 기다려 달라는 것, 함께 차를 타고 여행 가는 것’도 바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마일로가 내 얼굴을 혓바닥으로 핥아주면, 100만 원 위약금을 내고 여행도 취소한 것도, 비워져 가는 통장잔고도 아무것도 아닌 걸로 퉁 쳐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는 나날이었다. 가장 큰 두려움은 집을 비운 사이에 마일로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리는 것으로, 가장 큰 욕심은 마일로가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마일로 돌보기로 시작해서 마일로 돌보기로 끝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가던 시기. 세상이 말하는 현실적으로 잘살아보겠다는 것에 눈이 멀어서, 더 중요한 것을 너무 많이 놓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다른 형태로 변하기 시작한 날. 그날 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랑 결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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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삶을 잘 살아보겠다고 치기 어리고 헛똑똑하게 지내던 그 시절에

인사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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