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유스로 성장하기 : 아산나눔재단 아산 프런티어 유스
지난 이야기..
꿈과 낭만을 가득 품고 시작했던 마을공동체 활동은 상처만 남은 채 끝이 났고, 더 이상 이상적인 일 같은 건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철학의 위대한 개념에 위로받던 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정치 철학 세미나에서 쪽글을 하나 썼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세상에 화두를 던지는 일이라고, 결국 정치라는 걸 깨닫는 글이었다. 그 일을 어떻게 직업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떠오른 것이 기자였고,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을 만났다.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 교육을 들으며 이 일도 그렇게 이상적인 일은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렇게 다시 방황이 시작되었다.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에서 만난 친구들과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몇 개월 동안 버닝 했지만 별다른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무난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4학년이 주는 부담감에 여기저기 인턴을 넣기 시작했고 계속 떨어졌다. 포털회사의 코딩 테스트는 너무 어려웠고 나는 개발자가 될 수 없을 거라는 무서움만 자꾸 커졌다.
그러다 또 우연히, 아산 프런티어 유스 활동을 알게 되었다. 블로그에서 모집 공고 글을 보는 순간 마음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고 그런 나를 애써 부정했다. 2년 전 마을 공동체 활동에서 겪은 절망을 자발적으로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설명회에 갔고, 지원서를 썼고, 합격했다.
만약 그때 내가 나의 과거 경험에 갇혀 새로운 희망을 품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꾸역꾸역 하면서 점점 생기를 잃어 갔을 것이다. 모든 걸 잃고 빛을 잃었던 그때처럼 점점 시들어 갔을지도 모른다.
아산 프런티어 유스는 크게 세 파트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다. 팀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부딪히는 소셜 섹터 교육,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 소셜 섹터 인턴십, 해외 소셜 섹터를 탐방하고 인사이트를 얻는 글로벌 스터디.
처음으로 시작된 소셜 섹터 교육은 흥미롭고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마을 공동체 활동 경험이 있으니 꽤 아는 게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CSR도 국제개발협력도 다 처음 듣는 생소한 용어였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단원 동기들이 나에게 해주는 칭찬이었다. 스스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것은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비난했기 때문이었고, 오랫동안 그 말이 마음에 박혀 있었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아주 낮은 상태였다. 하지만 단원 동기들은 나의 사소한 습관부터 칭찬해 주었다. 기억력이 안 좋아서 모든 것을 다 기록하고, 정리해서 남겨두는 습관을 '기록왕 사과'라며 인정해주었다. 성격이 급하고 말이 빠른 나의 단점을 추진력이 강하고 아이디어 전개가 빨라 팀 아이디어 디벨롭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땐, '이 사람들이 나한테 왜 이러지' 싶었지만 점점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동기들의 칭찬을 먹고, 나의 장점을 더 발휘했고 그것은 성과로 그대로 이어져 나타났다. 1등을 했으니까!
아름다운 가게에서 주로 했던 업무는 자원 순환의 중요성을 게이미피케이션 방식의 빅게임을 통해 교육하는 'B의 일기장' 프로젝트였다. 지금 내가 게임회사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건 이때의 경험이 아주 크게 작용했다. 직접 게임을 만들면서, 게임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한 땀 한 땀 퀘스트를 만들고, 소품을 구입하면서, 모든 것이 나의 손을 탄 하나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완수하는 경험을 통해 책임감도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게에서 나를 5개월의 임시 인턴이 아니라 한 명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주고 인정해주신 게 아주 컸다. 24살 패기만 넘치는 인턴이 하는 말을 경청해주시고, 일단 해보라고 독려해주신 팀장님과 그렇게 일을 하는 내가 힘들고 벅찰까 세심하게 챙겨주신 간사님들이 계셔서 소진되지 않으며 조직 안에서 보호받으며 일 할 수 있었다.
아산 프런티어 유스의 끝판왕은 역시 사회 혁신 프로젝트(Society Innovation Project, SIP)였다. 함께 해결해볼 사회 문제를 선정하고, 타깃을 정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다섯 명의 또래 팀원들과 해내는 경험은 일 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인턴십으로 조직에서 일하는 법을 배웠다면, SIP는 팀으로 일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라고 할까.
각자 다른 환경에 놓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고 함께 가는 방향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며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 논의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무슨 상황을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지, 팀이 방향을 잃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팀에서 스스로 깨우치는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 소중했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방식은 모두 아프유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 간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것,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것, 내 일감을 내가 정리하고 계획해서 제안하고 진행하는 것. 일하는 기본 태도를 탄탄히 다질 수 있어 감사했다. 게다가, 이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미래를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것을 분명 잘 해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꾸는 꿈이 무엇이든, 언젠간,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마지막 학기를 마치기 위해 돌아간 학교에서 다시 알 수 없는 무력감과 우울에 시달리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