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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E J Mar 11. 2021

막장 시어머니,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녀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의 시작

나의 시어머니는 나에게 끊임없는 연구 과제를 주신다.


이번에 내가 미국에 오자마자 가방을 풀기도 전, 시어머니는 나에게 이제 본인이 귀가 어두워져서 잘 안 들리니 크게 말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마음이 많이 짠했다.​


내가 미국 오기 직전에 나의 친정아버지가 보청기를 맞춘 게 생각나.. 시어머님께도 보청기를 권해드렸다.

시어머니는 본인도 보청기를 생각 중이라며.. 올 상반기에는 꼭 해야겠다고 하셨다.​


..... 그런데 말이다.....

우리 시어머니는 나와 내 신랑이 정말 속닥속닥 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으시고는...

방에서 나오셔서 대화에 참여하시기도 하고, 훈수를 두시기도 하신다.


어딜 봐서 보청기가 필요하신 건지...

진짜 보청기가 진작에 필요했는데 모르고 참고 살다가 상황이 더 안 좋아진 울 아빠 뺨 때리는 소리 하는 나의 셤니

(*절대 울 셤니라고 칭하지 않겠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그냥 나의 시어머니, 신랑 엄마라고 칭하리...)​


예를 들어,

내가 신랑에게 "당신 친구 헨리 씨는 아직 거기서 일해?"라고 질문하면, 갑자기 시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셔서 대신 대답하신다.

"어떤 헨리 말하는 거니? 어디 사는 애 말하는 거니 나에게 물어봐 다 알아 나"

또 다른 예시는,

내가 신랑에게 2009년에 개봉한 인도영화 '세 얼간이 (3 idiots)'를 추천할 때, 시어머니가 방에서 듣고 나와 무슨 영화 제목이 그러냐 영화는 타이틀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부터 시작해서 영화 시장계의 트렌트를 10분간 이야기하셨다.

시어머니 앞에서 감정을 다 숨기고, 말 한마디 걸음걸이 한 걸음 한 걸음도 신중하게 신경 써야 했다는 우리 엄마가 떠올라 오늘도 마음이 무겁다.


위의 연구 사항과 더불어 내가 가장 고민 중인 또 다른 연구과제는 "시어머니의 식사"이다.​


나의 시어머니는 개들의 밥은 제시간에 딱딱 챙기시면서 본인은 식사를 하지 않으신다.

어머님은 아침식사가 속에 부담스러우시다며 공복에 설탕 큰 수저로 2스푼 탄, 홈메이드 라떼를 즐기신다.


... 내 생각엔 그게 더 위에 안 좋을 것 같은데... 그건 뭐 개인의 건강 상태가 다 다르니 이해하고 넘어가겠다.

어느 날은 시어머니께 코스트코에서 구매한 크루아상을 오븐에 바삭하게 데워드리니 아침식사를 안 하신다고 하셔 놓고 두 개나 드셨다.


또 어느 날은 내가 아침 식사 대용으로 사과를 먹는데... 사과를 좀 드리니 그걸 정말 맛있게 드셨다.

신랑 말에 따르면, 어머님이 지난 30년간 아침 식사를 안 하셨다는데.. 또 음식이 눈 앞에 있으면 정말 잘 드신단다

그럼.. 나보고 아침식사도 차려라 이건가...? 괜히 눈치가 보인다.

어머님은 대체로 점심 식사도 잘 안 하신다. 본인은 남들과는 다르게 소량만 식사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내가 점심을 시간 맞춰 차리면 드시고, 아니면 비스킷 한 봉지 올킬 + 빅 수저 설탕 2스푼 탄 커피를 드시고는 점심 식사를 하셨단다.

내가 늘 너무 놀라 비스킷은 간식이 아니냐고 물어보면.. 울 셤니는 너무 신나서 30분씩 본인이 생각하는 올바른 식사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나의 시어머니의 식성을 맞추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늘은 꼭 다진 마늘만 써야 하고, 양파는 아무거나 잘 드시는데 절대 크게 썰면 안 되고, 검정 후추에 알레르기가 "가끔씩" 있으시며, 본인은 식중독에 걸린 경험이 두 차례 있어서.. 그 뒤로 식재료의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본인은 유통기간 1년 반 지난 소스들을 매일 드시고, 한 달 전에 만들어둔 멕시칸 음식을 냉동했다가 해동해서 드시고......, 해산물을 좋아하시는데 한 가지 요리에 너무 많은 해산물은 금지, 볶음밥에 파 필수, 쌀을 너무 좋아하셔서 맨 쌀밥만 삼시 세끼 일주일 먹기가 가능하지만 - 한국인들이 먹는 쫀득한 쌀 금지.. 재스민 쌀 = 그녀가 받아들이는 유일한 쌀....

지금까지 난 이렇게 파악했는데.. 아직도 시어머니와 서로 식단에 대해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

시어머니는 내가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까지 저녁식사에 대한 언급을 1도 안 하신다. 마치 낮에 먹은 게 너무 많아서 저녁은 안 드실 것처럼.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내가 시차 적응을 못해 이상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를 반복할 때..

시어머니는 저녁을 9시에 드셨다. 저녁 9시^^.. 내가 자다 7시-8시에 일어나서 밥해야 드시기에^^..^^..


​지금은 내가 시차 적응도 끝냈고.. 잘 적응한 것 같으니 원래 스케줄로 돌아가셨다.


오후 5시 개들의 신성한 밥시간이 끝나면, 5시 20분-30분 배변활동 시간.

이 두 가지 활동이 끝나고 개들이 진정이 좀 되는 시간인 5시 40분경부터, 나는 사람의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어머님께 메뉴에 대한 철저한 허락을 받아야 하며... 요리하는 과정 과정 중간중간 약간 질문을 해야 한다.

... 어머님이 식당에서 매니저로 오래 계셨다고 그러시며.... 그런 걸 나에게 기대를 하신다.​


.................. 나에게 왜 그러는 걸까......

정말 1차원적이고 매우 기초적인 질문이지만, 정말 진심으로 궁금하다.

나에게 왜 그러시는 걸까..............................................................

오늘도 시어머니는 외치신다.

"나는 내가 요리하는 건 문제가 안돼. 나는 단지 내가 뭘 요리할까, 우리가 뭐를 저녁으로 먹어야 할까 고민하는 그 과정들이 너무 싫고 힘들고 괴로울 뿐이야. 그냥 너네가 뭐 먹을지 결정하면 내가 요리할게. 제발 나 요리 좀 시켜줘라"

.... 이러고는 두 시간 동안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으신다.​

.................... 진짜 왜 그러시는 걸까​


오늘도 나는 연구과제가 산더미다. 이래서 내가 늘 피곤한가 보다. 아휴 졸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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