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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의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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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an 19. 2024

흔한 밤


어떤 밤이었다. 평범하게 슬픈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던, 이십 대의 흔한 밤. 나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너네 동네에서 만나자고. 그 친구는 하얀 강아지를 안고 나왔다. 늘 말로만 듣던 강아지를 직접 보게 된 날이었다. 우리는 아파트 놀이터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었던가. 나는 그 강아지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던가. 우리가 그때 그네에 나란히 앉아 있었던가. 그저 근처 의자에 앉아 그네를 바라보고 있었던가. 시답잖은 말들이 오고 가는 동안 그저 밤은 깊어졌다. 아무런 목적도 없는 날이었다.


가끔 그날이 떠오른다. 명확한 이유 없이 내게 시간을 내어줄 누군가가 그 시절 내게 있었고, 그런 순간으로 나는 분명 위로받았던 것 같다. 말하지 않고도 내 마음을 알아주었던 게 아니라 해도 좋았다.


어떤 이유도 없이 그저 누군가 곁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때가 있다. 그날 밤에는 더 이상 슬퍼지지 않았다. 그리고 외롭지도 않았다. 가끔 나는 그날 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날 만났던 친구의 목소리와 그날 보았던 놀이터와 하얀 강아지를 생각한다.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괜히 한번 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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