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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Feb 05. 2024

월미도에 왜 가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왜 월미도에 가는지 모르겠다. 웃긴 건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월미도에 가끔 간다. 딱히 할 일은 없는데 매일 가던 곳이 지겨워질 때, 여기와는 다른 어딘가로 빨리 떠나고 싶을 때, 월미도가 생각난다. 그다지 그곳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그냥 가게 된다니 신기한 일이다.


동인천에서 월미도는 꽤 가깝다. 버스를 타면 보통 15분 내에 도착한다. 인천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뚜벅이에게도 좋은 여행장소다. 월미도에 가면 바다를 볼 수 있다. 인천에 살면서도 바다가 가깝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은데 월미도에 가면 다르다. 바다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니, 매번 새로운 기분으로 놀라곤 한다.


월미도에 가면 바다만큼이나 유명한 디스코팡팡을 구경할 수 있다. 디스코팡팡의 인기는 꽤 오래가고 있다. 내가 중학생일 때도 월미도에 출근도장을 찍는 애들이 있었다. 디스코팡팡에서 일하는 오빠들을 보러 가는 무리가 있었다. 예전에는 디스코팡팡의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을 때 돌아가는 기구에서 묘기를 선보이는 오빠들이 있었다. 어릴 때는 그 오빠들이 남달라 보였다. 날렵한 몸으로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 때면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와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여학생들에게 그 오빠들은 연예인과 비슷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월미도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오빠들은 그 시절 일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디스코팡팡 이야기를 하다 보니  UV의 ‘인천 대공원’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디스코팡팡 MC는 너무 웃겨. 디스코가 팡팡 큰 웃음이 펑펑‘이라는 가사처럼 디스코팡팡 MC의 입담은 대단했다. 디스코 팡팡 디제이들은 손님들을 한 명, 한 명 말로 훑는다. 듣기 좋고 따뜻한 멘트는 거의 없다. 저질과 변태성 멘트를 농담이라는 양념에 적절히 버무려 던지면 디스코팡팡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고, 아래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걸 듣고 재미있어한다. 그 멘트가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디스코팡팡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그걸 듣고 있게 된다. 탔던 사람들이 내리고 새롭게 거기에 탑승하는 사람들을 보며 무슨 좋은 소리를 듣는다고 저걸 탈까. 신기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디스코팡팡을 한 번도 타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대단한 겁쟁이인 데다가 돈을 내고 셀프 고생을 자처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을 싫어해서 디스코팡팡을 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디스코팡팡을 통해 나는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것이 내가 직접 경험해야 하거나 해결해야 할 숙제는 아니라고, 나는 아주 오래전에 결정했었던 것 같다.


디스코팡팡을 어느 정도 구경하고 나면 그제야 바다를 보러 갔다. 바다를 보러 가는 길 옆으로는 전시용으로 차려져 있는 것만 같은 소시지와 회오리감자 등등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늘어서 있다. 생기 없이 쪼글쪼글해 보이는 음식들을 월미도에 어쩐지 어울렸다. 늘 거기 있었기에 자연스러웠다고 해야 할까. 바다를 보기 위해 난간 앞에 서면 언제나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바다를 바라보았을까.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는 건 언제나 특별하다고 여겨진다. 주변 환경이 어찌 되었 건, 보고 싶었던 바다 아닌가.


언젠가는 월미도에 가서 무작정 표를 끊어 배를 탄 적이 있었다. 별 다른 것을 하지 않고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온 기억이 몇 번 있다. 새우깡을 사서 갈매기에게 던져주고, 바다 바람을 느끼며 나와 친구는 청춘의 한 순간을 보냈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그 곁에 하얀 거품이 일었다. 금방 사라질 거품에서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졌다. 눈이 온 거리에 첫 발자국을 남기듯이 우리가 탄 배는 그 순간에 하얀 자국을 남겼다. 배가 영종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친구와 무작정 그 동네를 배회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지 싶다. 이십 대에는 정말 우리가 돈이 없지 똘기가 없냐는 식으로 살았던 것 같다. 지나가다 무성하게 자란 풀밭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카페인지 뭔지 모를 정원에서 장미꽃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밥 한 끼도 사 먹지 않고 다시 배를 타고 돌아왔음에도 그 순간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영종도에서 월미도로 다시 돌아오면 어둑해진 밤을 비웃기라도 하듯 놀이기구들은 더 환하게 번쩍거려 보였다.

월미도의 밤거리는 키치하고 불량스럽다. 골목 어디에선가 깡패가 나오거나 불량 청소년이 바닥에 침을 칵 뱉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만 같다.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에게 붙잡히면 식당에서 목이 차오를 때까지 먹고 내일 아침에서야 풀려 나올 것만 같고, 지나가는 연인들이 잘 놀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토라져 헤어질 것만 같다. 찐득거리고 끈적거리는 액체괴물처럼 들러붙은 불륜커플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대단한 사랑을 확인하며 아무도 그것을 모를 것이라고 속으로 웃고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이건 그저 내 상상이다. 그 건물들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모르는 탐정 사무소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며 글을 쓴 적도 있었다. 해리포터의 킹스크로스역 9와 3/4 승강장처럼 월미도에도 우리가 모르는 공간이 있을 것만 같다. 간판이 없는 카페, 그곳의 입구를 찾을 수 없다면 우리는 월미도만의 흥미롭고 새로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다.


풍선 다트 게임, 바다가 보이는 카페, 귀신의 집, 목숨을 걸고 타야 할 것 같은 바이킹, 월미도는 여느 도시와 전혀 다른 독보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곳의 분위기가 그다지 마음에 안 든다. 싫은 건 아닌데 어쩐지 적응이 안 된다. 그럼에도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 배를 타면 아주 멀리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한층 들뜬 사람들이 표정, 여름이면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음악분수, 장르를 알 수 없는 노랫말의 웅성거림, 적당히 지저분한 건물과 땅바닥, 길거리 철학관 등등 항상 변함없는 그곳의 분위기와 냄새가 이상하게 반갑다.  


월미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다.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나처럼 저절로 오게 된 사람들도 있을까. 바다가 보고 싶어서, 기분전환을 가장 빠른 방법으로 하고 싶어서, 낡고 오래된 장소에 어떤 추억이 있어서, 우리는 모두 다른 이유로 월미도에 간다. 동인천에 하루 짜리 여행을 하러 온다면 해가 지기 전에 월미도를 코스로 살짝 넣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상하게 나른해지는 기분으로 누군가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그 순간을 함께 한다면, 디스코팡팡을 보면서 낯선 웃음을 지어볼 수 있다면, 유효기간이 지난 것만 같은 놀이기구를 체험하며 짜릿함을 경험해 본다면, 월미도는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별로지만 또 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내가 거는 주문은 아니다. 나도 걸려 있는 월미도의 요상한 매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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