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은 그 순간으로 영원하다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by 젼정


아이는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며 ‘저 장면 슬퍼’라고 말했다. 그 영화는 작년 미림극장에서 아이들끼리 본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 드디어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저 장면이 왜 슬플까. 아이는 왜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건 대답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깝게 느껴졌다. 작년 이 영화를 보고 온 아이에게 줄거리를 들을 때 영화 내용이 다소 난해하게 느껴져 아이들이 볼만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영화를 보다 또 내가 물었다.


“저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야?”


아이가 대답했다.


“응.”


이후로도 몇 번 더 똑같이 물었고 아이의 대답은 같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다. 영화 속 아저씨(기쿠지로)는 전혀 어른 같지가 않다. 오히려 아이가 더 어른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일반적으로 어른으로서 하지 말아야 될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어른, 어딘지 콕 집어 말할 수 있을 만큼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어른, 제법 어른 흉내를 내지만 불량 청소년 앞에서 손가락 브이 포즈를 하며 능청스럽게 구는 어른, 어른으로 겉모습이 포장된 어른,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엄마를 찾아 나선 아이에게 그 어른은 점점 어른처럼 보인다.


여름 슬리퍼를 신고 슈퍼에 가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선 어른과 무작정 엄마를 만나고 싶어 낯선 여정을 시작한 아이, 둘은 잊지 못할 여름을 보내게 된다. 그 여정에서 만난 이상한 세계의 사람들. 그들은 우스꽝스럽고 거침없는데 거기에 웃기기까지 하다. 아이가 심심하다는 이유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놀아주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들은 놀아준다는 핑계로 같이 논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둔 소중한 것을 찾는다. 그들은 되찾는다, 각자에게 필요했던 시간을.


아이가 엄마를 찾는 여정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나는 그들이 노는 모습을 보았다. 함께 놀고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 군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안다. 어떤 순간은 그 순간으로 영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름은 마음의 가난을 선명하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아도 되는 날씨, 알게 모르게 찾아드는 따분하고 고루한 날들 속에서 마음의 틈은 쉽게 벌어지고, 그것은 자주 스스로에게 발견되고야 만다.


아이의 여름방학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느껴진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외롭고 슬픈 느낌으로 시작되었다가 하도 어이가 없어 피식거리다가 결국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영화의 제목이 ‘마사오의 여름’이 아닌 ‘기쿠지로의 여름’인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의 인생에서 진짜 필요로 하는 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 버려 되돌아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되돌아 가 사랑하는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마음, 그런 것들이 아닐까. 여름의 시작에서 이 영화를 사랑할 수 있게 돼 기쁘다.


“저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야?”


내게 묻는다. 나의 대답은 ‘응’이다. 다만 나는 영화의 첫 장면이 슬프지만은 않다고 덧붙이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마음이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일어나 그 영화를 본다. 우리의 여름은 이렇게 시작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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