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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이 좋아 Oct 16. 2023

봄날, 작은 꽃에게 마음을 빼앗긴

일상으로의 여행 #1

봄날의 어린 나는 부푼 가슴으로 길을 걸었다. 골목길 어느 응달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조그만  얼굴을 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은 따스히 내 정수리를 데우던 날.


달큼한 꽃향기 실려오는 봄바람에 나는 실내화 가방을 가볍게 돌리며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왔다. 보도블록의 좁은 틈 사이로 자라나는 민들레, 냉이, 이름 모를 하얗고 작은 꽃들. 나는 특히 이름도 모르는 그 작고 하얀 꽃들을 좋아했다. 조금이라도 크기가 컸다면 아마 장미보다 유명해지고 사랑받았을 예쁜 얼굴의 꽃. 등을 데우는 햇볕을 받으며 그 눈곱만 한 꽃들을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엄지공주와 비밀 친구가 기분이었다.


그렇게 천천하굣길 곳곳을 구경하며 집에 돌아와 조금 구겨지고 살짝 습기 찬 신발을 벗어놓고 등을 데운 가방을 내려놓으면 그제야 학교에서의 긴장감과 꽃길에서 느낀 황홀함을 내려놓고 가벼워질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방금 씻어놓은 물방울 맺힌 딸기를 한입 베어 먹을 때는 딸기의 상큼한 향과 흐르는 달콤한 과즙으로 행복에 겨웠었다. 런 봄날이 행복이었다.


다시 봄이 온 요즘 나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10분 남짓한 등하굣길을 걷는다. 딸과 함께 걷는 길가에는 곳곳에 이름 모를 들꽃들이 깜찍하게 피어있다. 작은 얼굴을 가진 꽃들을 자세히 보며 그 작은 것들에 섬세히도 붙어있는 꽃잎, 꽃술, 꽃가루를 딸과 함께 관찰한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비닐 같이 얇고 부서질 듯한 작은 손톱이 붙어있던 딸아이의 손이 어느새 자라 색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며 글씨를 쓴다. 딸아이의 손톱을 유심히 보는 그 순간 나는 어릴 적 작은 꽃들을 바라보는 소녀의 심정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엄지공주, 나랑 눈도 마주치며, 말도 하고, 나를 사심 없이 사랑해 주는 그런 엄지공주가 나를 닮은 모습으로  곁에서 숨살고있다.


 길의 더워진 공기를 함께 해치고 걸어온 나와 딸은 냉장고를 열어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작은 유리컵에 나 한 숟갈, 딸 한 숟갈 아이스크림을 동그랗게 말아 떠낸다. 아이스크림이 입으로 들어와 더운 내 입 안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면 그 순간이 행복이다. 딸의 얼굴에도 나와 같은 감정이 흐른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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