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2년을 기한으로 미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다함께 하는 미국 생활이라는 선물 상자를 알록달록하고 달콤한 사탕 같은 추억으로 채우고 싶어서 미국 내 가족여행을 생각했습니다.한국에서는 일하는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들과의 시간들이 많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아이들과의 추억 만들기가 이곳 생활의 목표가 되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이 여행인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미국에서의 첫 장기 여행을 캐니언(Canyon) 투어로 선택했습니다. 매체에서 종종 보이는 캐니언의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 그곳은 언제나 마음속 여행 일 순위였습니다.미국에서의 첫가족여행 가방에 이것저것을 싸며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설레는 마음을 함께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이른 새벽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해 뜨는 광경을 함께 보았는데 매일 일어나는 이 일이 일상이 아닌 꿈같이 느껴졌습니다. 여행 초입에 보는 아침해는 어쩐지 더 신비로웠습니다. 특히 캐니언으로의 여행을 위해 공항 창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건 마치 우주영화에서다른 별로 떠나는 우주 정거장에 서 있는 주인공이 된 것 마냥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었죠.저는 정말 화성탐사선을 기다리는 승객인양 흥분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 동남부 지역노스캐롤라이나주(State of North Carolina)의 도시 샬럿(Charlotte)에서 미국 서부지역인유타주(State of Utah)에 속한 라스베이거스(Las Vegas)로의 비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비행 전 긴장한 관계로 비행기 안에서는 긴장이 확 풀어지더라고요. 저는 살짝 졸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저장해온 영화를 보면서 버티더라고요. 이렇게 밤에 도착한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말 그대로 잠만 자고 나왔습니다. 관광객을 홀리려고 내뿜어 대는 화려한 불빛도 잠 앞에서는방해만 되더라고요. 밤이 되면 가로등 없는 칠흑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조용한 도시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도시 불빛은 벌써 낯선 것이 되었습니다. 24시간 내내 불빛을 환히 밝히는 편의점이 골목마다 있는 한국을 떠나온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다음 날 아침 간단히호텔 조식을 먹고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로 달려 몇십 분 왔을까요. 캐니언이 점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캐니언의 풍경에 압도되어 '와와'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이곳에 가면 처음에는 다들 이럴 거예요. 이제부터 시작인것을 알았지만 낯설고 웅장한 캐니언이 주는 감동을 고스란히 맨 몸으로 받아 담고 있을 수 없어 자동으로 몸이 반응하더라고요. 감탄사를 가장한 함성으로 말이죠. 우리는 캐니언 여행 초반에 그렇게 함성을 질러댔습니다.
우리는 유타주(State of Utah)에 있는 자이언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을 목적지로 달렸습니다. 11월이라 공기는 서늘했지만 차창밖으로 보이는 캐니언과 광활한 하늘은 그 자리에서 계절을 잊게 했어요. 또 지구의 나이를 그대로 품고 있는 주름 같은 캐니언을 보며주름진 속살까지 보여주는 지구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캐니언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차문을 열어 보고는 깜짝 놀랄 싸늘한 공기를 마주했습니다. 11월인 것을 잠시 잊고 하늘 아래 캐니언 뿐인 공간을 내리 달려와서 그랬던가봐요. 콧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찬 바람을 들이마시는 순간 달큼하고 건조한 캐니언의 흙냄새가 느껴졌어요.후각은 더 강렬한 기억을 남기는 것 같아요. 캐니언을 생각하면 그 흙냄새가 바로 코끝을 스쳐 가는 것 같거든요. 준비해 온 간단한도시락을 먹으며 사방에 펼쳐진 캐니언을 감상했어요. 끼니 때여서 그런지 눈앞의 캐니언이 팥시루떡처럼 보였죠. 그리고 핸드폰 메모장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먹을 음식 리스트 한 줄을 추가했습니다. 찹쌀 팥시루떡이라고요.
미국에서 국립공원들을 여행하는 데 필요한 국립공원 입장권을 미리 구입해 왔습니다. 일 년 동안 미국 내 국립공원을 입장할 수 있는 annual pass로 말입니다.미국 초등학교 4학년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 때문에 이 티켓이 무료라고 합니다. 사회 시간에 배운 내용을 몸으로 체험하라는 친절한 제도인 것 같습니다.저희 아들은 한국에서는 4학년이었지만 이곳 기준으로 생일이 빠른 관계로 5학년으로 미국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이곳은 9월 생부터 다음 해 8월 생까지 같은 학년으로 묶입니다. 만약 제 아들이 9월생이었다면 4학년으로 입학했겠지만 3월생이라 5학년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연으로 조금 아쉽게도무료 국립공원 여행을 경험하진 못했습니다.
또 수많은 캐니언을 감상하며 다음 목적지인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Bryce cayon national park)에 도착했습니다. 캐니언의 물이 밤에는 추워서 얼고 낮에는 햇볕에 녹으며 자잘한 기둥 같은 캐니언들이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웅장하지만 또 그 안에 섬세한 매력을 풍기는 이곳 캐니언들은 언뜻 보면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군중들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작은 캐니언 기둥들이 되어해 지는 광경을 감상했습니다. 대자연 앞에서 미물인 인간의 존재를 더욱더 느끼며말이죠.
11월의캐니언에서 해는 빨리도 사라집니다. 저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완벽한 어둠에 갇힐까 봐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어요. 가로등도, 집들도 없는 캐니언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별들을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잠시 상상해보았습니다.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면 수만 개의 별들이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 느껴지는 황홀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상으로는 낭만적이기 그지없지만 추위와 어둠에 약간 우리는 서둘러 숙소로 향했습니다. 오늘만 사는 게 아니니까요. 지친 몸을 추슬러 내일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내일의 행복한 여행은 오늘의 준비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