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를 보고
얼마 전, 영화 '서브스턴스(Substance)'가 한국 영화관에 개봉했다.
북미에서는 9월에 개봉했으니, 국내에는 3개월 정도 늦게 개봉한 것인데,
칸 영화제에 소개된 직후부터 별의별 얘기가 다 나왔던 호러 영화이다.
스토리 자체가 워낙 단순해서 영화의 전반부만 봐도 대충 어떻게 끝날지 보이기 때문에,
영화를 따라가는 데에 피곤함은 덜하나, 그렇기에 다소 루즈하다는 반응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스토리면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뭐 훌륭하다는 의미의 '미쳤다'가 아닌,
미친 것 같다는 의미의 '미쳤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자극적인 후반부 씬들이,
이제는 다소 뻔한 소재에서 오는 스토리적 나른함에 긴장감을 제대로 준다.
뭐 비유하자면, 슴슴한 백반 한상에 불닭 소스를 끼얹은 느낌이다.
영화 줄거리는 대략적으로 이렇다.
한 때 유명했던 셀렙 '엘리자베스'가 어느덧 50대에 접어들고, 출연하던 쇼에서 퇴출당한 뒤,
우연히 '서브스턴스'라는 제품을 소개받아 젊고 아름다운 여자 '수'의 신체를 가지게 된다.
그녀는 7일은 '엘리자베스'에 들어가서, 그 다음 7일은 '수'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기이한 '7일 교대 근무'를 서게 되는데, 뭐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물론 예상이 되겠지만, '수'의 신체로 더 살아가기 위해 '엘리자베스'의 시간을 빼앗으려하고,
한 명이지만 두 명인, 이들은 '수'를 두고 신체 뺏기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요즘은 이런 몸 바꾸기 소재가 웹툰이니, OTT 시리즈에 많이 소개되었기도 하고,
결국 그 흘러가는 방향이 대체로 비슷하다보니 영화를 안봐도 대충 가늠이 가겠지만,
후반부 1시간은 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양념을 많이 쳐놨다.
1절, 2절, 3절까지 예상은 하고 봐도, 4절이 있고, 5절이 있다.
고도로 발달된 '뇌절'은 예술과 구분할 수 없다, 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서브스턴스'가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이유로는 여러 오마주때문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샤이닝'의 피바다 장면이라든지, '에일리언 로물루스 변태 장면이라든지,
뭐 이것저것 알고보면 더 재밌는, '이스터에그'스러운 볼거리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크게 부각되는 '노란색'과 '핑크색'의 색 대비, 혹은
'화장실'과 '무대'라는 공간의 대비 등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어,
이런 걸 뜯어보면 작품의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 그런 것들을 뜯어볼 여유가 없이 시각적 임팩트가 워낙 쎄다.
아까 말한 듯이, 매콤한 불닭 소스가 한 스푼 정도가 아니라 한 사발이 들어가 있어,
조리할 때 넣은 무슨 허브니, 수비드니 이런 게 거의 느껴지지가 않는다.
후반부의 고어 장면들이라 불리는 장면들은 의견이 조금 갈릴 수도 있는 것이,
잔인하긴 잔인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에서 흔히 등장하는 그런 식의
유혈이 낭자하기만한 그 'B급 감성'의 잔인함이라 개인적으로 크게 고통스럽진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신체가 서서히 변형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더 받았으며,
후반주 장면들은 영화 '트랜스포머' 감성의 블록버스터 전투씬을 보듯이 보았다.
이런 장면들을 꺼려하는 분들에게는 시청을 권해드리진 않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볼만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두 번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는 페미니즘으로 '서브스턴스'라는 작품을 해석하여,
여성에 대한 사회의 미적 강요에서 오는 고통을 영화가 보여주었다고 말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화에서 '완벽하지 않은 본연의 나'도 잘 챙겨주자,
부족한 내가 있기에 완벽한 내가 태어날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훈훈한 메시지를 받은 것 같다. 훈훈하다고 하기에는 워낙 끔찍하긴 했지만,
글을 끝내고 밥을 좀 먹을까 했는데,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니, 입맛이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민카세' 유튜브 채널에서 다양한 영상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