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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Nov 26. 2024

나를 찾아가는 두 가지 방식

글쓰기와 노래 부르기




2024년은 내게 있어 뜻밖의 해이다. 그래서 눈을 감고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았다. 

무작정 변화하고 싶은 마음에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만 하고 노트에만 글을 기록하던 나였다.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만 믿었던 내게 처음 블로그를 알려준 지인있었다. 블로그의 '블'자도 모르는 나는 당연히 궁금증에 대한 질문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그녀는 육아 블로거로 활동하며 아이들 용품부터 집안의 가구, 심지어 전자제품까지 글을 써준 대가로 제공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내가 모르는 놀라운 세상이 있다는 그 자체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글 몇 줄을 써주는 것만으로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럼에도 내 속마음 깊은 곳에서는 묘한 궁금증이 피어났다. 


‘나도 글을 써서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그 호기심이 결국 나를 글쓰기라는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다. 

글쓰기의 두려움을 없애고, 그 안에서 재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준 이는 바로 그녀였다.


처음 글을 쓰려 했을 때, 글은 입안에서만 맴돌며 좀처럼 종이 위로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단어와 문장이 떠다녔지만, 막상 손끝에서 글을 적으려 하면 이상하게도 멈칫거리기 일쑤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글다운 글이 될까?’ 이런 고민만 하다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녀가 내게 말했던 한 마디가 떠오른다. 


“글은 잘 쓰려고 시작하는 게 아니야. 그냥 마음에 있는 걸 솔직하게 꺼내서 적는 거야.”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첫 문장을 적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글을 조금씩 배워가게 되었다.






나를 찾아가는 두 가지 방식 글쓰기, 노래 부르기


내 글을 누가 비웃을까 봐, 내가 쓴 글이 너무 하찮아 보일까 봐, 아니면 그냥 그 글이 내가 아니게 될까 봐. 이유는 많았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일기 쓰는 걸 좋아했다. 하루를 정리하며 내 감정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글이 두서없게 느껴지고 정리가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내 속마음을 누군가 들여다보는 것 같아 자신감이 사라졌다. 이 글이 정말 괜찮은지,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글쓰기는 내가 한때 느꼈던 다른 두려움과도 닮아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노래 부르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내 목소리가 어색해서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내가 강의한 영상을 재방송으로 보거나 내 음성을 녹음해 들어보았는데 어찌나 발음도 별로고 맑지 않고 탁한 목소리인지. 한편으론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노력하고 연습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결과만 잘나오기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였다. 가끔은 연습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때일수록 내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글쓰기도 노래 부르기와 마찬가지였다. 서툴러도 괜찮다고,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날, 책상 위에 놓인 공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아. 그냥 써봐.’ 마치 속삭이듯 공책이 말을 건넨 것 같았다. 나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시작했다. “나는 글쓰기가 두렵다.” 아주 솔직한 문장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문장을 적자마자 가슴 속 묵직했던 돌 하나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글을 썼다. 꼭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마트에 다녀온 이야기, 아침에 마신 커피의 맛, 그리고 여전히 내 글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까지. 중요한 건, 쓰는 행위 자체가 점점 익숙해졌다는 것이었다. 글은 내가 길을 잃고 있을 때마다 새로운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글쓰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역시 지금도 원고를 쓰기 전, 첫 문장을 고르기 전에는 긴장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인정하고 나면 그다음은 훨씬 수월해진다.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도 괜찮다. 그 자체로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니까.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그냥 써봐.”







노래를 부르다 보면 감정이 목소리를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 순간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글쓰기도 그렇다. 손끝에서 적어 내려가는 단어들이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낸다. 노래와 글쓰기. 전혀 다를 것 같은 이 두 가지가 어쩌면 이렇게 닮아 있을까?


노래를 부를 때, 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한다. 음정을 따라 멜로디를 타다 보면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감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글을 쓸 때는 단어 하나하나에 나의 이야기를 담는다. 종이 위에 적힌 글자가 마치 작은 창문처럼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노래는 듣는 이의 공감을 얻고, 글은 읽는 이와 대화를 나눈다. 노래와 글쓰기는 표현의 방식만 다를 뿐, 결국은 같은 길을 걷는 셈이다. 하지만 둘의 시작은 조금 다르다. 


노래는 멜로디가 이미 정해져 있다. 나의 감정을 그 멜로디 위에 실으면 된다. 반면, 글쓰기는 완전히 텅 빈 종이와 마주해야 한다. 첫 문장을 써 내려가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노래는 익숙한 멜로디가 우리를 감싸주지만, 글은 처음엔 그 어떤 가이드도 없이 나 혼자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일까, 노래는 쉽게 다가오고 글쓰기는 종종 막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둘 다 결국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엔 삐걱거리더라도, 자꾸 부르고 쓰다 보면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어떤 날은 감정이 가득 차올라 멋진 노래가 나오고, 어떤 날은 말이 술술 풀리는 글이 탄생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에 조금 더 솔직하게 꺼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진다.


노래는 듣는 이를 위로하고, 글은 읽는 이를 감동시킨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큰 위로와 감동은 나 자신에게 오는지도 모른다.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해방감, 글을 쓸 때 찾아오는 마음의 정리. 둘 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쓴다. 어떤 날은 내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또 어떤 날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노래 한 소절, 글 한 문장이 모여 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을 알아가고, 조금 더 솔직해진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가장 '좋아하는 일'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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